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방콕의 골목 어귀, 해 질 무렵이면 어디선가 “톡톡톡” 절구 소리가 들려온다. 리듬을 타듯 이어지는 그 소리는 태국 사람들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음악 같다. 절구 안에는 푸른 파파야, 마늘, 고추, 피시소스, 라임즙이 어우러지고, 어느새 입안이 얼얼해질 만큼 매콤한 향이 퍼진다. 바로 태국의 대표 샐러드, ‘솜탐(Som Tam)’이다. 태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거리 음식이지만, 그 속엔 이 나라의 기후와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입 베어 물면, 그 자리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미소가 번진다. 그것이 태국식 ‘행복의 맛’이다.
솜탐은 태국 북동부 이산(Isan) 지방에서 태어났다. 더운 날씨 속에서 오래 보관 가능한 채소와 향신료를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생채 요리다. 본래는 ‘타므막훙(Tam Mak Hoong)’이라 불리며,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지역에서 시작됐다. ‘솜탐’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솜(Som)은 ‘시다’를, 탐(Tam)은 ‘찧는다’를 뜻한다. 즉, ‘시큼하게 찧은 샐러드’라는 의미다.
조리법은 단순하지만 그 과정이 예술에 가깝다. 절구에 마늘과 고추를 먼저 찧고, 그다음엔 잘게 채 썬 덜 익은 파파야를 넣는다. 여기에 피시소스, 라임즙, 야자당, 땅콩, 말린 새우가 더해지면 새콤·달콤·매콤의 3중주가 완성된다. 절구질을 하며 재료들이 섞이는 소리와 향기는 태국 거리의 배경음악이다.
흥미로운 점은 솜탐이 지역마다 다르게 변주된다는 것이다. 방콕식은 달콤하고 세련된 맛으로, 외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반면 이산 지방의 전통 솜탐은 훨씬 자극적이다. 발효 생선소스인 ‘쁘라라(pla ra)’를 넣어 강한 냄새와 깊은 감칠맛을 낸다. 처음 맛보는 사람에겐 다소 충격적이지만, 익숙해질수록 중독적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맛의 차이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태국 사람들에게 솜탐은 단순한 샐러드가 아니라 ‘이야기의 음식’이다. 시장 한쪽에서 친구들과 함께 절구를 놓고 만들어 먹는 풍경은 일종의 일상 의식처럼 여겨진다. 절구질의 강약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그 차이를 두고 웃음이 오간다. 솜탐을 먹을 때는 늘 곁에 찹쌀밥(카오니여우)과 구운 닭고기(가이양)가 함께한다. 손으로 한입 크기만큼 찹쌀밥을 뭉쳐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입 안의 축제’가 열린다. 땀을 닦으며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매운맛이 고통이 아니라 쾌감이 되는 순간이다.
태국인들은 말한다. “솜탐은 인생과 같다. 맵고, 시고, 달고, 짠맛이 섞여야 완벽하다.” 이 말은 태국의 기후와 삶을 대변한다. 뜨겁고 습한 날씨 속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활기차고 유쾌하다. 음식마저 감정의 조화로 만들어내는 태국인들의 철학이 이 한 그릇에 녹아 있다.
솜탐은 태국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언어다. 재료는 간단하지만, 그 맛의 층위는 복잡하다. 달콤함과 매운맛이 싸우듯 어우러지고, 시큼한 향이 남아있다가 이내 단맛으로 마무리된다.
그 변화무쌍한 리듬 속에서 우리는 태국의 삶을 엿본다. 뜨겁고 진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웃음과 향신료의 나라. 길거리 노점의 절구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도착하는 곳은 단 하나다. 입안 가득 번지는 불 같은 행복, 그것이 솜탐의 진짜 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