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지구의 온도가 1도 오르자, 여행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찾는 관광지의 존재 이유를 바꾸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보고서 ‘데이터 기반 기후변화에 따른 관광 대응 방안’(2025년 10월)은 향후 20년간 기후 변화가 관광지의 지형과 운영을 어떻게 바꿀지를 전망했다. 보고서는 “해수면 상승, 생태계 교란, 기온 변화는 기존 관광지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관광지의 출현을 가속화한다”고 분석했다.
물속으로 사라지는 해안의 기억
국내 주요 해안 관광지는 이미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해수면은 지난 30년 동안 평균 10.2cm 상승했으며, 국립해양조사원은 2050년까지 최대 32cm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로 인해 전남 신안, 전북 부안, 제주 남부 해안 등 저지대 관광지는 매년 침식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해수욕장과 갯벌 체험장이 많은 지역에서는 모래 유실로 인해 관광 시즌이 단축되고, 해안 도로·숙박시설 재배치가 진행 중이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해안선 침식률이 높은 지역의 여름철 방문객은 평균 18%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내륙형 호수 관광지는 평균 22% 증가했다. 기후가 관광객의 발걸음을 재배치하고 있는 셈이다.
산이 변하면 여행도 바뀐다
기온 상승은 산악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설악산과 오대산 등 해발 1,500m 이상 고지의 침엽수림은 30년 내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겨울 관광의 상징이었던 스키장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기상청 장기기후전망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할 경우 국내 주요 스키장의 적설일은 현재보다 40% 줄어든다. 이로 인해 겨울 관광 중심지였던 강원 평창·정선 등은 여름형 생태관광, 산악 자전거, 숲속 치유 프로그램 등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평창군은 최근 산림청·관광공사와 협력해 ‘기후적응형 관광모델’을 추진 중인데, 이는 “눈이 사라진 이후에도 지역이 살아남는 법”을 실험하는 프로젝트다.
새로운 여행지의 등장
기후위기는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여행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일부 북부 해역과 고지대는 이전보다 더 쾌적한 기후를 가지게 되었고, 여름철 피서지로 급부상 중이다. 강원 홍천·인제의 고지형 계곡 관광지는 폭염 시기 피난지로 주목받고, 충북 제천·단양의 호수형 관광지도 내륙 대체지로 급성장하고 있다.
국외로 눈을 돌리면, 기후 적응을 산업 전략으로 바꾼 도시들이 눈에 띈다. 덴마크의 삼쇠(Samsø) 섬은 풍력·태양광으로 전력의 100%를 자체 생산하며, ‘탄소중립 섬 관광지’로 변모했다. 삼쇠 주민의 절반 이상이 에너지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해, 관광 수익의 일부가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로 다시 돌아간다. 기후 대응이 곧 지역의 경제 생태계가 된 사례다.
독일의 바덴바덴(Baden-Baden) 역시 기후적응형 관광도시로 평가받는다. 온천 도시로 알려진 이곳은 폭염이 잦아지자 도심 녹지율을 20% 확대하고, 관광객을 위한 ‘열피난 경로’를 조성했다. 관광지도에는 단순 명소뿐 아니라, 그늘·음수대·대피 쉼터 정보가 함께 표시된다. 그 결과, 여름철 폭염 경보일에도 관광객 체류율이 오히려 12% 상승했다.
데이터가 예측하는 ‘이동하는 관광지도’
관광공사 보고서는 향후 2040년까지 국내 관광지의 지리적 중심축이 ‘해안 → 내륙 → 고지대’로 이동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온, 강수량, 방문객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폭염·홍수 위험이 낮고 평균기온이 안정된 지역이 새로운 관광 거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공사 관계자는 “기후데이터 분석은 단순한 예보를 넘어, 관광의 미래지도를 그리는 도구가 되고 있다”며 “사라지는 여행지를 지키는 동시에, 떠오르는 지역의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의 조건
관광은 본래 ‘머무름’의 산업이지만, 이제는 ‘이동’과 ‘전환’을 중심으로 다시 설계되고 있다. 해변의 모래가 사라지고, 눈 덮인 산이 초록빛 숲으로 바뀌는 시대. 기후변화는 여행지를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를 읽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관광정책이 가져야 할 가장 현실적인 감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