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안데스 산맥 깊은 곳, 구름이 능선을 넘나드는 해발 약 2400미터의 능선 위에 돌로 된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매달리듯 놓인 이 도시는 수백 년 동안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마추픽추라 불리는 이곳은 잉카 문명이 남긴 가장 상징적인 유산이다. 이 도시는 왜 이런 곳에 세워졌을까.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 지형, 가파른 경사, 안개와 비가 잦은 환경. 평범한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불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바로 그 조건이 잉카 제국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높이는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마추픽추는 15세기 잉카 황제 파차쿠티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국의 확장기와 맞물린 시기였다. 잉카는 문자 대신 도로와 건축, 행정 조직을 통해 광대한 영토를 통합했다.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산악 도로망은 제국을 하나로 묶는 동맥이었다. 그 중심에 황제의 권위가 있었다. 이 도시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돌과 돌 사이에는 모르타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블록들은 정확히 맞물린다. 지진이 잦은 안데스 지역에서 이 방식은 오히려 더 안정적이었다. 물길을 조절하는 배수 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한국을 찾는 영국인 여행자들의 동선은 조금 느리다. 빠르게 명소를 찍고 이동하는 여행 방식보다, 한 도시의 분위기를 천천히 체험하는 일정이 많다. 서울의 오래된 골목이나 전통 건축, 지역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을 찾아 머무르는 시간이 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도시의 ‘결’을 읽는 여행이 영국 관광객들의 특징이다. 실제로 한국 관광시장 분석에서도 영국은 단순 관광보다 문화 체험과 역사 탐방의 비중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방한 관광시장 자료에서도 영국 관광객은 체류 기간이 비교적 길고 개별 자유여행 비율이 높은 시장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이동하되, 전통 문화와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을 경험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서울의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 영국인 여행자들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은 의외로 화려한 쇼핑 거리보다 전통적인 도시 공간이다. 한옥이 남아 있는 골목이나 오래된 시장, 역사적 건축물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여행의 첫 일정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는 도시의 현대적인 모습보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풍경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뉴스트래블=편집국] 서울 서대문과 광화문 사이, 빌딩과 도로에 둘러싸인 언덕 위에 궁 하나가 서 있다. 다른 궁궐처럼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경희궁은 묻는다. 궁궐은 얼마나 사라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복원될 수 있는가. 1617년, 광해군은 새로운 궁궐 건립을 명했다. 이름은 처음에 ‘경덕궁’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은 폐허였고, 창덕궁과 창경궁은 화재와 재건을 반복했다. 전란의 상처 속에서 왕권은 불안정했다. 경희궁은 그런 시대적 긴장 속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왕궁이었다. 이후 인조반정과 영조 대를 거치며 이곳은 ‘이궁’으로 활용됐고, 여러 왕이 머물렀다. 경희궁은 서울 서쪽에 자리 잡았다. 동쪽의 창덕궁·창경궁, 북쪽의 경복궁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배치가 아니라 권력의 분산을 의미했다. 전란 이후 왕실은 하나의 궁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경희궁은 위기 시대의 대안이자, 왕조의 보험과 같은 공간이었다. 정전인 숭정전은 단정한 규모로 서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장엄함이나 창덕궁 인정전의 절제와는 또 다른 표정이다. 숭정전은 권위보다 기능을 앞세운 전각에 가깝다. 이곳에서 왕은 조회를 열고 국정을 논했다. 그러나 경희궁은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크로아티아 여행을 한 도시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남쪽의 성벽 도시에서 시작해 황제의 궁전을 지나 북쪽의 미식 반도에 닿는 여정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시간을 잇는다. 제국의 시간, 땅의 시간, 식탁의 시간이 한 나라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북상하는 10일은 관광지 체크리스트를 지우는 일정이 아니다. 풍경이 바뀔 때마다 시대가 달라지고, 접시 위의 맛이 달라진다. 이 루트는 크로아티아를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남쪽에서 시작하는 서사 여정은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극적이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이 도시는 중세 성벽이 완벽한 원형으로 남아 있다. 성벽 위를 걸으며 내려다보는 코발트빛 바다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상징적인 첫 장면이 된다.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붉은 지붕과 석회암 골목이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서의 하루 이틀은 여행의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바다와 돌, 그리고 햇빛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남쪽 크로아티아의 얼굴이다. 황제의 궁전을 지나 두브로브니크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스플리트가 기다린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4세기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
[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미식이 산업이 되면 접시는 점점 화려해진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남단의 작은 어촌 반욜레에는 다른 선택을 한 집이 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을 살만 쓰지 않고, 간과 내장까지 요리로 완성하는 식당. 4대째 어부 집안이 운영하는 코노바 바텔리나다. 이곳의 식탁은 트렌드가 아니라 생업에서 출발했다. 새벽 바다에 나가 그날 잡은 해산물로 메뉴를 정하고, 남김없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다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태도다. 이스트라 미식의 철학은 이 작은 항구 마을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어부의 집에서 시작된 레스토랑 코노바 바텔리나는 2000년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뿌리는 훨씬 깊다. 스코코 가문은 4대째 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왔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아들은 그 생선을 요리하는 셰프가 됐다. 식당은 바다와 식탁을 직접 연결하는 통로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그날의 메뉴’다. 고정된 코스가 아니라, 아침 조업 결과에 따라 요리가 달라진다. 제철과 어획량이 곧 레시피다. 이는 화려한 기교 대신 재료의 신선함과 이해를 전제로 한다. 남김없는 미식 코노바 바텔리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