
(태국=뉴스트래블) 박주성 기자 = 태국 중서부 깐짜나부리(Kanchanaburi)는 방콕에서 불과 두 시간 거리에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간과 풍경을 품은 도시다. 한쪽에서는 옥빛 폭포가 장대한 물줄기를 쏟아내며 자연의 청량함을 선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철교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이곳은 태국 여행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특별한 목적지로 손꼽힌다.
깐짜나부리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것은 단연 ‘콰이강의 다리’다. 전쟁 포로 수만 명이 희생된 ‘죽음의 철도’의 상징으로, 오늘날에도 실제 열차가 다리를 건너며 당시의 이야기를 전한다. 강물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지만, 다리 위를 걷는 순간 무겁게 내려앉는 역사적 울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주변의 전쟁묘지와 제스 전쟁박물관, 태국-버마 철도센터는 그날의 참혹한 기록을 차분히 보여주며, 관광지를 넘어 평화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깐짜나부리가 주는 인상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은 자연이 그려낸 푸른 낙원이다. 대표적인 곳이 에라완 국립공원이다. 7단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햇살을 받아 옥빛으로 빛나며, 각기 다른 깊이와 풍경을 자아낸다. 아이들은 얕은 웅덩이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자들은 상단부로 향하며 숲의 숨결을 느낀다. 계절에 따라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것도 흥미롭다. 우기에는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건기에는 수정처럼 맑은 물빛이 고요한 풍경을 완성한다.

깐짜나부리의 매력은 또 있다. 강변을 따라 들어선 리버사이드 숙소들은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하룻밤을 선사한다. 뗏목 위에 세워진 전통 호텔은 물 위에서 잠드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모던한 리조트들은 수영장과 스파를 갖추고 있어 자연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가능케 한다. 아침이면 강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창 너머로 펼쳐지며, 도심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한다.
현지 음식 또한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강변 레스토랑에서는 신선한 민물 생선을 구워 내놓는데, 매콤한 소스와 곁들이면 잊을 수 없는 맛을 남긴다. 태국 대표 음식인 똠얌꿍과 그린 커리, 바삭한 바나나 로티는 시장과 노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저녁 무렵 열리는 야시장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수십 개의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향은 현지인의 일상과 함께 깐짜나부리의 맛을 더욱 생생하게 전해준다.
가족 여행객들에게는 코끼리 보호 캠프 체험이 인기다. 단순한 코끼리 타기 관광이 아니라, 먹이를 주고 함께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시키는 경험을 통해 동물과 교감한다. 아이들에게는 교훈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일깨우는 시간이 된다.

교통편 역시 편리하다. 방콕에서 기차를 타면 2시간 30분에서 3시간가량 소요되는데, 열차가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는 순간은 그 자체로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남부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나 미니밴도 하루 종일 운행돼 접근성이 뛰어나며,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렌터카를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깐짜나부리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지만, 진정한 매력을 맛보기 위해서는 최소 2박 3일 일정이 권장된다. 첫날에는 콰이강의 다리와 전쟁 유적지를 둘러보며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둘째 날은 에라완 국립공원에서 트레킹과 폭포 체험을 즐긴다. 마지막 날에는 코끼리 보호 캠프나 강변 숙소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뒤 방콕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이상적이다.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깐짜나부리는 방콕의 화려한 도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폭포 아래서 듣는 물소리, 다리 위에서 마주하는 전쟁의 기억, 시장에서 맛보는 음식, 강가에서 맞는 아침의 고요함이 한데 어우러져 여행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단순히 관광지를 넘어, 역사와 자연, 문화와 일상이 함께 어울린 살아 있는 도시가 바로 깐짜나부리다.
방콕을 찾는 여행자라면, 하루쯤 시간을 내 깐짜나부리를 향해보자. 그곳에서 만나는 풍경은 태국 여행의 지도를 한층 더 풍부하게 그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