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언덕 위에 거대한 건물이 ‘솟아’ 있지 않다. 오히려 땅에 파묻힌 듯 낮게 깔려 있다. 지붕 위에는 시민이 걸을 수 있는 잔디가 펼쳐지고, 그 위로 거대한 국기 하나가 하늘을 가른다. 호주의 권력은 과시 대신 구조를 택했다. 호주는 1901년 여섯 개 식민지가 연방으로 결합해 탄생했다.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와 가깝다. 정체성은 늘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 의사당은 그 복합성을 담는 공간이다.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타협 도시다. 두 도시가 수도 경쟁을 벌이자 중간 지점을 택했다. 정치적 균형이 지리적 선택으로 나타났다. 연방의 논리가 공간을 만들었다. 국회의사당은 1988년 개관했다. 영국 왕실 중심의 상징에서 벗어나 독자적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시기였다. 건물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이곳에서 자원 정책, 이민 정책, 대외 안보 전략이 결정된다. 철광석과 석탄 수출, 중국과의 무역, 미국과의 동맹 문제가 이 안에서 조율된다. 대륙의 방향이 정해지는 방이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연방 출범 이후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도심 한복판,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초록색 캔이 줄지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과거의 산업 유산과 현재의 관광 열기가 가장 선명하게 교차하는 공간,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바로 칭다오 맥주박물관이다. 묵직한 시계탑과 유럽풍 외벽, 그리고 지붕 위 대형 맥주 캔 조형물은 이 도시가 무엇으로 기억되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이곳의 시작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조계 시절 세워진 양조장은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맥주 공장 가운데 하나였다. 외벽에 새겨진 ‘1903’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연도가 아니다. 칭다오가 세계 맥주 지도에 이름을 올린 출발점이자, 도시 정체성의 기원이기도 하다. 독일식 라거 제조 기술은 전쟁과 정권 교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맥주박물관에는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장이 일본을 거쳐 중국 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설비와 운영 주체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양조 기술자들은 기존 제조 방식을 고수하려 애썼다고 한다. 한 노(老) 기술자는 “정권은 바뀌어도 맛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레시피는 국적을 달리해도, 거품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해안은 과거와 현재가 가장 역동적으로 맞닿는 공간이다.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바로 칭다오 올림픽요트경기장이다. 잔잔한 수면 위에 빼곡히 들어선 요트 마스트들은 마치 숲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그 뒤로는 유리 외벽의 고층 빌딩들이 겹겹이 서 있으며, 바다와 도시가 한 프레임 안에서 공존한다. 이곳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요트 종목이 열렸던 경기장이다. 베이징이 아닌 칭다오에서 해상 경기가 열린 이유는 분명했다. 황해를 끼고 있는 칭다오는 중국 내에서도 바람 조건이 좋고 해양 스포츠 기반이 탄탄한 도시로 평가받아 왔다. 당시 대회를 앞두고 해역의 수질 개선과 해조류 제거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고, 그 과정은 도시 환경 개선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경기장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기, 칭다오 앞바다에는 대량의 해조류가 떠밀려와 경기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시민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총동원돼 해조류를 수거하는 장면은 당시 중국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됐다. 위기를 함께 넘긴 경험은 이 도시가 ‘요트 도시’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경기장은 더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기원후 80년, 로마 시민 수만 명이 한꺼번에 환호했다. 원형의 거대한 경기장 중앙에서 검이 부딪히고, 모래 위로 피가 번졌다. 관중석은 들끓었고, 황제는 그 함성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그곳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이 건축물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이 군중을 조직하는 방식이자, 권력을 시각화하는 장치였다. 콜로세움은 플라비우스 왕조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착공하고, 그의 아들 티투스가 완공했다. 유대 전쟁에서 거둔 전리품이 공사 재원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식민지의 자원이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재배치된 것이다. 외부의 승리가 내부의 축제로 전환되는 순간, 제국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수용 인원은 약 5만 명. 오늘날의 대형 경기장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다. 좌석 배치는 계급에 따라 철저히 구분됐다. 황제와 원로원 의원, 기사 계급, 시민, 여성과 노예까지 층층이 나뉘어 앉았다. 건축은 곧 질서였다. 관중은 단지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체험했다. 검투 경기와 맹수 사냥, 심지어는 모의 해전까지 열렸다. 모래는 피를 흡수했고, 군중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인도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관광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출장과 전시회, 상담 일정이 먼저 잡히고 그 사이에 관광이 들어간다. 여행 가방 속에는 기념품보다 서류와 노트북이 먼저 자리한다. 방문 목적이 비교적 분명하다. 도심 호텔 로비에서는 정장을 입은 인도 방문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업 협력과 IT, 제조업 관련 일정이 주요 동선이다. 한국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파트너다. 한국관광공사 국가별 방한관광시장 분석에서도 인도는 상용(商用) 방문 비중이 높고, 의료·한류 관심이 결합된 성장 시장으로 분류된다. 순수 레저 시장이라기보다 복합 구조를 가진 방문 흐름이다. 비즈니스와 관광이 함께 움직인다 인도는 젊은 인구가 많은 나라다. 해외 비즈니스 이동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가 방문 수요를 만든다. 출장 일정이 끝난 뒤 하루 이틀을 추가해 서울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경복궁과 남산, 한강공원 같은 상징 공간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이런 구조는 체류 기간을 일정 수준 유지하게 만든다. 짧게 다녀가지만 소비는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숙박과 식음료, 교통 분야에서 지출이
[뉴스트래블=편집국 기자] 서울 종로구 율곡로. 붉은 돈화문을 지나면 궁궐은 곧장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직선 대신 완만한 굴곡, 과시 대신 절제. 창덕궁은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말해온 궁궐이다. 1405년 태종에 의해 건립된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선 왕조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실질적 법궁 역할을 수행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폐허로 남았던 동안 왕들은 창덕궁에서 정사를 돌보았다. 왕조의 중심은 직선의 궁이 아니라, 자연을 끌어안은 이 궁으로 이동했다. 창덕궁의 가장 큰 특징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악산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전각이 배치됐고, 건물은 축선에 맞춰 억지로 정렬되지 않았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한 배치. 이것이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위적 질서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한 궁궐, 그것이 창덕궁의 본질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면 인정전 영역이 펼쳐진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즉위식과 국가 의례가 열리던 공간이다. 규모는 경복궁 근정전에 비해 다소 절제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균형감이 창덕궁의 성격을 보여준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베네치아는 지중해와 아드리아 해가 만나는 석호에 세워진 ‘물의 도시’다. 100개가 넘는 섬과 수많은 운하, 다리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진 도시 구조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삶의 방식이 겹쳐 있는 장소다. 곤돌라 노를 저으며 미로처럼 이어진 수로를 지나면, 그 길 위에 수백 년 된 궁전, 성당, 광장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풍경은 한 시대의 유산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일상이다. 산마르코 광장, 도시의 심장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공간은 피아차 산마르코다. 이 광장은 수세기 동안 상업과 종교, 정치가 교차한 장소였다. 중심부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내부와 성물들은 방문객을 압도하며, 비잔틴 예술과 베네치아 역사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이 성당은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한 도시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광장 한켠의 종탑과 주변 건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담아낸다. 산 마르코 종탑에 오르면 도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좁은 운하와 붉은 지붕, 그리고 석호의 물결이 겹쳐진 풍경은 베네치아가 왜 ‘수상(水上)의 로마’라 불리는지 이해하게 한다. 전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붉은 지붕의 별장들 뒤로 겨울 바다가 잔잔히 펼쳐진다. 넓은 백사장과 암반 지대, 그리고 유럽풍 건물들이 한 화면에 담긴다. 사진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대표적 해안 경관지인 팔대관 일대 풍경이다. 맑은 하늘 아래 해변은 한가롭고, 바다는 은빛으로 빛난다. 팔대관 해변에 서면 도시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보인다. 한쪽으로는 모래사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이어지고, 다른 쪽으로는 숲과 언덕 사이 유럽식 별장들이 줄지어 서 있다. 썰물 때 드러난 바위 지대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관찰한다. 아이들은 조개를 줍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는다. 차가운 계절이지만 풍경은 따뜻한 색을 띤다. 팔대관은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관문’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지역의 도로 이름이 산해관, 가욕관 등 중국의 유명 관문에서 유래했다. 청 말기와 독일 조계 시기를 거치며 외국인 거주지와 휴양지로 개발됐고, 독일식과 러시아식, 영국식 건축이 혼재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됐다. 그래서 이 일대는 칭다오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언덕 위에 자리한 화스러우는 팔대관의 상징적 건물이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이 석조 건물에는 장제스가 머물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붉은 지붕의 물결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언덕 위에 서자 도시와 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진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대표 전망대인 소어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춘절 연휴를 맞은 도시가 맑은 햇살 아래 고요하게 숨을 고르고 있다. 소어산 정상에 오르면 칭다오의 시간이 층층이 겹쳐 보인다. 한쪽으로는 모래사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스며들고, 다른 쪽으로는 붉은 기와 지붕의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멀리 고층 빌딩군이 솟아 있어 전통과 현대가 한 화면에 공존한다. 바닷바람은 차지만, 풍경은 따뜻하다. 소어산은 해발 60여 미터 남짓의 아담한 언덕이지만 상징성은 크다. 이름은 산의 능선이 작은 물고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물고기가 뛰노는 모습이 잘 보여 어부들이 길흉을 점쳤다는 민간 전승도 있다. 실제 여부를 떠나, 산 이름에 얽힌 이런 이야기는 도시의 해양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이곳은 칭다오의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장소다. 독일 조계 시기 조성된 붉은 지붕 건물들이 언덕 아래로 이어지며 독특한 도시 경관을 만든다. 그래서 칭다오는 ‘붉
[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김포시는 오는 28일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정월대보름 특별문화행사 「만월성원(滿月成願)」을 개최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달이 차면 소원을 빈다’는 동양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참여형 문화축제로, 낮에는 윷놀이·투호·제기차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디지털 드로잉 체험이 진행된다. 하이라이트는 오후 6시 10분 전시관 앞 광장에서 열리는 LED 달 점등식이다. 대형 달빛 퍼포먼스와 영상·조명 연출이 어우러져 애기봉 밤하늘을 밝히며, 색소폰 앙상블·아카펠라 그룹 ‘엑시트’·LED 퍼포먼스팀 ‘옵티컬크루’가 무대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