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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3] 한 나라, 한 장면⑭ 에티오피아 악숨 오벨리스크

도시는 무너졌는데 돌 하나는 아직 서 있다
악숨은 건물이 아니라 수직으로 기억된다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처음에는 크기를 잘 체감하지 못한다. 평원 위에 검은 돌기둥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비율이 이상해진다. 표면에 새겨진 창문 장식이 실제 건물처럼 보이고, 돌의 높이는 사람 시야를 천천히 뒤로 눕힌다. 고개를 올려도 끝이 바로 닿지 않는다. 높이 약 24m, 무게 약 160t.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이 거대한 화강암 한 덩어리를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세웠는가, 그 질문이 시선을 붙든다. 악숨 오벨리스크는 기념비가 아니라 “인간이 돌 하나를 수직으로 밀어 올린 흔적”이다.

 

주변은 의외로 비어 있다. 고층 건물도 없고 거대한 관광 시설도 없다. 넓은 고원 위에 석주 몇 기가 떨어져 서 있고, 일부는 부러진 채 땅에 누워 있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도시 규모는 사라졌는데 돌기둥만 여전히 하늘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관광객은 유적군 전체보다 먼저 ‘혼자 서 있는 수직’을 기억하게 된다. 악숨은 화려한 폐허가 아니라, 침묵 속에 남겨진 돌의 압박으로 작동한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악숨 오벨리스크는 고대 악숨 왕국의 권력과 기술력을 상징한다. 악숨 왕국은 기원후 1~7세기 사이 홍해 교역을 장악하며 번성했다. 당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문명 중 하나였다. 핵심은 ‘단일 석재의 수직화’다. 여러 돌을 쌓은 탑이 아니다. 거대한 화강암 한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세웠다. 돌 하나가 곧 구조 전체다. 균열이 생기면 끝이고, 중심이 틀어지면 바로 무너진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수직을 만들었다.

 

표면에는 층층이 창문·문·보 모양 장식이 새겨져 있다. 실제 내부 공간은 없지만 멀리서 보면 다층 궁전처럼 보인다. 가까이서는 조각인데, 멀어지면 건축으로 바뀐다. 돌이 건물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돌 자체가 하나의 건축처럼 서 있다. 관광객은 보통 아래에서 올려다보다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가까이 있으면 문양만 보이고, 멀어질수록 전체 높이가 살아난다. 악숨은 설명보다 몸 반응이 먼저 오는 유적이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악숨 왕국은 아프리카 내륙과 홍해를 연결하는 교역 중심지였다. 상아, 금, 향료, 직물과 같은 물자가 이 도시를 통과했다. 교역으로 축적된 부와 권력이 거대한 석주 건설로 이어졌다. 오벨리스크는 왕족 혹은 귀족 무덤 위를 표시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단순한 묘표라기보다 권력 과시 구조물에 가까웠다. 얼마나 높게 세울 수 있는지가 곧 지배력의 증명이었다.

 

석재는 수km 떨어진 채석장에서 절단·운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장비 없이 수백t 규모 돌을 이동시키고 세웠다는 점 때문에 지금도 공학적 수수께끼로 남는다. 돌 하나를 옮기는 것 자체가 당시 국가 역량을 보여주는 사업이었다. 악숨은 거대한 성벽이나 궁전 대신 석주군으로 도시 위엄을 드러냈다. 수평으로 넓히지 않고, 돌을 하늘 방향으로 밀어 올렸다. 이 도시의 권력은 벽보다 수직에서 보였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세월이 흐르며 일부 석주는 무너졌고, 도시 중심 기능도 약화됐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쓰러진 돌조차 규모를 증명했다.

1937년 이탈리아 점령기, 오벨리스크는 분해돼 로마로 옮겨졌다. 식민 권력이 승리 상징처럼 가져간 것이다. 거대한 돌기둥은 본래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오랜 기간 반환을 요구했고, 결국 2005년부터 단계적 반환 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다시 악숨에 재설치됐다. 단순 복원이 아니라 ‘되돌려 세운 수직’이었다. 결과적으로 오벨리스크는 고대 유산을 넘어 식민과 회복의 상징이 됐다. 무너졌던 돌이 다시 세워지면서, 이 장소는 과거 제국뿐 아니라 현대 국가 기억까지 함께 품게 됐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관람은 빠르게 끝나는 편이지만 이동 속도는 느리다. 사람들은 걷다가 반복해서 멈추고 고개를 들어 높이를 다시 확인한다. 시선이 계속 위로 끌려간다. 촬영은 두 방향으로 나뉜다. 가까이서 표면 장식을 담는 방식, 멀리 떨어져 전체 수직 구조를 담는 방식이다. 같은 돌인데 거리마다 전혀 다른 물체처럼 보인다.

 

오전에는 조각 그림자가 깊게 드러나고, 오후에는 화강암 표면이 붉게 변한다. 햇빛 방향에 따라 평면 같던 표면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온다. 무엇보다 이곳은 조용하다. 군중 밀도가 높지 않고, 주변 풍경도 낮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석주가 더 크게 느껴진다. 악숨은 소음 속보다 침묵 속에서 압박이 커지는 유적이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악숨 오벨리스크는 돌기둥 하나가 아니다. 에티오피아라는 오래된 문명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에 가깝다. 제국은 사라졌는데 수직만 남았다. 관광객은 도시 전체보다 검은 석주 한 기를 먼저 기억한다. 경험은 화려함보다 압축된 상징에 남는다. 악숨은 폐허보다 ‘버티는 돌’로 강해진다.

 

에티오피아는 이곳에서 자신이 단순한 현대 국가가 아니라, 오래된 문명권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교역·왕권·종교·식민의 시간이 하나의 돌 표면 위에 겹쳐져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높이보다 지속으로 압박한다. 넘어지고, 옮겨지고, 다시 돌아왔는데도 아직 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시간보다 오래 버틴 구조처럼 보인다.

 

몇 걸음 이동하면 표면 장식이 건물처럼 보이고, 다시 멀어지면 거대한 돌 하나로 돌아온다. 가까이서는 조각이고, 멀리서는 제국이다.

악숨 오벨리스크는 한 번 보고 끝나는 기념비가 아니다. 올려다볼수록 인간이 만든 수직이라는 사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악숨은 무너진 도시보다, 끝내 쓰러지지 않은 돌 하나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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