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언덕 위에 거대한 건물이 ‘솟아’ 있지 않다. 오히려 땅에 파묻힌 듯 낮게 깔려 있다. 지붕 위에는 시민이 걸을 수 있는 잔디가 펼쳐지고, 그 위로 거대한 국기 하나가 하늘을 가른다. 호주의 권력은 과시 대신 구조를 택했다. 호주는 1901년 여섯 개 식민지가 연방으로 결합해 탄생했다.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와 가깝다. 정체성은 늘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 의사당은 그 복합성을 담는 공간이다.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타협 도시다. 두 도시가 수도 경쟁을 벌이자 중간 지점을 택했다. 정치적 균형이 지리적 선택으로 나타났다. 연방의 논리가 공간을 만들었다. 국회의사당은 1988년 개관했다. 영국 왕실 중심의 상징에서 벗어나 독자적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시기였다. 건물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이곳에서 자원 정책, 이민 정책, 대외 안보 전략이 결정된다. 철광석과 석탄 수출, 중국과의 무역, 미국과의 동맹 문제가 이 안에서 조율된다. 대륙의 방향이 정해지는 방이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연방 출범 이후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기원후 80년, 로마 시민 수만 명이 한꺼번에 환호했다. 원형의 거대한 경기장 중앙에서 검이 부딪히고, 모래 위로 피가 번졌다. 관중석은 들끓었고, 황제는 그 함성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그곳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이 건축물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이 군중을 조직하는 방식이자, 권력을 시각화하는 장치였다. 콜로세움은 플라비우스 왕조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착공하고, 그의 아들 티투스가 완공했다. 유대 전쟁에서 거둔 전리품이 공사 재원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식민지의 자원이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재배치된 것이다. 외부의 승리가 내부의 축제로 전환되는 순간, 제국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수용 인원은 약 5만 명. 오늘날의 대형 경기장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다. 좌석 배치는 계급에 따라 철저히 구분됐다. 황제와 원로원 의원, 기사 계급, 시민, 여성과 노예까지 층층이 나뉘어 앉았다. 건축은 곧 질서였다. 관중은 단지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체험했다. 검투 경기와 맹수 사냥, 심지어는 모의 해전까지 열렸다. 모래는 피를 흡수했고, 군중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인도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관광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출장과 전시회, 상담 일정이 먼저 잡히고 그 사이에 관광이 들어간다. 여행 가방 속에는 기념품보다 서류와 노트북이 먼저 자리한다. 방문 목적이 비교적 분명하다. 도심 호텔 로비에서는 정장을 입은 인도 방문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업 협력과 IT, 제조업 관련 일정이 주요 동선이다. 한국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파트너다. 한국관광공사 국가별 방한관광시장 분석에서도 인도는 상용(商用) 방문 비중이 높고, 의료·한류 관심이 결합된 성장 시장으로 분류된다. 순수 레저 시장이라기보다 복합 구조를 가진 방문 흐름이다. 비즈니스와 관광이 함께 움직인다 인도는 젊은 인구가 많은 나라다. 해외 비즈니스 이동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가 방문 수요를 만든다. 출장 일정이 끝난 뒤 하루 이틀을 추가해 서울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경복궁과 남산, 한강공원 같은 상징 공간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이런 구조는 체류 기간을 일정 수준 유지하게 만든다. 짧게 다녀가지만 소비는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숙박과 식음료, 교통 분야에서 지출이
[뉴스트래블=편집국 기자] 서울 종로구 율곡로. 붉은 돈화문을 지나면 궁궐은 곧장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직선 대신 완만한 굴곡, 과시 대신 절제. 창덕궁은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말해온 궁궐이다. 1405년 태종에 의해 건립된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선 왕조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실질적 법궁 역할을 수행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폐허로 남았던 동안 왕들은 창덕궁에서 정사를 돌보았다. 왕조의 중심은 직선의 궁이 아니라, 자연을 끌어안은 이 궁으로 이동했다. 창덕궁의 가장 큰 특징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악산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전각이 배치됐고, 건물은 축선에 맞춰 억지로 정렬되지 않았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한 배치. 이것이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위적 질서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한 궁궐, 그것이 창덕궁의 본질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면 인정전 영역이 펼쳐진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즉위식과 국가 의례가 열리던 공간이다. 규모는 경복궁 근정전에 비해 다소 절제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균형감이 창덕궁의 성격을 보여준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오타와강 절벽 위에 고딕 양식의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첨탑과 시계탑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고, 잔디 광장은 완만하게 강으로 내려간다. 수도라고 하기엔 조용하지만, 구조는 단단하다. 캐나다라는 국가는 이 언덕 위에서 형태를 갖췄다. 캐나다는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역사, 원주민의 존재, 그리고 대규모 이민이 겹쳐 있다. 분열의 가능성을 안고 출발했다. 의회 의사당은 그 복잡한 구성을 제도 안에 묶어 둔 상징이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의회 의사당은 캐나다 연방 정치의 중심이다. 상원과 하원이 같은 단지 안에 있다. 연방주의 구조가 공간으로 구현됐다. 권력은 분산돼 있지만 한 지붕 아래 모인다. 건물은 19세기 후반 완공됐다. 당시 캐나다는 영국 자치령이었다. 제국의 영향을 받은 고딕 리바이벌 양식이 채택됐다. 식민의 흔적이 국가 상징으로 전환됐다. 이곳은 정치적 갈등의 무대이기도 하다. 퀘벡 분리 독립 논쟁, 다문화 정책, 원주민 권리 문제가 모두 이 안에서 논의됐다. 총성보다 토론이 먼저다. 캐나다식 타협이 반복됐다. 그래서 이 언덕은 단순한 행정 공간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제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