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규모로 경쟁하는 유럽 도시가 아니다. 류블랴니차강을 따라 형성된 역사도심과 다리, 시장, 광장, 공원이 촘촘하게 연결되고 대부분의 주요 관광지를 걷거나 자전거로 둘러볼 수 있는 도시 구조가 관광 경쟁력의 기반이다. 특히 건축가 요제 플레치니크가 20세기 전반 구축한 도시공간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류블랴나 관광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플레치니크가 바꾼 수도의 공간
류블랴나 관광에서 플레치니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기존 도시를 허물어 새로 만드는 대신 강과 거리, 광장, 시장, 공원과 건축물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성했다. 유네스코는 이를 기존 도시와 자연환경을 존중하면서 주민을 위한 공공공간을 만들어낸 ‘인간 중심 도시설계’의 뛰어난 사례로 평가했다.
그의 도시계획은 류블랴니차강을 따라 이어지는 수변축과 트르노보에서 프랑스혁명광장, 베고바 거리, 콩그레스광장으로 연결되는 녹색축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삼중교, 구두공의 다리, 중앙시장, 국립·대학교도서관 등 주요 공간이 이 도시 구조에 포함된다. 관광객이 명소에서 명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공간을 따라 걷는 과정 자체가 관광이 되는 구조다.
자동차보다 사람에게 열린 구도심
류블랴나의 녹색정책은 관광 홍보 문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 중심지는 자동차 통행이 제한돼 있으며 주요 관광지는 도보와 자전거로 접근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 관광청도 류블랴나의 주요 명소 대부분을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을 도시 관광의 특징으로 제시한다.
이 같은 구조는 관광객에게도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류블랴니차강변을 따라 걷다가 중앙시장을 지나고, 광장을 거쳐 성 언덕으로 올라가는 동선에서 건축과 생활공간, 상업시설과 녹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광을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민이 사용하는 도시공간을 관광자원으로 전환한 방식이다.
류블랴나성은 이 도시의 공간구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언덕 위 성에서 내려다보면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구도심과 녹지, 주변 산악지형이 함께 들어온다. 성 내부에는 박물관과 전시, 문화행사 공간도 마련돼 있어 전망대에 그치지 않는 문화관광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녹색 수도’에서 ‘창의적 관광도시’로
류블랴나의 관광 전략은 자연환경 보존에서 문화와 창의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6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유럽 녹색 수도’로 선정된 데 이어 2015년에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문학도시로 지정됐다. 도시의 녹지와 문화자원을 관광상품으로 연결해온 결과다.
2026년에는 새로운 평가도 받았다. 류블랴나는 올해 ‘유럽 최고의 창의적 도시 관광지’로 선정됐다. 28개국 223개 후보가 경쟁한 가운데 관광 전략과 도시개발에 창의성을 체계적으로 결합해온 점이 평가됐다. 류블랴나 관광당국은 2021~2027 관광개발전략을 통해 2027년까지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창의적 도시관광 목적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유산을 ‘보존’하는 데서 ‘관리’하는 단계로
관광객이 늘어나면 세계유산도 새로운 과제를 맞는다. 류블랴나는 플레치니크 유산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방문객 관리와 보존을 병행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료에서도 관광 압력과 도시 개발을 주요 관리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2025~2028년 방문객 관리와 2026~2033년 새로운 관리계획 수립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류블랴나 관광의 중요한 변화다. 세계유산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보존하면서 주민의 삶과 관광을 공존시킬 것인가가 도시 관광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공간을 그대로 확장하는 대신 기존 도시의 규모와 기능을 유지하면서 관광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수도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관광권
류블랴나의 관광 경쟁력은 도시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도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중앙슬로베니아의 산과 하이킹 명소, 자연보호지역을 만날 수 있어 도시관광과 자연관광을 결합하기 쉽다. 슬로베니아 관광청은 류블랴나를 중심으로 도시의 문화적 경험과 인근 자연을 연결하는 여행을 주요 관광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류블랴나는 대형 관광명소를 연속해서 소비하는 일정과는 다른 여행을 제안한다. 오전에는 플레치니크의 건축을 따라 구도심을 걷고, 강변과 시장에서 현지 생활을 경험한 뒤 오후에는 성이나 공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수도 밖의 산과 자연까지 연결하면서 슬로베니아의 도시와 자연을 하나의 여행권으로 묶을 수 있다.
류블랴나가 주목받는 이유는 결국 도시의 크기가 아니라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다. 플레치니크가 남긴 인간 중심의 공간설계는 세계유산이 됐고, 자동차보다 보행자를 우선한 구도심은 지속가능관광의 기반이 됐다. 여기에 문화·창의성을 관광전략에 결합하고 방문객 관리까지 강화하면서 류블랴나는 ‘예쁜 유럽 수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류블랴나의 관광은 명소를 많이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도시를 어떻게 보존하고, 주민과 관광객이 어떻게 함께 사용하며,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관광 모델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