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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감성 로컬 기획⑤]안동에서 만난 프로방스, 시간도 머무는 마을

흙담길과 석양빛이 물든 풍경, 두 마을이 전하는 고요한 온기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안동 하회마을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이다. 낙동강이 S자 곡선을 그리며 마을을 감싸고, 초가와 기와지붕이 나란히 이어진다. 논과 밭 사이로 들리는 매미소리와 바람의 결이 섞여 여름의 냄새를 만든다. 이곳에서는 빠른 걸음이 어색하다. 사람들은 느릿한 속도로 걷고, 낮은 지붕 아래에서는 오래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풍경을 마주하면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가 겹쳐진다. 석양빛이 비추는 라벤더 밭, 황토빛 마을과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걷는 여행자들. 오래된 석조 집마다 라일락 향이 흩어지고, 벽돌색 와인잔이 햇살을 반사한다.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 멀리 있지만,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놀라울 만큼 닮았다.

 

 

강이 감싸 안은 마을, 바람이 스치는 들판
하회마을은 조선 시대 양반가의 삶이 고스란히 남은 전통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강이 돌아 감싼다’는 뜻을 지녔다. 하회는 물길이 만든 자연 요새 속에 자리 잡아 외부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고택과 정자, 돌담길이 옛 형태 그대로 보존돼 있다. 부용대에 오르면 낙동강이 감싸 안은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도 비슷하다. 산과 들, 올리브 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지형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이 유지됐다. 라벤더 밭이 펼쳐진 들판 너머로, 석조 건물이 낮은 언덕에 앉아 있다. 두 마을 모두 ‘자연이 만든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전통이 일상이 되는 풍경
하회마을의 초가집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다. 마을 주민들은 전통 방식의 생활을 유지하며, 방문객들에게 안동의 풍습을 전한다. 탈춤 공연과 한지 공예, 서원과 서당 체험은 조선의 일상을 오늘에 되살린다. 이런 전통은 단절된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프로방스 역시 전통을 생활 속에서 이어간다. 지역 주민들은 라벤더 수확철이 되면 손수 꽃을 말리고, 매주 열리는 시장에서는 치즈와 와인을 직접 만든다. 집집마다 수백 년 된 건물 안에서 가족의 레시피와 농사 방식이 전해진다. 오래된 것들이 단지 ‘보존’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로 이어진다는 점이 두 지역의 공통점이다.

 

 

빛과 색, 그리고 고요의 미학
하회마을의 풍경을 완성하는 건 빛이다. 오후가 되면 초가지붕 위로 금빛 햇살이 내려앉고, 돌담길에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마을을 감싸는 낙동강의 수면은 저녁노을을 비추며 고요히 흐른다. 빛과 바람, 사람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프로방스의 빛도 특별하다. 화가들이 사랑한 이유다. 고흐와 세잔이 그린 햇빛의 질감은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붉은 지붕과 보랏빛 라벤더, 노을의 오렌지빛이 한데 섞여 여유로운 풍경을 만든다. 그 빛은 인위적인 조명보다 따뜻하고,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하회마을과 프로방스는 ‘느림의 미학’으로 닮았다. 급격한 변화 대신, 세월을 품은 일상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간다. 전통과 현대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그 경계가 흐릿하다.


여행자는 두 마을에서 공통의 감정을 느낀다.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확신, 오래된 풍경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이어지는 관계. 낯설지만 편안한 공간, 그것이 안동과 프로방스가 전하는 진짜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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