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기획] K-푸드의 진화① 김치에서 라면으로, 외국인이 바꾼 K-푸드의 얼굴

  • 등록 2025.10.30 23: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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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식에서 편의점 간식으로 확장된 외국인 미식 트렌드
일상의 풍경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떠오르다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제는 ‘김치’보다 ‘라면’을 먼저 찾는다. 불고기나 비빔밥 같은 전통 한식이 대표하던 시절을 지나, 지금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음식은 편의점 간식, 카페 디저트, 라면 같은 생활형 메뉴다. 음식의 무게 중심이 ‘전통’에서 ‘일상’으로 옮겨가며, K-푸드는 새로운 미식 지도를 그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2024년 외국인 잠재 방한 여행객 조사에 따르면, 한국 방문 시 가장 하고 싶은 활동으로 ‘맛집 투어(15.7%)’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맛집’의 의미는 과거와 다르다. 이제 외국인에게 한식은 고급 한정식이나 전통주점이 아니라, 드라마 속 회식 장면이나 아이돌이 즐겨 먹는 음식처럼 일상적인 풍경으로 인식된다. 한 나라의 음식을 통해 문화를 이해하는 시대에서, 한 나라의 일상을 체험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데이터도 이 변화를 뒷받침한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외국인의 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평균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품목은 아이스크림(35%), 편의점 음식(34%), 와플·크로플(25.5%) 순이었다. 불고기나 전통 한식당보다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들이 외국인의 소비를 이끌고 있다. 특히 2023년 이후 편의점 음식 결제액이 급등하며, 2024년에는 전년 대비 79%라는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소셜미디어에서도 뚜렷하다. 인스타그램에서 ‘K-food’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 중 20% 이상이 라면, 김밥, 과자, 호떡 등 간편식이나 길거리 음식이었다. 외국인에게 K-푸드는 이제 더 이상 ‘전통의 맛’이 아니라 ‘한국인의 하루’를 상징하는 코드가 됐다. 어떤 여행자는 “라면 한 그릇이 한국의 리듬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빠른 생활, 다양한 선택, 짧은 시간 속의 만족감. 그 안에는 지금의 한국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K-푸드의 생활화’로 정의한다. 한국의 음식을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 속 문화’로 소비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음식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관광의 패러다임이 ‘명소 중심’에서 ‘생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서울의 거리에서는 외국인들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고, 동네 카페에서 지역 한정 메뉴를 맛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제 미쉐린 레스토랑보다 로컬 카페를, 전통 한식당보다 퇴근길 분식집을 더 궁금해한다. 음식의 의미가 ‘국가의 상징’에서 ‘삶의 풍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K-푸드의 진화는 한국의 도시문화와 콘텐츠 산업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K-드라마와 예능, 유튜브 콘텐츠 속 일상적인 식사 장면이 해외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한국처럼 먹고 마시는 법’이 하나의 체험 트렌드가 되었다. ‘한류’의 무대가 음악과 패션을 넘어 식탁 위로 확장된 셈이다.

 

외국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미식 지형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첫째, 전통 음식과 현대 간편식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둘째, 글로벌 메뉴가 한국식으로 변주돼 역수출되고 있다. 셋째, 특정 맛보다 ‘경험의 맥락’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늘고 있다. 즉,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디서,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해졌다.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실 관계자는 “외국인의 소비 패턴은 전통 한식보다 일상 속 음식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이런 변화는 관광산업이 생활문화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고서에 따르면 ‘편의점·카페·베이커리’ 부문의 급성장은 한국의 일상문화가 곧 관광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K-푸드의 진화는 결국 ‘일상으로의 회귀’다. 전통을 버린 진화가 아니라, 전통을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다시 피어난 변화다. 외국인에게 라면과 삼각김밥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삶의 리듬을 그대로 담은 문화의 한 조각이다.

 

이제 K-푸드는 더 이상 식탁 위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편의점의 조명 아래, 거리의 카페 창가에서, 도시의 밤공기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김치에서 라면으로, 불고기에서 삼각김밥으로 이어지는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외국인은 한국의 일상을 맛보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일상이야말로 지금, 세계가 가장 탐내는 K-콘텐츠다.

박주성 기자 report@news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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