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사람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학교가 비어가며, 버스 노선 하나가 줄어든다. 그렇게 일상의 균열이 겹치다 보면, 어느 순간 통계가 먼저 무너진다. 통계청 인구동향 자료가 말하는 ‘인구감소지역’은 그래서 예측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이미 지역의 삶이 한 차례 바뀐 뒤에야 숫자는 그 변화를 기록한다. 행정안전부가 인구 구조와 생활 인프라를 기준으로 인구감소지역을 공식 지정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지역이 이 범주에 포함됐다.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를 제외하면, 인구 감소는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규모보다 속도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정책과 행정의 대응을 앞지르면서, 지역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출구를 요구받게 됐다. 이 지점에서 ‘관광’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호출됐다. 산업을 새로 유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일자리를 되돌리는 일은 더 복잡하다. 반면 관광은 이미 존재하는 자연과 문화, 풍경을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웠다. 지역에 외부 인구를 불
[뉴스트래블=편집국] 태평양 한가운데,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조차 어려운 작은 점 하나가 있다. 나우루 공화국. 국토 면적 21㎢, 인구 약 1만 명.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을 기록했던 나라다. 그러나 지금 이 섬을 둘러싼 풍경은 번영의 기억보다, 고립과 붕괴의 흔적에 가깝다. 나우루는 사라진 자원이 남긴 질문 위에 서 있다. 인광석이 만든 기적과 착시나우루의 역사는 인광석과 함께 시작되고, 인광석과 함께 무너졌다. 20세기 초, 섬 중앙부에서 고농도의 인광석이 발견되면서 나우루는 순식간에 태평양의 부유한 섬국가로 떠올랐다. 비료 원료로 각광받은 인광석 덕분에 독립 이후 나우루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 없는 국가, 무료 의료와 교육, 해외 투자 수익을 약속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 나우루의 1인당 소득은 호주, 일본을 웃돌았다. 그러나 그 번영은 지하자원을 파내는 속도만큼 빠르게 소비됐다. 국토의 약 80%가 채굴로 훼손됐고, 섬의 심장은 뾰족한 석회암 기둥만 남은 황무지로 변했다. 땅을 잃은 국가인광석이 고갈되자 문제는 한꺼번에 드러났다. 농업은 불가능했고, 식수는 빗물 저장과 해수 담수화에 의존해야 했다. 채굴 이후 방치된 중앙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중국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유독 자주 소환되는 장면이 있다. 살아 있는 원숭이의 머리를 열어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 듣는 순간 얼굴이 굳고, 질문은 뒤로 밀린다. 정말 그런 음식을 먹는 걸까. 중국 광둥의 ‘원숭이 뇌 요리’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음식 신화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음식의 실체라기보다, 타문화에 대한 공포와 상상이 결합해 만들어낸 괴담에 가깝다. 이 편은 그 ‘먹히지 않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원숭이 뇌 요리는 중국 전통 요리서나 광둥 지역의 실제 식문화 기록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명·청대의 문헌, 근현대 미식 자료, 심지어 식문화 민속 조사에서도 이를 실제 음식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구에서 중국을 ‘기이한 식문화를 가진 타자’로 소비해온 오랜 시선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국에 대한 여행기와 식민지 보고서에는 과장과 왜곡이 빈번했다. 낯선 식재료, 내장 요리, 살아 있는 해산물을 조리하는 방식은 곧바로 ‘잔혹함’으로 번역됐다. 원숭이 뇌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증폭됐다. 실제로는 특정 문학 작품이나 풍문이 반복
[뉴스트래블=편집국] 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방 위로 차량이 오가고, 섬은 육지의 연장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몽생미셸에서 길은 영구적인 약속이 아니다. 바다는 하루 두 번,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그 약속을 철회한다. 물이 차오르는 순간, 섬은 다시 섬이 되고 인간은 선택의 결과만을 남긴다. 시간표를 가진 바다몽생미셸이 위치한 노르망디 해안은 유럽에서도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극적인 지역이다. 최대 14미터에 이르는 조차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지형 전체를 바꾸는 힘이다.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 평원은 몇 시간 동안 육지와 섬을 연결하지만, 밀물이 시작되면 그 연결은 조용히 해체된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는 빠르다. 파도처럼 몰려오지 않고, 사방에서 동시에 상승한다. 방향 감각은 무력해지고, 조금 전까지 ‘길’이었던 공간은 경계 없는 수면으로 변한다. 몽생미셸 인근에서 반복돼 온 조수 갇힘 사고는 이 속도를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단단해 보이는 모래의 함정섬 주변의 모래 평원은 안정적인 지반이 아니다. 조류와 강물이 뒤엉키며 형성된 이 지역에는 유사가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표면은 마른 평원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발을 디디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생선도, 고기도 아닌 작은 바구니다. 그 안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가 수북이 담겨 있다. 여행자의 시선에서는 쉽게 ‘이색 음식’으로 분류되지만, 현지에서는 낯설지 않은 식재료다. 애벌레는 숲이 제공하는 단백질이고, 애따께는 그 단백질을 받아들이는 가장 일상적인 주식이다. 이 두 음식이 한 접시에 오를 때, 코트디부아르의 식문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애벌레는 주로 야자수나 특정 나무에서 채취된다. 우기에 접어들면 애벌레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원이 된다. 불에 살짝 구워 먹거나, 기름에 볶아 소금과 향신료를 더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고소하다. 맛만 놓고 보면 새우나 견과류와 닮았다는 표현이 자주 따라붙는다. 애벌레 식용의 배경에는 환경과 경제가 있다. 가축 사육이 쉽지 않은 지역에서 곤충은 효율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사냥에 비해 위험이 적고, 숲을 크게 훼손하지도 않는다. 애벌레는 생존의 선택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음식으로 정착했다. 오늘날에도 이는 특별식이 아니라 계절이 오면 자연스럽게 식탁에
[뉴스트래블=편집국] 후지산 북서쪽 기슭에 숲이 하나 펼쳐져 있다. 지도에는 분명 숲이라 적혀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바다에 잠긴 듯한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소리가 흡수되고 방향감각이 흐려지는 곳. 일본에서는 이곳을 ‘아오키가하라’, 혹은 ‘주카이’, 침묵의 바다라 부른다. 화산이 만든 숲의 구조아오키가하라는 자연적으로 매우 특이한 숲이다. 약 1200년 전 후지산의 대규모 분화로 흘러내린 용암 위에 형성된 숲으로, 땅 아래는 다공성의 현무암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지형 때문에 나무의 뿌리는 깊게 내려가지 못하고 지표 가까이 퍼지며, 그 결과 숲 전체가 낮고 빽빽한 구조를 띤다. 이 용암 지반은 전파를 흡수하고 나침반의 오차를 키운다. 휴대전화 신호가 불안정해지고, GPS 위치 정보도 흔들린다. 숲 안에서 방향을 잃기 쉬운 이유는 미신이 아니라 지질학적 특성에 가깝다. 외부 소음은 나무와 지형에 흡수돼 빠르게 사라지고, 바람마저도 숲 안쪽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침묵’이라는 인식의 형성아오키가하라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이 숲은 오랜 시간 동안 문학, 구전, 대중문화 속에서 ‘고립’과 ‘침묵’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몽골의 여름 초원에서 가장 먼저 건네지는 환대는 차도, 술도 아닌 흰빛 액체다. 나무 그릇에 담긴 아이락은 얼핏 보면 우유 같지만, 코끝에 닿는 향은 시고 입안에서는 가볍게 톡 쏜다. 처음 마시는 여행자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마시는 순간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아이락은 단순한 전통주가 아니라, 이동하며 살아온 유목의 시간이 액체가 된 결과물이다. 초원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 술 역시 멈추지 않는 삶 속에서 완성된다. 아이락은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몽골의 대표적인 유제품이자 발효주다. 냉장 시설이 없던 초원에서 말젖은 쉽게 상했고, 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한 선택이 발효였다. 젖을 짠 뒤 가죽 부대에 담아 하루에도 수십 차례 흔드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흔들림은 단순한 제조 공정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다. 가축을 돌보고 이동하는 사이사이, 아이락은 사람의 손길과 함께 익어간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유당은 분해되고 알코올이 생성된다. 도수는 낮지만, 여름철 갈증을 해소하고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몽골인들에게 아이락은 술이면서도 음식이고, 음료이면서도 약에 가깝다. 더운 계절에만 만들어지는 이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전적지 활용 중장기 로드맵'은 단순히 역사 유적의 보존과 활용을 넘어,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대한민국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는 '평화 경제' 전략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전적지 관광 활성화가 특히 개발 소외 지역이었던 접경 지역과 주요 격전지 주변에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광 수요 창출: 지역 경제의 새로운 동력로드맵에 따라 전적지가 통합 브랜드화되고 매력적인 체험 콘텐츠(AR/VR, 평화 순례길 등)가 구축되면, 국내외 관광객 유입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곧바로 지역 주민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구체적으로, 테마 관광 루트를 따라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인근 지역의 숙박 시설, 식당, 카페 등 서비스업의 매출이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전적지 관리 및 운영 인력은 물론, 역사 해설사, 관광 프로그램 기획자 등 전문 인력 수요가 증가하며 관광 관련 신규 일자리가 창출돼 지역 청년층의 유출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전적지의 역사적 의미와 연계된 기념품이나 지역 농특산물을 개발하고 판매해 부가가치를 높이
[뉴스트래블=편집국] 숲은 살아 있는 동안 색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잎의 초록, 나무껍질의 갈색, 계절에 따라 바뀌는 그 미묘한 농담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이 숲에서는, 색이 먼저 죽었다. 한때 짙은 초록이었을 나무들은 흐릿한 회백색으로 변했고, 그 변화는 자연의 순환이 아니라 방사능이라는 외부의 개입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이곳을 ‘화이트 포레스트’라 부른다. 폭발 이후, 숲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 이후 방출된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중에서도 프리피야트 인근의 침엽수 숲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방사선에 노출된 소나무 잎은 빠르게 갈색으로 변했고, 이후 회백색으로 퇴색했다. 이 현상 때문에 이 숲은 ‘레드 포레스트’로도 불렸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사한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토양이 뒤집히면서 풍경은 점점 희미한 흰빛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색의 변화가 외형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무의 세포 구조가 손상되면서 정상적인 성장 패턴이 무너졌고, 일부 식물은 비정상적인 형태로 자라거나 생장 속도가 극단적으로 느려졌다. 숲은 여전히 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앞서 보도된 전적지 활용 중장기 로드맵의 핵심 비전이 '평화 관광 거점화'라면, 이를 실현할 동력은 바로 첨단 기술과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혁신적인 체험 콘텐츠다. '전적지 활용 중장기 로드맵' 보고서는 유적지를 단순히 둘러보는 견학(Viewing)을 넘어, 역사의 순간을 직접 느끼고 배우는 몰입형 경험(Immersion)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했다. AR/VR: 시간을 거슬러 간 몰입형 역사 교육가장 눈에 띄는 것은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로드맵에 따르면, 전적지 현장에 설치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키오스크를 통해, 관람객들은 과거 전투가 벌어지던 생생한 현장감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철원 백마고지나 낙동강 방어선 등 주요 격전지에서는 AR 기술로 당시의 군사 시설이나 참호가 눈앞에 재현되고, VR 체험관에서는 역사적 고증을 거친 6.25 전쟁의 결정적 순간들을 가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콘텐츠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역사 학습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언어 장벽 없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으로 평가한다.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