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사막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와 바위, 시야를 가로막을 것이 없는 풍경. 그러나 때로 권력은 드러남이 아니라 은폐 속에서 자란다. 사막의 붉은 협곡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 페트라는 그런 도시다. 이곳은 세워진 도시라기보다, 감춰진 도시였다. 페트라는 기원전 4세기 무렵 아라비아 북부에서 활동하던 나바테아인의 수도였다. 나바테아인은 유목 전통을 지녔지만,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향료와 비단, 금속을 실은 대상(隊商)을 안전하게 연결하는 중개자였다. 실크로드와 홍해, 지중해를 잇는 교역의 결절점에서 그들은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부는 사막 한가운데 바위를 깎아 만든 도시로 응결됐다. 페트라의 상징인 알 카즈네, 이른바 ‘보물창고’는 건물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바위를 파내 조각한 구조다. 이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건축은 외부의 침입에 강했고, 동시에 도시의 존재를 쉽게 노출하지 않았다. 좁은 협곡 시크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도심이 열린다. 페트라는 지형 자체를 방어 장치로 활용했다. 장성이 외부를 밀어냈다면, 페트라는 시선을 차단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물이다.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호주 관광객의 한국 여행은 바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한강공원 산책로를 걷거나, 북촌과 서촌 골목을 천천히 둘러본다. 실내 쇼핑몰보다 야외 공간에 오래 머문다. 여행의 첫 장면이 ‘걷기’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장거리 비행 끝에 도착하지만, 일정은 활기차다. 낮에는 도시를 걷고, 저녁에는 번화가에서 식사를 즐긴다. 한국을 실내 관광지가 아닌 ‘생활하는 도시’로 소비한다. 한국관광공사 국가별 방한관광시장 분석에서도 호주는 체류 기간이 비교적 길고, 자연·도시 체험과 문화 활동 참여가 고르게 나타나는 시장으로 분류된다. 통계가 말하는 성향은 거리 풍경과 닮아 있다. 장거리 여행, 한 번 오면 길게 호주에서 한국까지는 9~10시간 안팎. 가까운 여행지는 아니다. 그래서 방문 빈도는 높지 않지만, 한 번 오면 일정이 길어진다. 짧게 찍고 돌아가기보다, 며칠 더 머물며 천천히 본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이나 제주 같은 다른 도시를 함께 묶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행을 하나의 루트처럼 설계한다. 체류가 길수록 소비도 고르게 분산된다. 숙박, 식음료, 교통, 체험 활동까지 폭넓게 쓰인다. 단기 쇼핑 중심 시장과는 구조가 다르다. 야외 공간
[뉴스트래블=편집국] 서울의 중심에는 하나의 축이 놓여 있다. 남쪽의 광화문에서 북쪽 백악산(북악산)으로 곧게 이어지는 직선. 그 선 위에 조선이 세워졌다. 1395년, 태조 이성계는 새 왕조의 법궁을 완성하고 이름을 경복궁이라 했다. ‘큰 복을 누린다’는 뜻. 그러나 그 이름에는 단순한 길상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왕조의 정통성과 질서를 공간으로 선언하는 일, 그것이 경복궁의 탄생이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다. 통치 이념은 건축에도 반영됐다. 경복궁의 배치는 엄격한 위계와 축선 중심 구조를 따른다.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을 통과하면 넓은 조정(朝庭)이 펼쳐지고, 그 끝에 정전 근정전이 놓인다. 근정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조선 정치의 상징이었다. 왕의 즉위식, 세자의 책봉, 외국 사신 접견 같은 국가적 의례가 이곳에서 거행됐다. 두 단의 월대 위에 세워진 전각은 물리적 높이로 왕권의 위엄을 드러낸다. 근정전 앞마당의 품계석은 조정 질서를 돌로 고정해 놓은 장치다. 문관과 무관이 서는 자리가 구분되고, 중앙 어도는 오직 왕만을 위해 비워진다. 이 공간에서는 모든 움직임이 규범이었고, 모든 시선이 권위를 향했다. 건축은 곧 정치였고, 배치는 곧 국가 체계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거대한 벽은 강한 국가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벽은 강함보다 두려움에서 먼저 태어난다. 무엇인가를 막아야 할 때, 권력은 벽을 세운다.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클수록 벽은 더 높아진다. 만리장성은 그런 구조물이다. 만리장성은 흔히 인류 최대의 토목 건축으로 불린다. 하지만 길이의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반복성이다. 장성은 한 번에 완성된 구조물이 아니다. 전국시대의 각국이 흙으로 쌓은 성벽에서 시작해, 진, 한, 수, 명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덧대고 허물고 다시 세웠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이어졌고, 이어졌기 때문에 제국의 상징이 됐다. 장성은 완결의 건축이 아니라, 불안의 누적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직후 북방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성벽을 연결했다. 통일 제국의 첫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였다. 수십만의 인력이 동원됐고, 수많은 이가 공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사가 단지 군사적 필요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데 있다. 통일 직후의 제국은 내부 결속이 더 절실했다. 거대한 공사는 백성을 조직하고, 자원을 통제하고, 황제의 권위를 가시화하는 방식이었다. 벽은 북방을 막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는 도시와 바다가 맞닿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낮에는 빛나는 수면과 고층 빌딩이 어우러지고, 밤에는 네온과 레이저가 하늘과 물을 가른다. 인공섬과 매립지, 교량과 광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공간 자체가 국가 전략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싱가포르의 국가적 약속을 보여준다. 작은 섬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과 관광, 물류 중심지로 설계됐다. 바다는 국경이자 연결점이며, 도시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담는다. 국가 정체성이 공간 안에서 구현됐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마리나베이는 싱가포르의 경제적 도약을 상징한다. 과거 조호르 해협을 따라 조성된 작은 어촌이 이제 세계 금융 허브로 바뀌었다. 국가는 토지를 매립하고 구조를 재편했다. 전략적 선택이 도시의 형상을 만들었다. 섬과 해안을 잇는 교량, 인공 수로, 광장이 계획적으로 배치됐다. 공간 활용과 경제 효율이 동시에 고려됐다. 관광과 비즈니스가 겹쳐 움직인다. 국가 설계의 효과가 즉각적이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카지노, 컨벤션 센터가 중심에 있다. 이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국가의 얼굴’이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제한다. 공간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