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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기획] K-푸드의 진화④ 감자탕·떡의 재발견, 평범한 한 끼가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맛,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일상
국수·감자탕·떡으로 그려지는 ‘생활 속 미식 지도’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서울 성수동의 한 감자탕집 앞에는 요즘 주말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그중엔 대만과 홍콩에서 온 단체 여행객도, 일본에서 온 혼행족도 있다. 한때 ‘현지인 맛집’이었던 이곳이 외국인 필수 코스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이 찾는 것은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카드결제 데이터를 보면, 2025년 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높은 성장률을 보인 메뉴는 국수·만두(55.2%↑), 감자탕(44.0%↑)이었다. 이들은 특별한 한식당보다는 ‘일상 속 식사’로 분류되지만, 외국인에게는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인에게 평범한 점심 한 끼가 외국인에게는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이유다.

 

특히 대만과 홍콩에서 감자탕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대만 관광객의 감자탕 소비는 전년 대비 159%, 홍콩은 119%나 늘었다. 대만은 단체 관광 비중이 40% 이상으로 높아, 여러 명이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대형 메뉴의 선호가 두드러진다. 뚝배기에 담긴 국물요리와 함께 나누는 식사는 ‘함께 먹는 문화’라는 한국의 정서를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현지 음식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진한 육수와 큰 냄비 요리가 외국인에게는 색다른 미식 경험이 된다.

 

이런 변화는 ‘K-푸드의 생활화’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이제 ‘전통’과 ‘고급’보다는 ‘평범함’과 ‘현지감’을 더 가치 있게 느낀다. 국밥, 만두, 감자탕, 분식 같은 일상 메뉴가 외국인 미식 여정의 중심이 되면서, K-푸드는 점점 더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SNS에서도 ‘Korean soup’, ‘gamjatang’, ‘mandu’ 같은 태그가 급격히 늘고 있다. 외국인들은 음식의 맛뿐 아니라 식당의 분위기, 그릇, 심지어 식사 후의 서비스까지 공유한다. 한 외국인 블로거는 “감자탕집에서 들리는 한국어의 리듬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썼다. 그들에게 ‘한 끼의 경험’은 음식 그 이상, 한국 사회의 질서를 엿보는 창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 간식의 부활이다. 떡·한과 소비는 전년 대비 76.9% 증가했다. ‘전통’이라는 단어가 낡은 이미지가 아니라 ‘트렌디한 디저트’로 재해석되면서, 젊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SNS에서 화제가 된 ‘꿀떡 시리얼’은 30만 건 이상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국내 편의점 신제품 출시로 이어졌다. 전통 간식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고, 이를 외국인이 경험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한국의 일상 문화가 관광 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선 신호라고 본다. 예전에는 ‘관광객이 경험하는 한국’과 ‘한국인이 살아가는 한국’이 분리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외국인은 한국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한국인은 그들의 시선을 통해 다시 자신들의 문화를 재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식당과 전통 시장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로컬 맛집’은 이제 숨은 명소를 찾는 행위이자, 지역의 진짜 얼굴을 만나는 방법이다. 감자탕집, 분식집, 시장 떡집 같은 곳이 자연스럽게 관광 코스에 포함되며, 지역 경제와 문화가 함께 살아나는 ‘생활형 관광’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로컬 미식 콘텐츠 발굴을 확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외국인의 소비 데이터는 이제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지역 관광의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며 “한국인의 일상적인 식문화가 글로벌 관광객의 체험 포인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K-푸드의 진화는 화려한 메뉴가 아니라 ‘일상으로의 회귀’에서 완성된다. 감자탕 한 냄비, 떡 한 조각, 국수 한 그릇. 이 평범한 음식들 속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정서, 속도, 공동체의 온도를 함께 느낀다. K-푸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기에 더욱 특별한 한국의 얼굴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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