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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감성 로컬 기획⑭] 서울 북촌에서 만난 가나자와, 전통의 시간을 걷다

​​​​​​​한옥의 숨결과 골목의 결, 두 도시가 품은 고요한 미학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서울 종로의 중심, 삼청동길 끝자락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도시의 속도가 느려진다. 회색 빌딩 대신 기와지붕이 보이고, 차분한 나무문 아래로 바람이 스며든다. 북촌 한옥마을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일상의 무늬다. 시간은 이곳에서 단순히 흘러가지 않고, 머문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일본 가나자와의 골목이 겹쳐진다. 금박 공예로 유명한 이 도시는 화려함보다 절제의 미학으로 살아왔다. 둘 다 수도에서 한 걸음 떨어진, 그러나 문화의 뿌리가 여전히 깊게 남은 도시들이다. 북촌의 담장과 가나자와의 목조 건물은 각자의 언어로 ‘전통의 지속’을 이야기한다.

 

 

골목에 스민 시간의 결

북촌의 골목은 돌계단과 낮은 담장이 이어지고, 유리창 너머로 도자기와 붓글씨가 보인다. 이른 아침, 한옥 처마 아래로 햇살이 떨어지고, 나무창살 사이로 커피 향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집이 카페가 되고, 공방이 되며, 새로운 세대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전통이란 유물로 남은 게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의 ‘살아가는 풍경’이 된다.

 

가나자와의 히가시차야가이(東茶屋街)도 마찬가지다. 목조 2층 건물이 나란히 선 거리에는 다실과 공예점이 섞여 있다. 유카리색 노렌(가게 발수건)이 바람에 흔들리고, 문을 열면 다다미 향이 은은히 퍼진다. 이곳에서는 100년 넘은 찻집이 여전히 저녁마다 문을 열고, 손님은 조용히 차를 마시며 정원 바깥의 빗소리를 듣는다. 두 도시의 공통점은 ‘일상 속의 전통’이자 ‘고요함의 기술’이다.

 

느림을 배우는 도시

북촌을 걷는 일은 시간의 속도를 다시 배우는 일이다. 한 걸음마다 바람이 다르고, 그림자의 각도도 변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서울의 다른 구역과 달리, 북촌은 여행자에게 ‘멈춤’을 허락한다. 가끔은 카메라 대신 눈으로, 기록 대신 기억으로 남겨야 할 장면들이 있다.

 

가나자와의 시간도 그렇게 느리다. 겐로쿠엔(兼六園) 정원에서는 연못 위로 비가 내리고, 돌다리를 건너는 발소리만이 잔잔히 퍼진다. 인근 21세기 미술관은 유리와 빛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주변의 골목은 여전히 옛 상점들이 지키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나란히 있는 풍경, 그것이 가나자와가 보여주는 ‘일본식 균형감’이다.

 

 

오래된 것의 위로

두 도시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전통’을 이야기한다. 북촌은 재개발의 속도 속에서도 한옥을 복원하고, 공방과 예술가의 작업실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가나자와는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옛 거리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현대적 감각을 덧입혔다. 변화와 보존의 균형, 그것이 두 도시를 잇는 보이지 않는 축이다.

 

결국 북촌과 가나자와는 ‘조용한 도시’라는 점에서 닮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풍경, 말없이 마음을 눅잦히는 거리의 온도. 여행자는 북촌의 돌담길을 걷다 가나자와의 목조골목을 떠올리고, 가나자와의 찻집에 앉아 북촌의 처마 끝을 상상한다. 전통의 시간은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도시를 천천히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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