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인근에 펼쳐졌던 소래 염전.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어내던 이 광활한 들판은 한때 ‘한국 근대 소금산업의 심장’이었다. 전국 일상의 맛을 책임지던 소금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염전 창고의 붉은 지붕은 무너져 내렸고, 소금을 긁어 모으던 나무판은 잡초 사이에서 썩어가고 있다. 사라진 것은 소금만이 아니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과거의 시간과 산업, 생계와 기억이 함께 밀려났다. 지금의 소래 염전은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이자 ‘과거 도시의 골격이 사라진 자리’라는 두 얼굴을 가진 금단의 여행지가 됐다. 소금꽃이 피던 땅소래 염전은 1930년대 조선 최초의 대규모 천일염전으로 조성됐다. 수로를 통해 해수를 끌어들여 다져 놓은 염전에 펼쳐진 하얀 소금 결정은 당시엔 하나의 ‘풍경 산업’이었다. 1950~70년대엔 연간 수천 톤의 소금이 생산되며 전국으로 유통됐다. 국내 김치 산업, 염장 어업, 식품 가공업 모두 소래 염전 없이 돌아가기 어려웠다. 여름철이면 염부들은 검게 탄 팔로 햇빛을 피해 수건을 두르고 큰 나무 스크래퍼로 소금을 긁어 모았다. 소금더미는 작은 언덕처럼 쌓였고, 염창고는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모로코의 오래된 시장, 수크의 한가운데를 걷다 보면 익숙한 바비큐 냄새와는 결이 다른, 깊고 뜨거운 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양 머리’. 불길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며 구워지는 이 머리는 마그레브 지역에서 오랫동안 축제의 상징이자 환대의 음식이었다. 라마단과 제례, 가족 모임 등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이 요리는, 고기 한 점의 맛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관습을 담고 있다. 여행자는 처음엔 놀라지만, 한입 들어가면 의외의 섬세함과 달콤한 지방의 감칠맛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김새가 주는 부담을 건너뛰면, 이 요리는 사막의 지혜와 시간을 품은 ‘생존의 조리법’이자 ‘축제의 미식’이다. 양 머리 구이는 모로코가 가진 강렬함을 한 입의 이야기로 풀어주는 음식이다. 모로코에서 양 머리 구이, 즉 ‘부지르(Bouzhir)’ 또는 지역에 따라 ‘메쉬위(Mechoui)’로 부르는 이 요리는 단순한 구이를 넘어 한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북아프리카 유목민들은 도축이 흔치 않았던 시절,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릴 곳 없이 모든 부위를 조리해 먹었다. 머리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위였지만, 지방과 젤
[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안산 대부도 해안가에 자리한 바다향기수목원은 해양성 기후와 갯벌의 척박함을 이겨내고 조성된 경기도의 대표적인 수목원이다. 100만㎡가 넘는 광활한 부지에 10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거나 전시되고 있는 이곳은, 바닷바람이 거센 대부도에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푸른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K-생태 미스터리 그 자체다. 염분과 해풍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풍성한 식물 군락이 조성되었을까? 수목원 구석구석에 숨겨진 해양성 식물의 강인한 생존 비화와, 대부도의 갯벌 지형이 품은 자연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프롤로그: 척박한 땅 위에 펼쳐진 거대 '생명의 실험실' 바다향기수목원의 역사는 대부도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도전에서 시작된다. 대부도는 바다와 접해 있어 염분이 높고 해풍이 강해 내륙의 수목원처럼 일반적인 식물 생육 환경을 조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수목원은 이러한 지리적 미스터리를 극복하기 위해 염분에 강한 식물 위주로 식재하고, 방풍림을 조성하는 등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조성됐다. 특히 이곳은 단순히 희귀 식물을 모아둔 곳이 아니라, 해양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자생 식물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중
[뉴스트래블=편집국] 서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 한 세기 전, 이곳은 “한국 최초의 해수욕장”이라 불렸다. 당시엔 바다가 아직 사람의 영역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1928년, 일제 강점기 당시 관료들의 피서용 전용 해변이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무창포는 ‘근대적 피서 문화의 출발점’이 됐다.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조차 생소하던 시절, 이곳의 모래사장은 도시와 시골을 잇는 여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파도는 여전했지만, 마을의 리듬은 무너졌다. 사라진 모래, 잊힌 사람들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무창포 해변은 인파로 들끓었다. 피서철엔 여관과 민박집이 줄지어 서고, 해변가 포장마차에서는 튀김과 수박이 넘쳐났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해변의 모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연안개발과 매립, 해류 변화가 겹치면서 모래 대신 돌과 자갈이 밀려들었다. 보령시는 모래 유실 방지를 위해 인공 방파제와 사빈 복원사업을 시도했지만, 원래의 곱고 넓던 해변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대천해수욕장이 급성장하면서 무창포의 이름은 서서히 지워졌다. 한때 ‘서해의 진주’라 불렸던 이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어둠이 내린 마닐라의 거리,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 삶은 오리알 한 알이 손바닥에 올려진다. 필리핀의 밤을 상징하는 음식, 발룻이다. 껍질을 살짝 깨면 따뜻한 김이 오르고, 그 안엔 부리를 틔우기 직전의 오리 새끼가 누워 있다. 낯선 여행자는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침을 삼킨다. 반면 현지인들은 망설임 없이 소금을 톡 뿌리고 한입에 넣는다. 그들에게 발룻은 도전이 아니라 일상, 공포가 아니라 추억이다. 사람마다 익숙함의 기준이 다르듯, 음식에도 국경이 없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는 순간, 여행은 비로소 시작된다. 발룻은 부화 직전의 오리알을 삶아 먹는 필리핀의 전통 간식이다. 수정 후 약 17~21일 된 알을 삶아 껍질째 내놓는다. 껍질을 살짝 깨면 육수처럼 진한 국물이 흐르고, 노른자와 희미한 깃털이 섞인 오리 새끼가 드러난다. 식감은 부드럽지만 진한 풍미가 있고, 고소하면서도 철분이 가득한 맛이 혀에 남는다. 현지에서는 먼저 국물을 마시고, 노른자와 새끼를 함께 먹는 것이 ‘정석’이다. 생김새를 보는 순간 고개를 돌리는 외국인도 많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그게 바로 삶의 맛”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발룻의 유래는 중국의 ‘마오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