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호숫가에 서면 먼저 산이 보인다. 물 건너편으로 톈산의 능선이 솟고, 그 아래로 1,607m 고도의 호수가 수평선을 만든다. 한여름이면 사람들은 그 물에 들어간다. 해변에서 수영을 마치고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초원이 나타나고, 유르트가 서 있는 들판에서는 말이 풀을 뜯는다. 산을 찾아온 여행자가 해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에는 말을 타고 초원을 건너는 곳.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는 산악여행과 호수 휴양이 한 일정 안에서 이어지는 곳이다.
이식쿨호는 길이 약 182㎞, 폭 최대 60㎞에 이르는 거대한 고산호수다. 해발 1,607m에 자리하지만 6월부터 9월까지 수영이 가능한 여름 휴양지로 기능한다. 7~8월 수온은 약 21~24℃까지 올라가고, 북쪽 해안에는 촐폰아타와 보스테리를 중심으로 해변과 리조트, 수상레저 시설이 들어섰다. 반대편 남쪽 해안으로 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타므가와 토소르, 보콘바예보 일대에서는 호수와 유르트, 협곡과 초원이 한 여행으로 이어진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키르기스스탄을 떠올리면 대부분 산을 먼저 생각한다. 실제로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형이고 톈산산맥이 나라의 풍경을 지배한다. 그런데 이식쿨에 도착하면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진다. 설산 아래에 거대한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해변이 있으며, 여름이면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이식쿨의 독특함은 산악국가에서 해변여행이 가능하다는 역설에 있다. 해발 1,607m라는 숫자만 보면 고산지대지만 호수 주변에는 모래와 자갈 해변, 카페와 숙박시설, 수상레저 공간이 형성돼 있다. 특히 북쪽 해안은 키르기스스탄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촐폰아타와 보스테리에서는 호수에서 수영하고 휴식을 취하는 여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해변 뒤편에는 톈산이 있다. 물에서 고개를 들면 산이고, 산길을 달리다 돌아보면 다시 호수가 보인다. 이식쿨에서는 휴양과 산악관광이 서로 다른 상품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여기에 유목문화가 겹친다. 남쪽 해안으로 이동하면 리조트 대신 마을과 초원, 유르트 캠프가 나타난다. 말과 목축, 독수리 사냥 문화와 전통적인 환대가 관광 경험으로 연결된다. 호수·산·초원·유목문화가 한 바퀴의 여행 안에 들어온다는 것, 그것이 이식쿨이 키르기스스탄을 대표하는 이유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이식쿨은 톈산산맥의 거대한 지질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길이 약 180㎞, 폭 약 60㎞에 이르는 호수는 산악지대에 형성된 거대한 분지에 자리한다. 깊이는 약 700m에 달하며, 호수로 흘러드는 물은 많지만 바다로 빠져나가는 자연적인 출구는 없다.
호수 이름인 '이식쿨'은 키르기스어로 '따뜻한 호수'라는 뜻이다. 해발 1,600m를 넘는 곳에 있으면서도 겨울에 호수 전체가 얼지 않는 특성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깊은 수심과 낮은 염도, 주변의 온천 등이 결빙을 막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한 호수의 수면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이유다.
사람의 역사도 오래됐다. 호수 주변은 중앙아시아의 교역과 이동이 이어진 공간이었으며, 촐폰아타 주변에는 고대 암각화가 남아 있다. 바위에 새겨진 동물과 사냥 장면은 호수 주변에서 인간의 활동이 오랜 시간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근대 관광의 성격은 소련 시기에 크게 달라졌다. 이식쿨은 요양과 휴양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됐고 해안에 숙박시설과 휴양시설이 들어섰다. 독립 이후에는 기존 휴양관광에 자연체험과 모험관광, 유목문화 체험이 결합됐다.
2001년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 프로그램(MAB)은 이식쿨 주변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호수와 톈산의 자연환경뿐 아니라 전통문화가 함께 남아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이식쿨 관광은 북쪽 해안과 남쪽 해안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북쪽의 촐폰아타와 보스테리에는 리조트와 호텔, 해변시설, 수상레저가 집중됐다. 7~8월에는 현지와 인접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호수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로 변한다.
남쪽 해안은 다른 길을 택했다. 타므가와 토소르, 보콘바예보 등에서는 대형 휴양시설보다 홈스테이와 유르트, 소규모 관광이 중심이 된다. 해변에서 수영한 뒤 협곡으로 이동하고, 초원을 지나 유르트에서 숙박하는 방식이다. 호수를 소비하는 휴양에서 호수 주변의 생활과 자연을 경험하는 관광으로 확장된 것이다.
관광의 확대는 환경관리라는 과제도 가져왔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은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지역사회의 경제활동을 지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식쿨 주변에는 관광과 함께 목축, 농업, 사냥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어 관광개발과 환경보전의 균형이 중요하다. 유네스코는 이 지역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생태적으로 건전한 토지 이용과 경제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변화는 여행 방식도 바꿨다. 이식쿨을 찾는 이유가 단순한 휴양에서 산악활동과 문화체험까지 넓어졌다. 지금은 호수에서 하루를 보내고 산과 협곡으로 이동하는 일정이 이 지역 관광의 중요한 방식이 됐다. 호수 하나가 여행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 된 것이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이식쿨의 여행은 북쪽과 남쪽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촐폰아타와 보스테리에서는 모래 해변과 수상레저, 호텔과 리조트를 중심으로 여름휴양을 즐길 수 있다. 처음 이식쿨을 찾는 여행자라면 접근성과 편의시설을 갖춘 북쪽 해안이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반면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여행의 속도가 느려진다. 타므가와 토소르 일대에는 자갈 해변과 작은 마을이 이어지고, 호수 뒤편으로는 테르스케이알라타우 산맥이 솟는다. 스카즈카 협곡과 바르스콘 계곡 같은 산악 관광지를 호수와 연결할 수 있다. 오전에는 협곡을 걷고 오후에는 호수에서 수영하는 식의 일정이 가능하다.
유르트에서 보내는 밤은 이식쿨 여행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남쪽 해안에는 호숫가 유르트 캠프가 운영되며, 일부는 호수 수영과 숙박을 한곳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호텔 객실과 달리 유르트에서는 초원과 호수의 경계가 사라진다. 낮에는 물에 들어가고 밤에는 유르트 안에서 잠을 잔다.
여름이 이식쿨의 핵심 계절이다. 6~9월은 수영과 야외활동을 즐기기 좋은 시기이며, 특히 7~8월에는 해변 관광이 절정에 이른다. 반대로 5월과 10월은 성수기보다 한적한 풍경을 찾는 여행에 적합하다. 같은 호수라도 계절에 따라 휴양지와 자연관광지의 얼굴이 달라진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이식쿨에서 여행자는 한 가지 풍경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해변에서는 수영하고, 차를 타면 산으로 들어가고, 산길에서 내려오면 다시 호수가 펼쳐진다. 초원에는 말이 있고, 그 옆에는 유르트가 있다. 자연과 생활이 서로 다른 관광상품으로 나뉘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이식쿨 지역에서 호수를 중심으로 아열대 환경부터 툰드라에 이르는 다양한 경관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 안에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지역에서는 335종의 동물이 기록됐으며, 그중 39종은 키르기스스탄 레드북에 포함돼 있다. 이식쿨은 거대한 관광지가면서 동시에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그래서 이식쿨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수 하나를 보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북쪽 해안에서 휴양을 경험하고, 남쪽으로 넘어가 초원과 협곡을 만나고, 유르트에서 하루를 보내는 식으로 호수의 양쪽 얼굴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식쿨이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의 생활과 관광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행자는 결국 호수의 크기보다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끌린다. 설산을 바라보며 물에 들어가고, 해변을 떠나 말 위에 오르고, 다시 유르트에서 밤을 맞는다. 하루 동안 여행의 방식이 계속 바뀐다. 산악국가의 여행이 반드시 등산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식쿨호는 키르기스스탄의 바다가 아니다. 바다가 없는 산악국가가 가진 가장 독특한 휴양 공간이다. 설산을 바라보며 호수에 들어가고, 호수를 떠나 초원을 달리고, 다시 유르트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산과 물과 유목의 시간이 하나의 여행으로 이어진다.
이식쿨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호수 하나의 풍경이 아니다. 물에서 올려다본 설산, 산에서 내려다본 호수, 초원 위의 말, 밤의 유르트가 차례로 이어지는 순서다. 키르기스스탄은 이곳에서 산악국가의 여행법을 다시 보여준다. 정상에 오르는 대신, 산과 호수 사이를 움직이는 것. 그것이 이식쿨이 남기는 여행의 얼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