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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숙소’를 여행지로 만든다

경험형 숙박 확산…한국 지역관광에도 변화 요구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숙박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잠을 자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머물던 숙박시설이 자연과 문화, 미식, 웰니스, 체험을 결합한 관광 콘텐츠로 진화하면서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험형 숙박’이 국립공원과 자연관광지를 중심으로 확산하며 주변 지역의 식음료와 관광, 교통, 체험 소비까지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관광객을 얼마나 많이 불러오느냐에 집중해온 지역관광 정책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숙소에서 시작되는 여행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는 '경험형 숙박시장 부상과 지역관광 활성화 전략'에서 최근 여행객의 선택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에는 목적지를 먼저 정하고 숙소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숙소의 환경과 디자인, 자연 접근성, 웰니스, 현지 경험 등을 보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숙박시설이 목적지의 부대시설이 아니라 여행 경험의 핵심이 되면서 경쟁력도 객실의 크기나 편의시설을 넘어 ‘무엇을 경험하게 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경험형 숙박은 자연환경과 숙박을 결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연·디자인·식음·웰니스에 지역 체험을 더하고, 숙박객이 숙소 밖으로 나가 주변 식당과 카페, 관광시설, 가이드, 체험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도록 동선을 만든다. 숙박시설 하나가 지역 관광사업자를 연결하는 접점이 되면서 객실 매출 외에 식음료, 프로그램, 가이드, 장비 대여, 교통, 지역상품 등으로 소비 영역도 넓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언더 캔버스(Under Canvas)와 오토캠프(AutoCamp)다. 언더 캔버스는 옐로스톤·브라이스 캐니언·그랜드 캐니언 등 국립공원 인근에서 사파리 텐트와 호텔 수준의 편의시설을 결합하고 현지 체험과 식음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오토캠프 역시 요세미티·조슈아트리·캐츠킬 등 자연관광지 인근에 에어스트림과 캐빈, 텐트, 클럽하우스 등을 갖추고 지역 체험과 웰니스 프로그램을 연계한다.

 

이 흐름은 대형 호텔업계의 참여로도 이어지고 있다. 힐튼은 오토캠프와 제휴해 자사 예약망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메리어트는 2024년 포스트카드 캐빈스(Postcard Cabins)를 인수하고 트레일본(Trailborn)을 아웃도어 숙박 포트폴리오에 편입했다. 자연 속 숙박이 독립적인 틈새상품을 넘어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유통망과 결합하기 시작한 셈이다.

 

 

숙박이 지역경제의 관문이 되다

 

경험형 숙박의 가치는 객실 판매에만 있지 않다. 미국 국립공원 주변의 ‘게이트웨이 커뮤니티’는 숙박·음식·교통·가이드·렌털 등 방문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관광객의 소비를 지역 안으로 연결한다. 보고서는 숙박시설이 이 과정에서 관광정보를 제공하고 지역 사업자와 방문객을 연결하는 핵심 접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립공원 관광의 경제효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2025년 국립공원 레크리에이션 방문은 3억2301만 건, 숙박 방문은 1301만 건에 달했다. 2024년 국립공원 방문객이 주변 게이트웨이 커뮤니티에서 지출한 금액도 563억 달러에 이르며, 숙박을 비롯해 음식과 서비스 등 지역 산업으로 소비가 확산됐다.

 

결국 핵심은 관광객을 특정 명소에 내려놓고 다시 이동시키는 구조가 아니다. 숙박을 중심으로 관광객의 하루와 소비 동선을 지역 안에서 연결하는 구조다. 보고서가 제시한 지역관광의 흐름도 ‘목적지 선택→숙박 확보→지역 체험·음식·교통·쇼핑 연결→지역 브랜드 형성→일자리와 지역사업 매출 확대’로 이어진다.

 

 

한국은 ‘숙박 공급’에서 ‘체류 생태계’로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지역관광에도 적용할 여지가 크다. 보고서는 지역이 새로운 관광시설을 계속 건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의 농업·양조장·건축·해안·산림 등 지역 자원을 숙박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숙박시설을 단독 상품으로 개발하기보다 주변 식당과 카페, 농장, 공방, 관광가이드, 교통사업자와 연결해 하나의 체류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빈집과 빈농가, 노후 모텔, 폐교, 유휴 공공시설 등 활용도가 낮은 자산은 지역 숙박 콘텐츠로 전환할 수 있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시설을 숙박업소로 바꾸는 데서 끝내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폐교를 숙박시설로 활용한다면 인근 농장 체험과 지역 식당, 공방, 관광 프로그램, 지역 교통을 함께 묶어 숙박객의 하루 전체가 지역 안에서 소비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숙박시설 확충과 달리 기존 지역자산을 관광객의 체류와 소비로 연결하는 접근이다.

 

정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방문객 수만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평균 체류일수, 객실 외 지역 소비액, 지역사업자 참여율, 지역 일자리, 재방문율, 주민 만족도 등을 함께 봐야 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지역보다 오래 머물고, 지역에서 더 많이 소비하며, 지역사업자에게 실제 매출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역관광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험형 숙박 사례가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숙박은 관광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될 수 있고, 동시에 관광객을 지역의 음식·체험·교통·쇼핑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지역관광도 숙박시설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유휴자산과 지역 콘텐츠를 결합해 ‘머무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지역관광의 경쟁력은 무엇을 더 건설하느냐보다, 관광객이 어디에서 머물며 무엇을 경험하고 얼마를 지역에 남기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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