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관광·소비 지도가 근본적인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K-팝 스타의 콘서트장을 찾거나 유명 영화 촬영지 앞에서 사진을 남기던 이른바 ‘과시형·관람형’ 관광 시대는 저물었다. 올 들어 방한 외래객들은 한국인이 일상에서 먹고, 입고, 피부를 관리하며, 영양제를 챙겨 먹는 '한국형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에 침투해 경험을 구매하는 ‘생활 밀착형’ 소비 패턴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나 현장의 수용 태세와 지자체의 관광 행정은 이러한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대형 면세점을 나와 동네 약국과 골목 상권으로 밀려드는 동안, 행정 당국은 여전히 수십,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1회성 K-팝 메가 이벤트 유치에 집착하고 있다. 지방공항 직항 노선을 늘려 외국인을 모아놓고도 정작 지역 상권에는 잔돈조차 돌지 않게 만드는 ‘알맹이 없는 숫자 놀음’이 계속되는 이유다.

[Part 1] 공연표 사던 외국인의 반전… 7.8조 한류 소비 이끈 'K-약국'과 '일상 상권'
한국관광공사의 2026년 1~7월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방한 외국인이 K-한류 관련 분야에서 지출한 총소비액은 7조 8,26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9%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누적 방한 외래객이 1,280만 명을 돌파하며 견조한 회복 흐름을 유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류 연관 소비가 내수 관광 산업의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방대한 소비 수치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충격적인 구조적 반전이 나타난다. 한류 열풍의 핵심 진원지로 여겨졌던 K-공연 직접 소비 비중은 전체 한류 지출액의 단 0.2%에 불과했다. 외국인들이 실제로 지갑을 연 곳은 K-쇼핑(39.7%), K-뷰티·웰니스(21.1%), K-패션(13.8%), K-한식(10.3%) 등 한국인의 일상과 직결된 연관 산업군이었다. 무대 위 스타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한국인이 입는 브랜드의 옷을 골목길 편집숍에서 사고, 한국인이 즐겨 찾는 식당에서 음식을 맛보며, 한국인과 동일한 웰니스 시설에서 케어를 받는 '일상의 경험화'에 압도적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상 침투형 소비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의료관광과 동네 약국 상권의 결합에서 확인된다. 올 1~7월 외국인의 의료관광 소비액은 1조 4,062억 원으로 전년 대비 60.1% 성장했다. 주목할 대목은 의료 행위 이후 인근 일상 상권으로 파급되는 연계 소비 동선이다.
강남과 홍대 등 주요 거점의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진료를 마친 외국인들이 건물 내 혹은 인근 약국으로 대거 유입되어, 의사가 추천하거나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고기능성 화장품, 피부 재생 연고, 영양제를 대량으로 싹쓸이 구매하는 패턴이 정착했다. 이로 인해 올 상반기 외국인의 약국 업종 소비액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07.1% 폭증했다. K-뷰티에 대한 신뢰가 대형 유통 채널을 넘어 한국인의 일상적인 제약 및 생활 상권으로 완벽히 확산됐음을 증명하는 지표다.
[Part 2] 109% 폭증 뒤에 숨은 '공항 잔혹사'… '수도권 우회 통로'로 전락한 지방공항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일상 상권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입국 관문의 지형 역시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2026년 상반기 청주·대구·김해·제주 등 전국 4개 주요 지방공항을 통해 입국한 외래객 비중은 20.7%를 기록하며 통계 집계 이래 최초로 20% 벽을 돌파했다. 올 상반기 지방공항 입국 외래객 수만 196만 7,22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1% 급증했으며, 이는 같은 기간 수도권 공항 성장률인 17.3%를 2.4배 이상 뛰어넘는 속도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지방 직항 노선 공격적 취항이 외형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화려한 수치 뒤에는 수억 원의 예산을 바닥에 쏟아붓고도 정작 지역 상권은 찬바람만 맞는 지자체들의 부실한 관광 행정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은 청주공항이다. 올 상반기 청주공항 입국 외래객은 6만 2,97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9.1%라는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LCC들이 대만, 일본, 중국의 트렌디한 20대 여성 개별여행객(FIT)을 겨냥해 직항 노선을 집중 배치한 결과였다.
하지만 터미널이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음에도 충북 지역 상권에는 잔돈조차 돌지 않았다. 청주공항 입국 외래객 중 무려 34.5%가 입국 직후 공항 밖으로 나와 준비된 교통편을 타고 곧바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탈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충북 지역 내 외래객 1인당 카드 소비액은 6만 238원에 머물며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38.2%나 급감했다. 지자체가 수억 원의 운항 장려금을 지원하며 항공 노선을 유치해 외래객을 모아놓았지만, 지역 내부로 끌어당길 체류형 자원과 2차 연계 교통망이 부실하다 보니 공항이 단순 '수도권 우회 통로(Pipe)'로 전락하는 빨대 효과가 데이터로 증명된 셈이다.
반면 입국자 수 성장률이 2.6%에 그치며 정체기를 맞이한 대구공항은 청주와 완전히 정반대의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올 상반기 대구공항 입국 외래객의 1인당 지역 내 소비액은 25만 5,355원으로 전년 대비 9.9% 증가했다. 실속 경영의 비결은 입국객의 73%를 대구·경북권 내부로 완벽하게 묶어둔 밀착형 체류 생태계에 있었다. 대구공항은 피부·성형 등 의료관광 비중(26.4%)을 명확한 표적으로 설정하고, 진료 후 도심 상권에서의 숙박 및 쇼핑으로 이어지는 고부가 연계 동선을 정밀하게 구축해 놓았다. 단순 입국자 수라는 숫자 놀음 대신, 명확한 방문 목적을 가진 외래객을 흡수해 지역 경제의 내실을 챙긴 대표적 성공 사례다.
[Conclusion] 0.2% 환상 깨고 '체류 인프라'로 판 바꿔야… 관광 행정의 핵심 과제
이처럼 공항별로 극명하게 갈린 성적표는 최근 국내외 관광객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1~2박 중심의 단기 분산형 여행' 고착화 현상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체류 기간이 짧아질수록 접근성이 우수하고 방문 목적이 명확한 관광지만 선택받는 양극화가 심화된다. 올 1~7월 비수도권 관광 소비가 전년 대비 9.7%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세종(+3.3%), 제주(+3.0%), 충남(+2.3%)처럼 단기 체류객을 잡아둘 수 있는 신규 체험 및 먹거리 거점(보령 머드축제, 태안 신진항, 보령 상화원 등)을 발 빠르게 구축한 지역으로만 외래객의 발길이 쏠리고 있다.
결국 방한 관광 2,000만 시대를 앞둔 대한민국 관광 행정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재편돼야 한다.
- 과시형 메가 이벤트에서 '골목길 수용 태세'로 전환 : 전체 한류 소비의 0.2%에 불과한 1회성 K-팝 공연 유치에 재정을 쏟아붓는 포퓰리즘을 중단해야 한다. 대신 외국인이 몰려드는 동네 약국, 일반 의원, 골목 상권에 다국어 안내 체계를 구축하고, 간편결제 시스템 오류와 바가지요금을 근절하는 현장 인프라 개편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 항공사 퍼주기에서 '체류 목적지 구축'으로 전환 : 지자체들이 단순히 운항 장려금을 주며 노선만 유치하는 접근법은 수도권으로 손님을 빼앗기는 재정 낭비로 귀결된다. 공항에서 도심 상권으로 직행하는 교통망을 정비하고 지역 특화 자원을 결합한 체류형 목적지 구축으로 전환해야 한다.
- 타깃 맞춤형 융복합 상품 개발 : 대구공항의 의료-쇼핑 연계 사례나 충남의 단기 체류형 콘텐츠 사례처럼, 외래객이 공항과 관문에 내리는 순간 지역 내에 머물며 지갑을 열게 만드는 입체적인 동선 설계와 고부가 융복합 상품을 정밀하게 제공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은 이미 우리 집 앞 약국과 동네 식당에서 진짜 한국을 소비하고 있다. 환상 속 숫자 놀음에서 벗어나 99.8%의 일상 상권과 체류 인프라로 눈을 돌릴 때, 비로소 내수 경제와 지역 상권이 살아나는 진정한 방한 관광 대전환이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