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예측 불가능한 폭우와 폭염, 태풍이 여행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기후위기는 관광산업의 안전과 운영 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이제 여행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감’이 아니라 ‘데이터’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 ‘데이터 기반 기후변화에 따른 관광 대응 방안’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관광의 안전과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핵심은 ‘데이터 통합–예측–대응’의 체계다. 기상청, 국토교통부, 지자체, 민간 플랫폼의 데이터를 연계해 기후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하고, 여행객 행동을 예측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먼저 경고하는 여행의 위험
기후데이터와 관광데이터의 결합은 가장 먼저 안전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한국관광공사는 기상정보·교통 데이터·통신사 위치정보를 연동한 ‘스마트 관광안전 통합대시보드’를 구축하고 있다. 폭우나 폭염 경보가 내려지면 관광지의 인구 밀집도와 이동 경로를 실시간 분석해 위험 지역을 빠르게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기존의 기상 특보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AI가 읽는 여행의 패턴
관광의 흐름을 예측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로 바뀌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관광데이터랩을 통해 수집한 지역별 방문객 수, 체류 시간, 소비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기후변화가 여행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하고 있다.
AI의 분석 결과는 명확하다. 여름철 평균기온이 오를수록 야외 체류 시간은 짧아지고, 대신 실내 관광이나 쇼핑, 카페 체류 비율이 높아졌다. 폭염일이 늘어나는 해에는 해변이나 산보다 실내형 관광시설이 더 붐비는 경향도 포착됐다. 단순한 날씨의 변화를 넘어, 기후가 관광의 형태를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사는 지역별 맞춤형 관광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정 기간에 혼잡이 예상되는 지역에는 대체 관광지를 추천하고, 기온과 일조량 예측을 반영해 체험 프로그램의 시간대와 운영 기간을 조정한다. 일부 지자체는 이를 여행 앱 서비스에 적용해, 예보된 날씨와 혼잡도를 종합한 ‘최적 여행 시간대’를 실시간으로 안내하고 있다.
폭염이 예상되면 “야외 관광은 오전 9시 이전 권장”, 비 예보가 있으면 “실내 프로그램 이용 확대 권장”이라는 식의 알림이 뜬다.
AI가 기후데이터를 읽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행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시대. 이제 여행의 흐름은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가 먼저 그려낸다.
지역을 잇는 통합 플랫폼의 등장
기후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관광정책은 이미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다. 부산에서는 해양기상 데이터와 CCTV 영상을 결합한 스마트 해변 관리시스템이 가동 중이다. 해수욕장의 풍속과 수온,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강풍이나 이안류가 감지되면 관제센터가 자동 경보를 발령한다. 시민과 관광객은 모바일 앱을 통해 해변의 안전상태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는 산악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기후안전 지도를 구축했다. 주요 등산로와 계곡의 강수량, 산사태 위험도를 시각화해 제공하며, 폭우 예보 시 위험 지역을 자동 차단한다. 관광객의 위치정보와 연동된 이 지도는 안전한 이동 경로를 실시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관광공사와 협력해 기후데이터 기반 관광수요 예측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항공편 예약률, 숙박 점유율, 기상 데이터를 AI로 통합 분석해 관광객 수요를 주 단위로 예측한다. 이를 통해 특정 시기나 지역의 혼잡을 사전에 조정하고, 교통·숙박 분산 정책을 설계한다. 플랫폼 시범 운영 이후 공항 혼잡과 특정 해안도로 교통량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데이터가 만드는 회복력 있는 관광
관광공사는 이러한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스마트 관광데이터 허브’ 구축을 추진 중이다. 전국 주요 관광지의 기후, 교통, 안전 데이터를 통합해 지자체와 민간이 공동 활용하는 오픈 플랫폼이다. 공사 관계자는 “기후데이터는 관광산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며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관광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데이터는 이제 단순한 예보를 넘어, 정책을 설계하고 위기를 예방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날씨가 여행을 흔드는 시대에서, 데이터가 여행을 지키는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