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홍콩 관광시장의 소비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동안 방한시장을 이끌었던 젊은 자유여행객(FIT)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은퇴 이후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갖춘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새로운 핵심 여행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구 고령화가 아니라 관광 소비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로, 한국 관광산업 역시 이에 맞는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관광청(Hong Kong Tourism Board)이 최근 발간한 'Hong Kong Silver Traveller Market Insights' 보고서는 50세 이상 여행객을 향후 관광시장의 핵심 고객층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이들이 가격 경쟁력보다 여행의 질과 경험을 중시하며 문화와 미식, 자연, 웰니스, 지역 체험 등 가치 중심의 소비를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여러 관광지를 짧게 둘러보는 일정보다 한 지역에 머물며 현지의 삶과 문화를 깊이 경험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홍콩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와도 맞물린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은퇴 이후에도 자산과 소비 여력을 갖춘 중장년층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들을 단순한 고령층이 아니라 여행 경험과 구매력을 갖춘 '프리미엄 소비계층'으로 규정했다. 여행 횟수보다 체류 기간이 길고, 숙박과 식음, 문화 체험 등에 대한 지출 비중이 높다는 점도 이들의 특징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소비 변화는 한국 관광시장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홍콩 방한시장은 한류와 쇼핑, 도심 관광을 중심으로 한 젊은 자유여행객 마케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액티브 시니어는 여행 목적 자체가 다르다. 쇼핑보다 지역의 음식과 역사, 자연경관, 공연, 전통문화, 건강과 휴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일정 또한 여유롭게 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존 상품에 단순히 연령대를 높여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수요를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지방관광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실버 여행객이 선호하는 숲길과 해안길 걷기, 온천과 치유 프로그램, 사찰과 전통문화 체험, 지역 미식, 역사문화유산 등은 수도권보다 지방에 풍부하게 분포해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방공항 국제관광 허브화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 체류형 관광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홍콩 실버시장과 맞닿아 있다. 청주와 대구공항을 중심으로 한 광역 관광코스와 웰니스·슬로우투어 상품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여행상품 기획 방식도 변화가 요구된다. 실버세대는 이동이 많은 일정이나 쇼핑 중심 패키지보다 프리미엄 숙박과 지역 미식, 문화공연, 자연체험,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을 결합한 체류형 여행을 선호한다. 동시에 모바일 예약과 디지털 결제에도 익숙해 여행 준비부터 현지 소비까지 편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령층이라는 이유만으로 디지털 활용도가 낮을 것이라는 기존 인식과는 다른 소비 특성을 보이는 것이다.
세계 관광시장은 이미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경쟁에 들어섰다. 일본은 온천과 지역문화, 장기 체류를 결합한 상품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으며, 유럽 주요 국가는 미식과 예술, 크루즈, 웰니스 프로그램을 앞세워 고소득 중장년층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일정의 여유와 편안한 이동, 전문 해설, 프리미엄 숙박을 결합한 상품은 이미 주요 관광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관광상품은 여전히 젊은 자유여행객이나 단체관광객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아 실버 여행객의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콩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 재방문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서울과 주요 관광지를 경험한 여행객이 적지 않은 만큼, 명동과 경복궁 같은 대표 관광지만으로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지역 축제와 전통시장, 로컬 미식, 치유관광, 자연 속 걷기 여행 등 보다 깊이 있는 콘텐츠를 얼마나 제공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의 중심이 '어디를 갔는가'에서 '무엇을 경험했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관광객 유치 전략도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일반적으로 체류 기간이 길고 숙박과 식음, 문화체험 등에 대한 소비가 높은 계층으로 평가된다. 방한객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도 이들의 소비 특성을 반영한 관광정책과 상품 개발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지방 체류를 유도하는 콘텐츠와 교통, 의료·웰니스 서비스가 결합될 경우 지역관광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홍콩관광청의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령화는 관광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한국 관광산업도 젊은 자유여행객 중심의 성공 경험에 머물기보다, 구매력과 체류 기간, 소비 수준을 모두 갖춘 액티브 시니어를 새로운 핵심 고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홍콩 실버시장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은 특정 연령층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방한 관광의 질적 성장을 이끌 새로운 경쟁력 확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