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뉴스트래블) 박민영 기자 = 30년 만에 떠난 혼자만의 여행. 이번 여정의 목적지는 베트남 북부의 항구도시 하이퐁과 하롱만과 맞닿은 깟바섬이었다. 4월 16일 새벽, 인천공항에서 비엣젯 항공에 몸을 실었다.
수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온전히 혼자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 마음속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다. 이제 누군가의 발걸음이 아닌, 오직 내 걸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순간이었다.

◇ 공항에서 시작된 첫 번째 변수
깟비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환전소가 없었다. 준비한 달러는 무용지물. 공항 한쪽 식당에서 쌀국수와 코코넛 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달러로 지불하고 동(VND)을 손에 쥐었다. 바로 이런 돌발 상황이 혼자 여행의 묘미다. 계획은 흔들렸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모험이었다.
첫날 목표는 깟바섬.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 그랩 바이크를 불러 벤파갓으로 향했다. 퀴퀴한 매연 냄새가 가득한 도심을 벗어나자 도로는 한산했고, 오토바이 운전수는 묵묵히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블카는 운행하지 않았다. 스피드보트를 타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기사 요청. 통화하며 눈에 뛴 매표소서 생각없이 표를 샀다. 그리고 서둘러 기사 작성해 송고했다.
배에 오르려는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스피드보트.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일반 페리에 몸을 실었다. 느린 항해 끝에 50분 만에 도착한 깟바섬.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 깟바 국립공원 트레킹, 시간과의 싸움
깟바에서의 첫 일정은 국립공원 트레킹. 이어 캐논 포트 일몰이 계획돼 있었다. 캐논 포트는 베트남전 당시 요새였던 곳으로, 지금은 군사 보호구역이지만 해질녘 풍광으로 유명하다.
시간은 빠듯했다. 공원 입장 마감은 오후 5시. 시계를 보니 이미 4시. 서둘러 스쿠터를 렌트해 달렸다. 깟바타운을 벗어나자 길은 한산했고, 도로를 가로막은 건 염소 무리였다. 잠시 속도를 늦추자, 무심한 듯 느릿하게 길을 건너는 염소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다시 긴장. 정상까지는 40분, 늦으면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숲길을 올랐다. 짧은 인사를 나눈 외국인 트레커들이 내려오며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손짓한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마침내 응우람 정상.
그런데 날씨는 장난을 걸어왔다. 안개비가 흩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선명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희뿌연 연무 속에 드러난 섬들의 윤곽은 오히려 수묵화 같았다. 사진을 남기려 휴대폰을 꺼냈지만, 배터리는 이미 꺼진 상태. 대신 눈에 담았다. 오래도록 남을 장면이었다. 서둘러 발길을 돌리며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 또 오리라.”

◇ 산업도시 하이퐁과 대비되는 섬의 얼굴
하이퐁은 베트남 3대 도시다. 그 명성에 기대를 걸었지만, 첫인상은 무거웠다. 공장의 매연, 쉼 없는 오토바이 행렬. 강과 호수는 탁했고, 바닷가 풍경마저 흐릿했다. 공기 또한 답답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하지만 깟바섬은 달랐다. 란하베이를 품은 바다는 투명하진 않았지만, 수십 개의 섬이 흩뿌려진 풍경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트레킹을 마치고 깟바타운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섬의 여유와 자연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도시의 답답함과는 다른, 탁 트인 자유였다.

◇ 깟바 타운의 밤, 자유가 빛나다
일몰을 보려 했던 캐논 포트는 이미 문을 닫았다. 대신 밤의 깟바타운이 열렸다.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진 재래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낯선 과일을 집어 들고, 현지 음식점에서 요리를 시켰다. 두세 명이 먹고도 남을 양이었지만 가격은 1만2000원 남짓. 여행자에겐 꿈같은 물가였다.
밤이 깊자 거리는 오히려 더 활기를 띠었다. 카페, 바, 마사지숍이 불빛을 쏟아냈다. 발마사지를 받고, 길거리에서 파는 반미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빵과 고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시계를 보니 자정.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로웠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순간은 특별했고, 그 특별함이 나를 뜨겁게 했다. 30년 만에 떠난 홀로 여행, 그 답은 분명했다. 혼자일수록 세상은 더 넓고, 풍경은 더 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