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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여행기] 슬럼프인가, 통과의례인가 …관악산 연주대에서 빌었다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나이는 먹어가는데 삶은 제자리인 것 같은 날이 있다. 분명히 달리고 있는데 풍경이 바뀌지 않는 꿈속처럼, 발은 움직이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 그런 날이 며칠째 이어지던 참이었다. 나는 산을 찾았다. 관악산.

 

서울 남쪽을 묵직하게 지키고 선 이 산은 조선 태조 이성계조차 두려워했던 곳이다. 강한 화기(火氣)가 도읍을 태울까 봐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쓰고,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세워 불기운을 눌렀다는 산. 그 기운이라면 내 답답한 가슴 정도는 거뜬히 받아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태워줄 것 같았다. 이 묵은 감정들을.

 

 

그 시작점으로 과천향교를 골랐다. 조선 태종 때 세워진 이 향교는 공자를 모시고 유생들이 학문을 닦던 곳이다.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마당을 지키고, 대성전의 단아한 지붕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홍살문을 지나 명륜당 앞에 서니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도 앞이 보이지 않는 날, 저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을까. 수백 년이 지났지만 사람이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정받고 싶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내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

 

나는 배낭 끈을 고쳐 매고 산으로 향했다. 유교의 뜰에서 시작해 불교의 암자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이 길은 어쩌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코스다. 정답을 모르면서도 일단 걷는 것. 걷다 보면 뭔가 보이겠지. 그게 오늘의 계획이었다.

 

 

계곡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것

 

향교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계곡 소리가 따라붙었다. 여름 관악산의 계곡은 생각보다 풍성하다. 맑은 물이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비집고 흘렀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첨벙거렸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꺼내는 가족, 바위 위에 걸터앉아 물소리를 듣는 노부부, 연인끼리 물장난을 치는 젊은이들.

 

저들은 저 순간에 완전히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그냥 지금 이 차가운 물속에.

 

나는 잠시 멈춰 그 장면을 바라봤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저렇게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있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어제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걱정하거나. 계곡물은 그런 나를 개의치 않고 그냥 흘렀다. 시원하게, 쉬지 않고.

 

 

숲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숨이 차오를수록 머릿속이 오히려 조용해졌다. 몸이 힘들면 잡념이 비켜가는 것인지, 아니면 잡념보다 숨쉬기가 더 급한 것인지. 어쨌든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지금 이 순간에 붙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산에 오른 이유는 충분했다.

 

연주암 … 천 년의 그리움이 쌓인 곳

 

한 시간 남짓 오르자 연주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연등 빛깔이 먼저 보였다. 나무 사이로 형형색색의 등이 줄을 지어 흔들리고 있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바람이 불 때마다 등들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연주암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이 산중에서 버텨왔다. 그 세월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80년 군사정권이 불교 정화를 명분으로 전국 사찰을 수색했던 10·27법난 때 이곳도 피해를 입었다. 권력의 칼날 앞에서도 이 암자는 자리를 지켰다. 천 년을 버텨온 것들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름의 뜻은 '임금을 그리워한다(戀主)'는 것. 연주암이 이 이름을 갖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던 격변의 시절,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었던 고려 유신들이 이곳에 올라 멀리 개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 또 하나는 세종대왕의 형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밀려나 이곳에 입산하여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이야기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이 이 산중에서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그 그리움이 암자의 이름 속에 천 년째 남아 있다.

 

마애불 앞에 섰다. 커다란 바위를 깎아 새긴 부처와 보살의 얼굴은 세월에 닳아 있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온화했다. 약사여래불이었다. 중생의 병을 고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부처. 어떤 병이든 이 부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기만 해도 효과적으로 치료된다고 전해진다. 그 앞에 놓인 석재 제단 위에는 누군가 갖다 놓은 국화꽃이 시들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오늘 아침 누가 올려놓은 것일까. 어떤 마음으로.

 

응진전 안을 들여다봤다. 나한상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눈을 감은 얼굴. 인간의 모든 표정이 거기 다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짓는 모든 표정을 미리 새겨놓은 것 같았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체념도. 다 괜찮다고, 다 여기 있었다고.

 

 

대웅전 앞 마당에 섰다. 향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참배객 몇이 조용히 절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모았다. 기도를 하려는 건지, 다짐을 하려는 건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천하를 제패하게 해달라고?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를 잘 버티게 해달라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고, 연등이 흔들렸고, 향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주대 … 629미터의 침묵

 

연주암에서 연주대까지는 다시 숨이 턱에 차는 구간이다. 길이 좁아지고 경사가 급해진다. 바위를 손으로 짚으며 올라야 하는 구간도 나온다. 앞서 가는 사람의 등산화 밑창을 보며 한 발 한 발 올랐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올라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연주대 직전의 계단 앞에 서면 누구나 잠깐 멈추게 된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 세워진 전각. 해발 632미터, 관악산 정상보다 오히려 높은 이 바위 벼랑 위의 공간이 연주대다.

 

"세 번 오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관악산에 얽힌 이 오래된 말은 연주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의상대사가 677년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좌선하며 도를 닦았다는 이 절벽 위의 공간은 예로부터 기(氣)가 강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오른 사람도, 두 번째인 사람도, 드디어 세 번째를 채우는 사람도 — 저마다의 간절함을 들고 이 바위 위에 선다. 어떤 이는 사업 성공을 빌고, 어떤 이는 병든 가족의 쾌유를 빌고, 어떤 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그냥 가슴속에 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계단을 올랐다. 한 칸 한 칸이 길게 느껴졌다.

 

정상 표지석 앞에 섰다. 冠岳山, 해발 629미터. 발아래로 서울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파트 숲이 지평선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도로가 실처럼 뻗어 있었다. 멀리 안개처럼 흐릿하게 도심의 윤곽이 보였다. 저 수많은 창문 뒤에서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울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웃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처럼 어딘가를 오르고 있을 것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다 거기서 거기였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도.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삶들이 그냥 거기 있었다. 레이더돔이 묵묵히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기도하는 것처럼. 혹은 그냥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땀으로 젖은 등이 서늘해졌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비워진 것인지, 채워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발아래 펼쳐진 저 도시가, 저 수많은 삶들이,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관음사 … 내려오는 길,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하산은 관음사 방향으로 잡았다. 올라올 때와 다른 길, 다른 풍경이었다. 산을 오를 때는 정상만 보고 걷지만 내려올 때는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빛의 각도, 발밑에 밟히는 돌멩이의 감촉, 저 멀리 도시의 윤곽.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려오는 길에는 눈에 들어왔다.

 

관음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조용했다. 연주암 쪽의 북적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하늘을 가렸고, 그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빛의 조각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관음사에 닿았다. 울창한 숲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사찰은 연주암의 화려한 연등과 달리 수수하고 단아했다. 처마 아래 붉은 홍등이 나지막이 걸려 있었고, 마당에는 오래된 기와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등산객들이 처마 아래 걸터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산을 내려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홀가분함이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내려온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슬럼프는 여전히 거기 있었고, 삶의 방향은 여전히 흐릿했다. 산이 답을 주지는 않았다. 연주암의 부처도, 연주대의 바람도, 이 낡은 처마 아래 고요함도. 그냥 거기 있었다. 천 년 전에도, 지금도.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쩌면 그게 답인지도 모른다. 해결되지 않아도 그냥 거기 있는 것. 산처럼, 저 천 년 된 암자처럼, 오늘도 내일도 답을 찾지 못한 채로 그냥 걷는 것.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고, 비워지는 것들이 있고, 어느 순간 조금 가벼워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내려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 번을 채워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또 와야겠다고. 아직 두 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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