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맛 기획⑫] 한국 홍어 – 냄새의 미학, 발효의 정점

  • 등록 2025.11.11 09: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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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한국 전남의 바닷가, 작은 포구에는 하루가 밝기 전부터 홍어 특유의 향이 스며든다. 발효가 깊어질수록 코끝을 찌르는 톡 쏘는 냄새, 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구수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냄새 때문에 기피되기도 하지만, 그 강렬함 속에는 한국 발효 문화의 정점과 지역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홍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남도의 바다와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발효의 예술’이다.

 

 

홍어는 상어과 어류로, 특히 ‘홍어 삼중지느러미상어’가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살아 있을 때는 평범한 흰살 생선이지만, 전통 방식으로 발효시키면 그 맛과 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발효 과정에서는 상어 살을 소금에 절이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어 아미노산과 유기산이 생성된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생기는데, 이를 ‘톡 쏘는 냄새’라고 부른다. 초보자라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오래 익은 홍어를 입에 넣으면 쫄깃한 살과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폭발한다.

 

역사적으로 홍어는 남도 지역에서 중요한 발효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도 이미 ‘홍어 발효 후 보관해 먹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남, 특히 목포와 여수의 어민들은 겨울철 홍어를 잡아 소금과 함께 발효시키며, 이를 설날이나 잔치 음식으로 활용했다. 홍어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풍습과 연결된 음식이었다.

 

홍어 삼합, 즉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방식은 맛과 향의 균형을 완벽히 보여준다. 홍어의 강렬한 향은 수육의 담백함과 김치의 새콤함, 그리고 상큼한 쌈장과 함께 어우러지며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포구의 노점상이나 식당에서 삼합을 주문하면, 손님들은 차례로 홍어를 맛보며 코를 찌르는 냄새와 혀끝의 풍미 사이에서 경쾌한 긴장을 즐긴다.

 

현대에 와서 홍어는 지역을 대표하는 ‘미식 경험’이자, 관광 요소가 됐다. 목포, 여수, 강진 등 남도의 포구에서는 홍어 축제와 시식 체험이 열리며, 관광객들은 ‘냄새를 극복하는 용기’를 시험삼아 홍어를 맛본다. 이 경험은 단순한 음식 체험을 넘어, 발효와 한국인의 미각 철학을 이해하는 시간이다.

 

홍어는 냄새와 맛의 강렬한 대비로 미식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냄새 때문에 피하려다가도, 입안에 들어온 순간 그 풍미에 끌리는 경험은 다른 발효 음식에서 쉽게 느낄 수 없다. 이 음식은 ‘발효의 정점’을 보여주며, 한 민족이 바다와 식재료를 이해하고 다듬어낸 미각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홍어를 먹는다는 것은 남도의 바다와 사람들의 삶, 그리고 수백 년의 발효 전통을 함께 삼키는 일이다. 강렬한 냄새와 혀끝의 쫄깃함, 삼합의 조화 속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미각 철학을 느낀다.


한 입, 두 입 먹으며 점차 익숙해지는 향과 맛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발효의 정점이자 지역의 역사,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홍어는, 한국 미식 문화의 독창성과 용기를 상징한다. 포구의 김 서린 아침 공기 속에서, 한 접시의 홍어 삼합은 오늘도 남도의 정체성을 이어간다.

박주성 기자 report@news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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