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인도네시아의 여권 자유도가 1년 새 뚜렷하게 낮아졌다. 영국 컨설팅사 헨리앤드파트너스(Henley & Partners)가 최근 발표한 2025년 헨리여권지수에서 인도네시아는 전년 66위에서 70위로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여권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국가는 73개국으로, 2024년 81개국보다 8곳이 줄었다.
헨리여권지수는 전 세계 199개 국가·지역을 대상으로 자국 여권 소지자가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국가 수를 기준으로 산출된다. 여권의 ‘국제 이동성’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로, 순위가 낮을수록 외교적 영향력과 국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 파워가 떨어진 원인으로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과 비자 제도의 상호성 문제,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부의 보수적 입국 정책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몇 년간 외국인 비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를 보였고, 일부 국가가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자국 입국 요건을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여행사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코로나19 이후에도 보건·보안상 이유로 외국인 비자를 신중히 관리하는 점이 여권 지수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여행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자카르타지사가 발표한 ‘2025년 10월 인도네시아 관광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8월 인도네시아의 해외출국자는 68만493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6% 증가했다. 방학 시즌이 끝난 뒤에도 해외여행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 등이 주요 방문지로 꼽힌다.
여권 자유도 하락과 여행 증가의 대비는 인도네시아 여행 문화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비자 면제 여부가 여행지 선택의 핵심 기준이었지만, 최근에는 항공 노선 확충과 OTA(온라인 여행 플랫폼)의 활성화로 비자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자카르타 현지 여행 플랫폼 티켓닷컴(tiket.com)은 “여권 순위 하락에도 불구하고, 항공권 예약 건수는 오히려 늘었다”며 “비자 발급 절차를 자동화하거나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확산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아세안 주요국과 비교하면 인도네시아의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싱가포르는 올해 1위(195개국 무비자) 자리를 유지했고, 말레이시아는 11위, 태국은 62위를 기록했다. 필리핀(74위), 베트남(82위)보다 여전히 상위지만, 비슷한 경제 규모 국가들과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이 단기적 현상일 가능성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외교적 전략의 필요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한다. 인도네시아 국제관계연구소(IRi) 소속 디아 마하르디 박사는 “무비자 협정은 단순한 여행 편의가 아니라, 국가 간 신뢰와 경제교류의 지표”라며 “여권 파워 하락은 결국 외교 영향력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 지수는 하락했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의 하늘길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이스타항공의 마나도–인천 노선 신설과 에어아시아, 트란스누사 등 저비용항공사 노선 확대가 이어지며 해외여행 접근성이 높아졌다. 여행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여권의 힘’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의 실행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여권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외교적 조율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비자 입국국이 줄어드는 현상은 단순한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글로벌 이미지와 관광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 자유로워진 시대, 오히려 여권은 덜 자유로워졌다.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가운데 여권의 힘이 약해진 인도네시아의 현실은, 관광이 외교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