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송강미술관, 고즈넉함 속에 스며든 예술의 향기

  • 등록 2025.10.26 22: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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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래블=정연비 기자] 안동 시내를 벗어나 차로 약 10분, 논밭 사이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가니 나지막한 언덕 위에 하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송강미술관(松江美術館)이다. 이 미술관은 원래 1995년 문을 닫은 옛 송강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미술관 설립 배경 역시 의미 있다. 안동과 예술을 사랑한 한 애호가가 수십 년에 걸쳐 학교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폐교된 지 약 20여 년 후에 이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속도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경이로움을 준다.

 

 

고요한 안동의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이곳은 작품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평화로운 공간이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설치 미술 조형물들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뛰놀고, 연인들이 작품을 배경 삼아 추억을 남기기에 손색이 없다. 이 야외 공간에서 미술관이 내세우는 “누구나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비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미술관 본관에 들어서면 팔각형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코발트 블루의 벽면이 어우러진, 시원하게 트인 로비가 인상적이다. 천장 아래에는 안동대 출신 작가의 작품 ‘삼족오’가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로비부터 수준 높은 예술의 기운이 느껴졌다.

 

 

전시관 내부에는 동양화, 서양화, 현대미술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방문 당시에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비롯해 호시켄지, 곽동훈, 이윤복 작가의 작품이 함께 소개되고 있었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 구성은 안동이라는 지역적 배경과 어우러져 더욱 독특한 감흥을 준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별관들이다. 유료 운영을 하는 본관과 달리 “떡살전시관”, “하회탈전시관”, “안동문학관” 등을 무료로 개방해 누구든지 문화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하회탈전시관에는 안동시립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제121호 하회탈을 바탕으로, 이 ‘살아 있는 유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하회탈은 단순한 조각이 아닌,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허도령이 제작했다는 전설과 함께 정월이면 탈춤을 추던 마을 사람들의 염원과 신앙이 깃든 유산이다. 주지, 각시, 중, 양반, 백정 등 11개의 탈에는 서민들의 해학과 풍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떡살전시관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다양한 떡살과 다식판들이 진열돼 있다. 작은 국화무늬부터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까지, 떡 하나에도 축복과 소망을 새겨 넣던 조상들의 섬세한 미감과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안내문에는 관장이 전국을 돌며 떡살을 수집하게 된 사연이 적혀 있었다. 그 사연을 읽고 나니 이 공간이 단순한 전시를 넘어선 ‘애정의 기록’임을 실감하게 된다.

 

지역별, 문중별로 떡살의 형태가 달랐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각자 사용하던 이들의 흔적이 남아 복원이 어려운 유물인데도, 송강미술관의 떡살들은 정갈하게 보존돼 있어 감탄을 자아냈다.

 

 

안동문학관은 왜 안동과 경북이 인문학의 고장으로 불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술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관장은 처음 이 공간을 조성할 때 ‘안동문학관’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수십 년간 수집해 온 자료들이 결국 안동과 경북의 문학사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해지며, 그 이름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전시된 자료는 안동 출신 혹은 안동 일대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과 초판본, 문학 잡지, 관련 유물 등으로, 안동 문학의 흐름을 집약한 귀중한 기록이다. 미술관 개관 전까지 안동의 문학을 체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는 점에서, 송강미술관의 안동문학관은 단순한 수집품 전시를 넘어선 지역 문화의 아카이브로 의미가 깊다.

 

 

 

폐교의 건물 구조를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모델링한 송강미술관은 ‘폐교’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깔끔하고 세련됐다. 오래된 교정의 정취와 현대 미술의 감성이 공존하는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옛 선비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안동의 문화적 심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송강미술관은 관장 부부의 30년에 걸친 꿈이 깃든 장소이자, 예술과 지역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관람은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삶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에 가깝다. 고즈넉한 언덕 위에서 예술의 향기를 마주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안동 여행의 하루가 충분히 특별해진다.

 

 

정연비 기자 enerna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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