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짜오프라야 강 동쪽에 황금 지붕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햇빛이 닿을 때마다 건물 전체가 금속처럼 번쩍인다. 탑과 지붕, 벽면 장식이 복잡하게 겹쳐진 이 공간은 단순한 궁전이 아니다. 태국이라는 국가가 형성된 권력의 중심이다. 1782년 라마 1세가 수도를 방콕으로 옮기며 이 궁전을 세웠다. 왕조 이름은 ‘차크리 왕조’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태국 왕실의 출발점이다. 도시가 성장하기 전부터 왕궁이 먼저 자리 잡았다. 방콕의 공간 구조는 여기서 시작됐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왕궁은 약 21만㎡ 면적의 거대한 궁정 단지다. 궁전·사원·행정 건물이 함께 배치돼 있다. 단순한 왕의 거처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집합체다. 왕권, 종교, 행정이 같은 공간에서 움직였다. 이 단지 안에는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 가운데 하나인 왓 프라깨우가 있다. ‘에메랄드 불상’으로 알려진 옥불이 모셔진 사원이다. 불상 높이는 약 66cm에 불과하지만, 태국 왕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왕이 직접 계절마다 의복을 갈아입히는 의식이 지금도 이어진다. 태국에서 왕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다. 헌법상 군주제 국가지만 왕실의 상징적 권위는 여전히 강하다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해가 기울면 물빛이 먼저 변한다. 잔잔한 운하 위로 오래된 석조 창고들이 하나둘 불빛을 켠다. 그리고 가스등이 켜지는 순간, 도시는 갑자기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일본의 어느 항구 도시보다 조용하고, 어느 관광지보다 오래된 공기가 남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오타루다. 홋카이도 서부에 자리한 이 도시는 한때 북일본 최대의 무역항이었다.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 홋카이도에서 잡힌 청어와 각종 물자가 이 항구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실려 나갔다. 당시 세워진 은행과 상사, 창고 건물들이 지금도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역사 풍경처럼 보인다. 이 건물들은 오늘날 카페와 레스토랑, 상점으로 바뀌며 오타루 특유의 낭만적인 거리 풍경을 만들고 있다. 물류의 길에서 낭만의 운하로 오타루를 상징하는 풍경은 단연 오타루 운하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약 1.1km 이어지는 이 운하는 1923년에 완성된 항만 시설이었다. 큰 화물선이 바다에 정박하면 작은 배가 화물을 운하로 옮겨 창고로 운반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항만 시설이 현대화되면서 운하는 점차 역할을 잃었다. 1960년대에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운하를 매립하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도시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올려다본다. 성당의 첨탑, 왕궁의 돔, 언덕 위의 성채. 인간은 오래전부터 가장 높은 곳에 상징을 세워왔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가 믿는 가치와 시대의 방향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산 정상에 서 있는 거대한 조각상도 그 계보 위에 있다. 바로 구세주 그리스도상이다. 이 조각상은 해발 약 700미터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서 있다. 양팔을 넓게 펼친 모습은 마치 도시 전체를 감싸 안는 듯하다. 높이 약 30미터의 석상과 그 아래 받침대를 합치면 38미터에 이른다. 1931년 완공된 이 작품은 이제 브라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해안과 산, 그리고 도시가 겹쳐지는 풍경 속에서 그리스도상은 리우의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조각상이 세워진 시기는 브라질 사회가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공화국 체제가 자리 잡아가던 20세기 초, 가톨릭 교회와 시민 사회는 도시를 대표할 상징을 구상했다. 그 결과 선택된 것은 신앙의 상징이었다. 조각상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국가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신의 형상이 도시의 상징이 된 것이다. 건축과 조각은 기술의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다. 바위 벽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몇 걸음 더 들어가면 갑자기 시야가 열린다. 높은 석회암 절벽이 둘러싼 호수, 그리고 그 물 위에 뒤집혀 떠 있는 또 하나의 산과 숲. 처음 이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많은 여행자들은 잠시 말을 잃는다. 말레이시아 북부 이포 인근에 자리한 타식 체르민은 말레이어로 ‘거울 호수’라는 뜻을 가진다. 이름 그대로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물 위에 주변의 석회암 절벽과 숲이 그대로 반사된다. 실제 풍경과 물속 풍경이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다. 이 호수는 말레이시아 관광지 가운데서도 비교적 늦게 알려진 곳으로, 최근 자연 풍경을 찾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터널을 지나 만나는 비밀의 호수 타식 체르민의 가장 큰 특징은 ‘숨겨진 위치’다. 일반적인 호수처럼 도로 옆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방문객은 먼저 오래된 채석장 입구를 지나고, 이어 바위를 뚫어 만든 좁은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터널은 불과 수십 미터 길이지만, 그 안은 어둡고 습하다. 빛이 거의 없는 통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풍경은 갑자기 바뀐다. 터널 끝에서 나타나는 것은 거대한 자연의 공간이다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태평양 절벽 위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거친 파도가 검은 바위에 부딪히고, 안개가 바다와 숲 사이를 천천히 흐른다. 도로는 해안을 따라 이어지고, 어느 순간 숲과 폭포가 나타난다. 다시 차를 달리면 만년설을 이고 선 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푸른 호수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미국 북서부에 자리한 오리건은 이런 풍경들이 한 주 안에서 이어지는 곳이다. 태평양 해안과 원시림, 화산 산맥, 깊은 호수, 그리고 고원 지형까지 서로 다른 자연이 짧은 거리 안에서 연결된다. 그래서 이곳의 여행은 특정 도시보다 풍경을 따라 이동하는 로드트립으로 기억된다. 오리건에서는 목적지보다 그 사이의 길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태평양 절벽이 이어지는 거대한 해안선 오리건 여행의 첫 장면은 바다다. 태평양을 따라 약 580킬로미터 이어지는 오리건 해안선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해안 절벽 아래로는 거친 파도가 부서지고, 바다 위에는 기묘한 바위섬들이 솟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구간은 Samuel H. Boardman State Scenic Corridor다. 해안 절벽과 숲 사이로 트레일이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밤이 조금 늦은 시간, 일본의 골목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김이 피어오른다. 작은 가게의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국물 냄새가 공기를 채운다. 카운터 뒤에서는 국수가 삶아지고, 커다란 냄비에서는 육수가 계속 끓고 있다. 여행자는 의자에 앉아 한 그릇을 기다린다. 그릇이 놓이는 순간, 일본 여행의 가장 따뜻한 장면이 시작된다. 이 음식의 이름은 라멘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라멘은 가장 일상적인 음식이면서 동시에 가장 열정적인 미식 문화다. 기차역 근처 작은 식당에서도, 번화가의 유명 맛집에서도, 주택가 골목에서도 라멘 가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격은 비교적 부담 없지만 한 그릇 안에는 오랜 시간 끓여낸 육수와 장인의 기술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일본 여행에서 라멘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도시의 성격을 맛보는 경험이 된다. 라멘의 뿌리는 중국에서 건너온 밀 국수 요리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에 전해진 이후 이 음식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했다. 일본 각 지역의 재료와 조리 방식이 더해지면서 라멘은 지금의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일본 전역에는 수많은 라멘 가게가 존재하며, 각 가게는 자신만의 국물과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름 오후, 바닥에서 물줄기 26개가 솟는다. 아이들이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고 관광객들이 돔을 올려다본다. 1902년 완공된 베른 연방궁 앞 광장 풍경이다. 분수 뒤에 서 있는 녹색 돔 건물에서는 스위스의 국민투표 안건과 연방 법안이 논의된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이 광장은 동시에 국가 정치의 현관이다. 베른 구시가지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케이드가 이어지는 중세 도시 한가운데 연방궁이 자리한다. 인구 약 890만 명의 스위스는 이곳에서 국가 정책을 조율한다. 알프스 산악국가의 정치 중심이 관광 도시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연방궁 앞 테라스에 서면 아레 강이 반원형으로 도시를 감싼다. 베른은 1191년 체링겐 공작 베르톨트 5세가 세운 도시다. 스위스는 공식 수도라는 표현 대신 ‘연방 도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권력 집중을 피하려는 정치 문화 때문이다. 건물 안에는 양원 의회가 들어 있다. 인구 비례로 선출되는 국민의회 200석과 칸톤 대표로 구성된 전주의회 46석이다. 인구 1만 명 수준의 산악 칸톤도 동일한 대표권을 갖는다. 연방궁은 분권 국가의 정치 구조가 실제로 작동
[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인도를 여행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음식으로 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도는 단순히 향신료가 강한 음식의 나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미식 세계를 가지고 있다. 북쪽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남쪽의 열대 해안까지 이어지는 넓은 국토는 다양한 기후와 농산물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음식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인도의 음식은 하나의 전통 요리 체계라기보다 수백 개의 식탁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문화 지형에 가깝다. 북인도에서는 밀과 유제품을 중심으로 한 진한 커리와 빵 요리가 발달했고, 남인도에서는 쌀과 코코넛, 향신료가 중심이 된다. 중앙 인도와 부족 지역에서는 숲에서 얻은 재료와 자연 식재료가 식탁을 구성한다. 인도의 시장이나 거리로 들어가면 이 거대한 음식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커다란 철판 위에서 음식이 지글거리며 익어가고, 향신료 냄새가 공기 속에 퍼진다. 작은 노점에서부터 오래된 식당까지, 음식은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인도의 미식 여행은 레스토랑의 메뉴판보다 거리의 풍경 속에서 더 생생하게 시작된다. 향신료와 곡물이 만든 인도의 아침 식탁 인도 음식의 핵심은 향신료와 곡물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