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기획] K-푸드의 진화③ 글로벌 메뉴의 K-버전, 한국식 변주로 다시 태어나다

  • 등록 2025.11.01 09: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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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카페·베이커리, 익숙한 메뉴 속에 녹아든 한국의 감각
로컬 브랜드와 한정 메뉴가 만든 새로운 미식 경험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서울 성수동의 거리 한복판. 주말이면 ‘런던베이글뮤지엄’ 앞에는 길게 늘어선 외국인 관광객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 중 다수는 이미 자국에서도 베이글을 먹지만, 굳이 한국에서 이곳을 찾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식 감성’이 스며든 글로벌 메뉴를 맛보기 위해서다. K-푸드는 이제 전통 한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 한국식으로 재해석되며, 또 하나의 K-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카드 결제 데이터를 보면, 외국인들이 가장 자주 결제한 업종은 카페(890만 건), 베이커리(300만 건), 햄버거(230만 건)였다. 세 업종 모두 2025년 기준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하며, 전통 음식점을 제치고 K-푸드 소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익숙한 메뉴 속의 한국식 변주’다. 같은 햄버거라도 한국에서는 한정판, 협업 메뉴, 지역 토핑 등 차별화된 경험이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다. 한국 한정 메뉴로 1990년대 출시된 이 제품은 여전히 외국인 여행객 사이에서 ‘방한 필수 음식’으로 꼽힌다.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 현지화 메뉴를 내놓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변주가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롯데리아의 오징어버거, 맘스터치의 싸이순살버거처럼 국내 브랜드 역시 ‘K-버거’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한식의 재료를 현대적인 포맷으로 풀어내면서, 전통의 맛을 세계적으로 확장시키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카페 문화에서도 이런 흐름은 뚜렷하다. 스타벅스는 제주와 여수 등지에서 한정 메뉴와 로컬 콘셉트 매장을 운영하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지역 한정 체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수 매장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음료를, 제주 한정점에서는 녹차 라떼와 감귤 베이커리를 선보인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브랜드지만, 한국에서는 ‘로컬 여행지’와 결합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로컬 카페 브랜드의 약진도 눈에 띈다. 성수동의 ‘카페 어니언’은 산업 창고를 개조한 인더스트리얼 감성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다. 2025년 기준 외국인 카페 결제 건수는 전년 대비 31.5% 증가했으며, 특히 대만(58.5%), 일본(30.0%), 중국(32.0%) 관광객이 두드러졌다. 그들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감각과 미학을 체험하는 문화 공간이다.

한국의 베이커리 시장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앙버터, 인절미 크루아상, 쑥케이크 같은 ‘한식 재료를 활용한 서양식 디저트’는 외국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특히 한옥이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베이커리 매장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장소로 각광받으며, 미식과 공간의 결합을 이끌고 있다. 일부 외국인 여행자는 “한국은 맛보다 분위기를 잘 만든다”고 말한다. 즉, 한국의 미식 경험은 ‘공간, 디자인, 이야기’를 함께 파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외식 산업 전반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 프랜차이즈들은 해외 진출 시에도 ‘K-버전’을 앞세우고 있으며, 로컬 카페는 관광지와 협업해 팝업 매장을 여는 등 미식이 관광과 결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류의 확장은 더 이상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식을 매개로 한 ‘라이프스타일형 관광’이 하나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한국의 문화 소비 구조를 바꿔놓고 있다고 분석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소비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경험’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메뉴의 차이보다 ‘한국에서만 가능한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음식이 낯선 감각으로 재탄생할 때, 그 안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 코드를 읽어낸다.

결국 K-푸드의 진화는 ‘새로움을 전통에서 찾고, 익숙함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다. 햄버거와 커피, 빵처럼 세계 어디서나 먹는 음식 속에서도 한국만의 감성이 녹아들며, K-푸드는 더 넓은 세계와 대화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미식은 한식당을 넘어 카페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매장까지 확장됐다. 외국인들은 이 익숙한 메뉴 속에서, 전통 한식보다 더 쉽게 ‘지금의 한국’을 맛보고 있다.

 

박주성 기자 report@news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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