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다. 바다 위를 떠도는 베네치아와 음악 속에 숨 쉬는 하바나는 서로 다른 대륙에 있지만, 같은 시간 위를 산다. 한 도시는 물 위에서, 또 한 도시는 리듬 속에서 과거를 품고 현재를 살아낸다.
이름은 그 자체로 시간의 언어다. 바다와 바람, 노래와 골목이 켜켜이 쌓여 도시의 얼굴을 만들고, 사람들의 기억은 그 이름 위에서 흐른다. 베네치아와 하바나는 멈춘 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라짐과 존재의 경계를 증언한다.
◇ 물 위에 세운 문명, 베네치아의 시간
베네치아는 ‘베네티족의 땅(Venetia)’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기원전 5세기, 북이탈리아의 늪지대에 정착한 이들은 침략을 피해 바다로 나갔다. 육지를 버리고 물 위에 세운 도시, 그것이 곧 베네치아였다. 이름은 생존의 흔적이자 인간이 자연에 남긴 최초의 흔적이었다. 수백 개의 섬과 다리를 잇는 구조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다.
이후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 되며 ‘아드리아 해의 여왕’이라 불렸다. 상인과 예술가, 정치가들이 이곳으로 모였고, 그들의 교류가 르네상스의 빛을 퍼뜨렸다. 하지만 번영의 그림자 속에서 바다는 늘 침묵의 경고를 보냈다. 밀물과 썰물은 도시의 운명을 흔들었고, 오늘날에도 바닷물은 산마르코 광장을 덮는다. 그럼에도 이 도시는 침몰하지 않는다. 물 위에 세운 문명, 그것이 베네치아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의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물결처럼 느리게 흐른다. 붉게 녹슨 창문과 벗겨진 벽면, 곤돌라의 흔들림 속에서 사람들은 매 순간 ‘기억의 현재’를 산다. 베네치아의 이름은 사라짐 속의 아름다움, 덧없음 속의 존재를 상징한다. 물이 도시를 지우는 동시에 보존하는, 그 역설의 미학이 이곳의 모든 풍경을 만든다.
◇ 음악으로 기억을 잇는 도시, 하바나
하바나(Havana)의 이름은 원주민 족장 ‘하바니(Habana)’에서 유래한다. 16세기 스페인이 이곳을 식민지로 삼으며, 하바나는 카리브해의 관문으로 번영했다. 사탕수수와 담배, 노예무역과 해적의 항로가 얽힌 도시의 이름은 화려함과 상처를 함께 품었다. 식민의 흔적이 남은 대성당과 요새, 스페인풍 발코니는 지금도 그 기억을 증언한다.
쿠바 혁명 이후, 하바나는 또 한 번의 이름을 얻는다. ‘자유의 도시’, ‘혁명의 심장’. 낡은 건물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클래식카가 거리를 달리는 풍경은 시간의 정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강인한 생명력이 흐른다. 하바나는 멈춰버린 도시가 아니라, 잊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되풀이하는 도시다. 음악과 춤, 거리의 웃음소리가 역사를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하바나의 골목을 걸을 때, 사람들은 눈으로가 아니라 귀로 도시를 본다. 거리마다 흐르는 트럼펫과 기타 소리, 느릿한 살사의 리듬은 이 도시의 또 다른 언어다. 하바나는 음악으로 시간을 번역하고, 기억을 노래로 남긴다. 그 속에서 여행자는 도시의 이름이 단지 지명이 아니라 감정의 기록임을 깨닫는다.
◇ 물과 음악이 만나는 이름의 자리
베네치아와 하바나는 서로 다른 바다를 마주하지만, 결국 같은 파도를 공유한다. 하나는 물의 흔적으로, 하나는 리듬의 흔적으로 시간을 새긴다. 도시의 이름은 그렇게 인간의 기억을 보존하는 그릇이 된다. 물이 말하고, 음악이 대답한다. 두 도시는 시간의 침묵 속에서 서로를 비춘다.
도시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시간에게 남긴 시(詩)다. 베네치아의 물결은 제국의 기억을 품고, 하바나의 노래는 자유의 꿈을 이어간다. 물과 음악, 사라짐과 반복, 그 모든 흐름이 모여 하나의 진실을 말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것. 그것이 이 두 도시가 이름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