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넓고 둥근 회색빛의 얇은 빵, 인제라(Injera)는 에티오피아 식탁의 중심이다. 보기엔 팬케이크 같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입에 넣는 순간 퍼지는 톡 쏘는 신맛, 그 안엔 발효의 시간과 아프리카의 햇살이 녹아 있다.
인제라는 단순한 주식이 아니다. 그 위에 각종 스튜와 커리, 채소 요리가 함께 올려지고, 모두가 한 접시를 둘러앉아 손으로 뜯어 나눠 먹는다. 수저도, 접시도, 형식도 없다. 대신 웃음과 대화가 있다. 인제라는 ‘함께 먹는’ 문화를 상징하는, 에티오피아의 가장 따뜻한 음식이다.
인제라는 에티오피아와 이웃국가 에리트레아의 대표적인 발효빵이다. 주재료는 테프(Teff)라는 아주 작은 곡물. 이 곡물은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해 ‘슈퍼 그레인’으로 불린다. 테프 가루를 물에 섞어 며칠 동안 발효시키면, 자연 효모가 만들어지고, 특유의 산미가 생긴다. 이 반죽을 팬에 부어 구우면 미세한 구멍들이 촘촘히 생긴다. 그 구멍은 스튜의 국물을 흡수해 인제라를 더 맛있게 만든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인제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심지어 손님이 찾아왔을 때도 인제라가 등장한다. 손님이 오면, 호스트는 인제라를 가장 먼저 내놓는다. 인제라 위에는 다양한 요리가 한데 올라간다. 매운 렌틸콩 스튜 ‘미세르 와트(Misir Wat)’, 양고기와 채소를 볶은 ‘티브스(Tibs)’, 시금치와 감자를 버무린 ‘아틱킬트(Ater Kikil)’ 등이 대표적이다.
식사는 손으로 한다. 인제라 한 조각을 뜯어 반찬을 집어 먹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손으로 먹는다’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인제라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음식이다. 누군가에게 직접 음식을 집어 건네는 ‘구르샤(Gursha)’라는 풍습이 있다. 사랑과 존중의 표현으로,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 인제라 한입을 손으로 떠서 먹여준다. 이 작은 행동에 에티오피아의 공동체적 가치가 담겨 있다.
인제라의 독특한 신맛은 처음에는 낯설다. 하지만 몇 번 먹다 보면, 그 산미 속에서 미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발효에서 오는 풍부한 향, 스튜의 향신료, 그리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어우러진다.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언어가 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함께 먹는 것’이 곧 신성한 행위다. 그들의 식탁에는 개인의 접시가 없다. 한 장의 인제라를 중심으로 모두가 둘러앉아 웃으며 먹는다. 음식을 나눈다는 건 삶을 나눈다는 뜻이다. 인제라 한 조각에는 그들의 유대와 평화의 철학이 담겨 있다.
여행자가 인제라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낯선 신맛에 잠시 당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입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녹아 있다. 테프의 작은 알갱이에서 시작된 발효의 마법은, 결국 인간의 ‘함께’라는 본능으로 이어진다.
인제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공동체다. 혼자 먹는 법이 없고, 나눌수록 맛이 깊어진다. 만약 당신이 에티오피아 여행길에 오른다면, 인제라를 손으로 뜯어보라. 그 신맛 뒤에, 따뜻한 사람의 온기와 대륙의 리듬이 느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손의 미식’, 아프리카의 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