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일본에서 ‘덕질’이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 이른바 ‘오시(推し)’를 응원하는 ‘오시카츠(推し活)’ 인구는 약 1,940만 명으로 추산됐다. 시장규모는 약 4.1조 엔까지 커졌다. 더 주목할 대목은 이 시장이 특정 세대나 일부 마니아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인 4명 중 1명꼴로 오시카츠를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덕질’은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을 넘어 소비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시’가 생기면 소비가 달라진다
‘오시(推し)’는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고 응원하는 대상을 뜻한다. ‘오시카츠(推し活)’는 그 대상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아이돌·가수·배우·성우·스포츠 선수는 물론 애니메이션과 만화 캐릭터까지 대상이 다양하다. 음식점이나 장인, 철도 같은 교통수단, 특정 여행지처럼 일상과 지역에 존재하는 대상도 오시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오시를 위해 상품을 구매하는 행동은 ‘오시카이(推し買い)’로 확장된다. 좋아하는 대상을 발견하고, 관련 상품을 사고, 현장을 찾아가 경험하는 행동이 이어지면서 오시카츠는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소비와 이동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행동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출처: CDG·오시코코, ‘제3회 오시카츠 실태 앙케이트 조사’]
구조는 단순하다.
대상을 접한다 → 좋아하게 된다 → 응원한다 → 관련 상품을 소비한다 → 경험을 공유한다 → 다시 좋아하게 된다.
여기서 일반적인 취미와 다른 소비가 만들어진다. 팬에게 관련 상품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대상을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수단이 된다.
일본에서는 이런 소비를 ‘오시카이(推し買い)’라고 부른다. 좋아하는 대상과 관련된 상품이나 굿즈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다. 즉 ‘좋아한다’는 감정이 ‘구매한다’는 행동으로 바로 연결되는 소비다.
1,940만 명…이제 마니아 시장이 아니다
2026년 1월 CDG와 Oshicoco가 실시한 제3회 오시카츠 실태 앙케이트 조사에는 일본 거주 15~69세 남녀 2만3,125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오시카츠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4.0%였다. 이를 인구로 환산하면 약 1,940만 명이다. 전년 조사보다 556만 명 늘어난 규모다.
시장규모는 더 눈에 띈다. 조사기관은 2026년 오시카츠 시장을 약 4.1조 엔으로 추산했다. 전년 약 3.5조 엔에서 증가한 것으로, 조사기관은 이를 일본의 국내 일일여행 시장과 비슷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1인당 지출도 적지 않다. 연간 평균 지출액은 약 21만 엔 수준으로 집계됐다. 다만 평균값만으로 팬들의 소비행태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조사에서는 소비액의 편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중위값은 약 4만 엔 수준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얼마나 쓰느냐만이 아니다.
1,940만 명이 반복적으로 돈을 쓰는 소비층으로 형성됐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의 힘이다.
소비의 대상이 넓어질수록 시장도 커진다
오시카츠의 또 다른 특징은 소비 대상의 확장성이다.
아이돌이나 배우처럼 전형적인 연예인 팬덤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만화, 스포츠, 음식점, 장인, 교통수단, 특정 장소까지 ‘오시’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는 시장의 경계가 콘텐츠 산업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명의 팬이 좋아하는 대상이 아이돌이라면 앨범과 굿즈, 공연 티켓, 팬클럽 등에 소비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캐릭터 상품과 작품 관련 콘텐츠가 소비 대상이 된다. 특정 지역이나 장소가 오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곳에 직접 가는 이동과 체류가 소비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시카츠의 진짜 확장성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소비하는 산업과 장소가 계속 달라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오시카츠는 문화산업만의 시장이 아니다. 유통, 외식, 교통, 숙박, 관광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잠재적인 소비 플랫폼에 가깝다.
‘덕질의 늪’에 빠진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팬덤의 규모만큼 중요한 것이 몰입도다.
2026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51.1%는 자신이 ‘덕질의 늪에 빠졌다’고 답했다. 오시카츠가 단순한 관심이나 일회성 구매가 아니라 일상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지속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시카츠를 앞으로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하거나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응답은 91.4%에 달했다. 한 번의 유행으로 소비가 끝나는 시장과는 다른 특성이다.
팬덤 소비에서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소비의 재료가 된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구매하고, 공연이 열리면 참가하고, 관련 콘텐츠가 공개되면 다시 소비한다. 여기에 SNS를 통한 공유가 더해지면서 팬의 경험 자체가 또 다른 소비와 관심을 만들어낸다.
상품이 좋아서 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팬이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가 커지는 구조다.
이것이 오시카츠 시장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리고 팬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관광산업이 오시카츠를 주목하게 된다.
오시카츠는 상품을 구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거나, 공연과 이벤트가 열리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행동으로 확장된다.
앙케이트 조사에 따르면 오시 관련 특정 목적지를 방문하는 ‘성지순례’ 경험자는 46.4%였으며, 오시의 이벤트나 라이브 개최 현장으로 이동하는 ‘원정’ 경험자는 조사에 따라 50.5~63.6%에 달했다.
이 순간 소비의 무대가 달라진다.
굿즈를 사는 소비자는 매장에 돈을 쓴다. 공연을 보러 가는 팬은 티켓에 돈을 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출하고, 현지에서 식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기념품을 구입한다.
팬덤의 소비가 공간을 이동하는 순간 관광이 된다.
일본 관광산업이 오시카츠를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관광수요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자료 역시 오시카츠를 높은 몰입도를 바탕으로 장거리 이동과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 소비행태로 분석하고 있다.
관광의 출발점이 ‘명소’에서 ‘애착’으로
기존 관광은 유명한 장소와 볼거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시카츠 관광의 출발점은 다르다.
‘가볼 만한 곳’이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간다.
이 차이는 관광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유명 관광지는 방문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반면 팬덤과 연결된 장소는 이미 팬에게 방문해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 콘텐츠와 인물, 작품 또는 특정 대상에 대한 애착이 이동의 동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관광지 입장에서는 새로운 관광객을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팬의 감정을 실제 방문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관광의 공식이 달라진다.
팬이 상품을 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지역으로 이동하고, 지역에서 소비하고, 그 경험을 다시 SNS에 공유한다. 다른 팬이 그 경험을 보고 다시 방문한다.
팬덤 → 이동 → 현지 소비 → 공유 → 새로운 팬의 이동.
오시카츠는 이 같은 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덕질’은 이제 관광객을 만드는 시장이다
일본의 오시카츠 시장은 약 1,940만 명, 약 4.1조 엔 규모로 성장했다. 물론 이 시장 전체가 관광시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시카츠 소비의 상당 부분은 콘텐츠와 상품, 이벤트 등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오시카츠의 소비 대상이 장소와 지역으로 확대되고, 팬의 소비행동이 실제 이동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관광산업이 주목해야 할 것은 ‘덕질’이라는 유행어가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까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지다.
일본에서는 이미 팬이 작품의 배경을 찾아가고, 공연을 따라 지역을 이동하며, 일반 관광객이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까지 경험하려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
다음 단계는 이 팬들의 이동을 어떻게 관광상품으로 만들 것인가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답은 의외의 곳에 있다. 유명 관광지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장소부터 지역 음식,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던 공간, 공항의 제한구역, 목욕탕의 영업 준비 과정까지도 팬에게는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실제 방문으로 바꾼 일본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