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⑩ 멕시코 타말레…옥수수의 신성함, 제사에서 간식으로

  • 등록 2025.11.06 08: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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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멕시코의 아침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타말레 냄새로 시작된다. 옥수수잎에 싸인 뜨거운 반죽은 도시의 공기를 달콤하고 고소하게 적신다. 출근길 사람들은 한 손에 커피, 다른 손에는 타말레를 쥔 채 분주히 걸음을 옮긴다. 겉보기엔 단순한 옥수수 찜빵 같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의 신앙과 제의, 그리고 일상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서 길거리 간식으로 변모한 타말레는, 멕시코인의 삶 그 자체다. 한입 베어 물면 옥수수의 구수함과 매운 칠리의 향, 그리고 오랜 문화의 숨결이 함께 피어난다.


타말레(Tamale)의 기원은 멕시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즈텍과 마야인들에게 옥수수는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신이 만든 생명의 원료’였다. 전설에 따르면, 신 케찰코아틀이 진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옥수수를 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옥수수는 곧 인간의 몸이자 영혼이었다. 타말레는 이런 믿음에서 태어난 제사음식이었다. 전사들이 출정을 앞두고 먹었고, 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바쳤다.

 

 

타말레의 기본은 ‘마사(Masa)’라 불리는 옥수수 반죽이다. 삶은 옥수수를 빻아 물과 섞고, ‘니스타말(nistamal)’ 공정을 거쳐 소화가 잘되는 반죽을 만든다. 이 마사에 라드(돼지기름)를 넣고 부드럽게 치댄 뒤, 각종 속재료를 올려 옥수수잎이나 바나나잎으로 감싼다. 속에는 매운 고기, 콩, 치즈, 올리브, 때로는 건포도나 초콜릿이 들어가기도 한다. 찜통에서 1시간 이상 찌면 완성되는 타말레는, 향신료와 옥수수의 향이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낸다.

 

스페인 식민기 이후 타말레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았다. 돼지기름과 후추, 올리브 같은 유럽식 재료가 들어오면서 ‘혼종의 음식’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타말레는 원주민의 전통과 식민문화가 공존하는 상징적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신화와 현실, 전통과 현대가 한입 속에서 만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멕시코에서는 수백 가지의 타말레가 존재한다. 북부의 ‘타말레 로호(Tamal Rojo)’는 붉은 칠리와 소고기를 넣어 강렬한 맛을 자랑하고, 남부 오악사카 지역의 ‘타말레 베르데(Tamal Verde)’는 바나나잎으로 감싸 부드럽고 향긋하다. 또 ‘타말레 데 두세(Tamal de Dulce)’는 핑크빛 단맛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다. 어느 지역을 가든, 타말레는 그 땅의 향신료와 문화가 스며든 ‘작은 미식 지도’다.

 

거리로 나가면 ‘타말레라(Tamalera)’라 불리는 여성 노점상들이 새벽 네 시부터 찜통을 연다. 그들은 수십 개의 타말레를 커다란 통에 담아 자전거로 싣고 다니며 아침 출근길 사람들에게 판다. 커피 대신 ‘아톨레(Atolé)’라는 따뜻한 옥수수 음료를 곁들이는 것이 정석이다. 멕시코시티의 거리마다 스팀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그날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같다.

 

 

타말레는 또한 멕시코의 중요한 명절과 제례의 중심에 있다. 특히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Día de los Muertos, 망자의 날)’에는 조상들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한 제단 위에 타말레가 반드시 놓인다. 죽은 이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가족과 음식을 나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타말레를 만들고, 나누는 행위는 곧 세대를 잇는 의식이다.


타말레는 멕시코인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에서 길거리의 아침식사로, 제국의 상징에서 서민의 손맛으로 내려온 여정에는 ‘음식이 곧 문화’라는 진리가 담겨 있다. 여행자가 멕시코의 아침 시장에서 타말레를 손으로 찢어 열면,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단순한 열기가 아니다. 그것은 신화의 숨결,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오늘의 일상이 뒤섞인 시간의 향기다. 따뜻한 옥수수 향이 코끝을 스칠 때, 우리는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먹는 일’은 곧 ‘살아 있는 신화’를 이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박주성 기자 report@news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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