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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기획] 프라하 & 부다페스트…이름 따라 도시 여행 ⑯

강이 품은 이름, 역사와 낭만이 흐르는 도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는 종종 강과 함께 태어난다. 흐르는 물은 생명을 품고, 사람들은 그 곁에 터전을 세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강은 도시의 이름 속에 남아, 수백 년의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두 도시는 유럽의 심장에서, 서로 다른 강을 품고 자란 형제처럼 닮았다.


하나는 보헤미아의 수도로, 또 하나는 다뉴브의 여왕으로 불린다. 프라하의 이름엔 ‘문턱’이라는 뜻이, 부다페스트에는 ‘강 건너의 요새’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그 문턱을 넘어 제국의 수도로 향했고, 요새를 지나 자유의 도시를 만들었다. 이름은 그렇게 시대를 건넌 이야기의 첫 줄이 됐다.

 

 

◇ 프라하, 강 위에 세운 문턱의 도시

‘프라하(Prague)’라는 이름은 체코어 ‘프라흐(Prah)’, 즉 ‘문턱’을 뜻한다. 이는 블타바 강 위에 세워진 다리와 언덕이 만들어낸 지형에서 비롯됐다. 이 문턱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외부로 나아가는 관문이었다. 중세의 상인과 순례자들이 이곳을 지나며 유럽 대륙의 동서문화를 교류시켰다.


9세기 프르셰미슬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삼은 뒤,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정치와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천 첨탑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골목마다 교회와 탑이 솟았고,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는 도시의 상징이 됐다. 카를 4세가 남긴 석교의 아치는 지금도 유럽의 중세를 그대로 품고 있다.


프라하의 이름은 문턱이면서 동시에 다리였다.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 문턱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꿈꾸었다. 1989년 벨벳 혁명 당시 시민들이 바츨라프 광장에 모여 '프라하의 봄'을 다시 외쳤던 순간도 그 연장선에 있다. 도시의 이름은 여전히 ‘넘어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 부다페스트, 두 도시의 이름이 합쳐진 강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원래 두 개의 도시였다. 다뉴브 강 서쪽의 ‘부다(Buda)’와 동쪽의 ‘페스트(Pest)’. 오랜 세월 서로 마주보던 두 도시는 1873년, 하나의 이름으로 합쳐졌다. 그 순간부터 ‘부다페스트’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통합과 화해의 상징이 됐다.


‘부다’는 헝가리의 초대 왕 이슈트반이 세운 왕궁 언덕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페스트’는 ‘불타다’라는 의미를 가진 슬라브어에서 유래했다. 이 상반된 이름은 도시의 운명을 예고하듯, 불과 돌, 전쟁과 부흥의 역사를 함께 품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대를 거치며 부다페스트는 늘 제국의 변방이자 중심이었다.


다뉴브 강 위에 놓인 체인브리지는 두 도시를 연결한 최초의 다리로, 이름이 곧 도시의 이야기였다.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그 다리는 과거의 분열을 넘어 하나로 합쳐진 상징이며, 오늘날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그 화해의 빛으로 반짝인다.

 

 

◇ 이름이 흐르는 강, 도시가 남긴 시간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는 모두 강 위에 세워졌고, 강이 이름의 근원이 됐다. 물은 도시를 갈라놓는 듯하지만, 결국 다시 하나로 잇는다. 문턱은 다리가 되고, 두 도시는 서로 닮아간다. 이름은 단지 지리의 표식이 아니라, 시대를 견딘 사람들의 의지와 기억의 언어다.


오늘의 여행자는 블타바 강변을 걸으며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떠올리고, 다뉴브 강의 다리 위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선율을 듣는다. 음악과 역사가 겹쳐진 공간 속에서, 이름은 다시 흐른다. 도시의 시간은 강처럼 멈추지 않는다.

 

도시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시간에게 남긴 시(詩)다. 블타바의 문턱에서, 다뉴브의 물결 위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강을 건너며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프라하의 탑과 부다페스트의 다리가 서로를 비추듯, 이름은 흘러가면서도 이어진다. 문턱과 다리가 만나는 곳, 그곳에서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이름 따라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결국 강이 만든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다. 바람과 물, 돌과 불이 만들어낸 이 두 도시는 흐름 속에서 하나의 문장을 완성한다. 그것은 인간이 세운 도시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은 문장이다 - '흐름 속에 머무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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