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구름은 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정상에 선 사람들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듯 보였다. 중국 안후이성의 황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바꾸는 풍경에 가까웠다. 눈앞에 펼쳐진 수백 개의 암봉과 끝없이 밀려오는 운해는 현실의 거리감을 지워버렸다.
황산에 오르면 왜 중국인들이 이 산을 '천하제일기산(天下第一奇山)'이라 불러왔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기묘하게 솟은 화강암 봉우리와 절벽 끝 소나무, 하루에도 수십 번 표정을 바꾸는 안개와 빛은 황산을 하나의 거대한 산수화로 만든다. 중국 고전 산수화의 원형도 결국 이 풍경에서 출발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황산은 그 명성 그대로, 발을 디디는 순간 숨이 막히는 장관을 선사한다.
새벽이 열어주는 얼굴 - 운해(雲海)
황산의 진짜 얼굴은 새벽에 열린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산 전체를 덮은 운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봉우리들은 섬처럼 떠오른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순간에는 산과 하늘의 경계조차 흐려진다. 그 장면 앞에서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조차 잠시 잊게 된다.
광명정(光明頂, 해발 1,860m)과 시하이대협곡 일대는 황산 풍경의 절정으로 꼽힌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과 운해는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산처럼 변한다. 어떤 순간에는 거대한 파도가 산을 집어삼키는 듯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봉우리들이 구름 위로 솟아오른 신선 세계처럼 보인다. 비가 내린 다음날이나 습도가 높은 날에는 운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 여행자들은 새벽부터 움직인다.
바위에서 피어난 생명 - 기송(奇松)과 괴석(怪石)
황산의 상징인 황산송도 특별하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채 절벽을 향해 비스듬히 뻗은 소나무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영객송(迎客松)'은 마치 두 팔을 벌려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 가지를 뻗고 있으며, 수령이 1,000년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황산의 화강암 봉우리들은 수억 년의 지각 변동과 빙하기를 거치며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깎였다. '날아가는 바위(飛來石)', '원숭이가 바다를 바라보다(猴子觀海)' 등 기암에는 저마다 이름과 전설이 깃들어 있다. 4,000여 개에 달하는 봉우리들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하늘과 사람이 만나는 곳 - 정신과 수양의 공간
중국인들이 오래전부터 황산을 정신성과 수양의 공간으로 여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른 아침, 전망대 위에 흰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태극권 동작을 펼치는 그들의 모습은 황산의 풍경과 하나가 된다. 정상 전망대 곳곳에서는 태극권과 명상, 수련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황산은 오래전부터 도교(道敎)의 성지로 여겨져 왔으며, 이 산의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장(道場)이다. 산 중턱에 자리한 전통 정자(亭子)에 앉아 구름이 산을 덮고 걷히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이 산을 노래했는지 절로 알게 된다.
황산 여행의 방식 - 속도가 아닌 머묾
황산 여행은 단순한 등산과는 조금 다르다. 케이블카와 석도(石道), 절벽길을 따라 이동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어느 전망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따라 황산은 완전히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일출과 일몰, 야간 운해를 모두 경험하려면 산 위 호텔(배운루飛雲樓·사자림狮子林 등) 1박이 필수다. 성수기에는 최소 2~3개월 전 예약이 필요하며, 산 아래 툰시 고성(古城)에서 휘파이 전통 마을 탐방과 함께 2박 3일 일정을 권장한다.
황산은 정상에 오른 사람보다,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 더 깊게 남는 산이다.
구름이 봉우리를 삼키고 다시 걷히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풍경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황산은 관광지가 아니라, 잠시 세상의 속도를 잊게 만드는 거대한 자연의 무대에 가깝다.
여행자를 위한 실전 정보
▷ 가는 방법
최근 중국 무비자 정책과 항공 노선 확대로 황산을 찾는 한국 여행객이 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황산 툰시 공항(TXN)까지 직항 약 2시간. 또는 상하이·항저우 경유 후 고속철도(황산북역 하차) 이용도 인기다. 보통 상하이 또는 항저우와 연계해 이동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홍촌(宏村)과 서체(西遞)를 함께 찾는 일정이 인기다. 특히 홍촌은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 최적 방문 시기
봄(4~5월) — 진달래 만개, 신록과 운해의 조화가 절정
여름(6~8월) — 운해 가장 풍부하나 관광객 집중, 비 후 운해 절경 기대 가능
가을(10~11월) — 맑은 하늘과 단풍, 사진 촬영 최적 시기
겨울(12~2월) — 설경(雪景)이 장관이나 일부 구간 폐쇄 가능
※ 기사에 사용된 황산 사진은 수색초 총동문회 산악대장 황영필 씨가 산행 중 촬영해 제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