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트래블) 김응대 칼럼니스트 = 2024년 대한민국 정부는 ‘관광수출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외래관광객 2000만 명 유치와 관광수입 245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세계적 콘텐츠를 보유한 한국이 관광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정작 전략의 내용은 구호에 비해 빈약했고, 경쟁국들과의 비교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관광은 단순한 유치 경쟁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와 산업 혁신의 축이 돼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전략은 그 이상을 담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외래관광객 정책 수립을 위한 데이터 활용 제고 방안'(2024)에 따르면, 한국은 외래관광객의 이동경로, 소비패턴, 체류행태 등 세부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정책은 여전히 단체관광 중심이며, 서울·부산·제주 등 일부 지역에 편중된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신시대 인바운드 확대 액션 플랜’을 통해 지방 관광지로의 분산을 유도하고, 모바일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를 결합해 실시간 관광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관광을 통해 지방 경제를 살리고, 관광객의 소비를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캐나다는 ‘Canada 365’ 전략을 통해 계절·지역·소비층을 다양화하며 관광을 연중 산업으로 전환했다. 이 전략은 단순한 유치 목표를 넘어, 관광을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개발의 도구로 삼는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겨울철 관광 비수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부 지역의 오로라 체험, 원주민 문화 관광 등 특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관광객은 단순히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의 자연과 문화를 깊이 체험하며 소비한다. 이는 관광수입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스위스 역시 ‘Strategy & Planning 2023–2025’를 통해 알프스와 호수, 도시를 연결하는 지방 중심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중소 관광업체의 홍보비용을 줄이기 위해 통합 브랜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스위스 관광청은 ‘MySwitzerland’라는 통합 플랫폼을 통해 지방 관광지의 매력을 글로벌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고급 관광과 저가 패키지를 병행해 다양한 소비층을 포괄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관광을 통해 지역 간 경제 격차를 줄이고, 지속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경쟁국들과 달리, 관광을 여전히 ‘수출’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외래관광객 수와 관광수입 총액을 늘리는 데 집중하며, 관광의 질적 성장이나 지역 균형 발전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확대 방안을 제시한 경기연구원 보고서(2024)에서도, 한국의 관광정책이 개별관광객(FIT)보다 단체관광에 의존하고 있으며, 디지털 마케팅과 지역 콘텐츠 개발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단지 전략의 방향성에만 있지 않다. 실행력과 정책 간 연계성도 부족하다. 예컨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비자 정책은 여전히 까다롭고, 다국어 안내 시스템은 일부 지역에만 국한돼 있다. 관광 편의성 측면에서 일본이나 싱가포르, 태국 등 경쟁국에 비해 뒤처진다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콘텐츠나 교통·숙박 인프라 개선은 미흡한 수준이다.
또한, 관광산업의 고용 구조 역시 문제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관광업계 종사자의 평균 임금은 제조업 대비 30% 이상 낮고, 비정규직 비율은 40%를 넘는다. 관광이 일자리 창출 산업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단순한 유치 수치보다 산업 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관광업계는 높은 취업 유발 효과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직업군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관광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디지털 전환 역시 한국 관광정책의 약점이다. OTA(온라인 여행 중개) 플랫폼이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행사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선호 여행사 없음’이라는 응답이 33%에 달한다는 점은, 브랜드 전략과 고객 경험 관리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반면 일본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관광객의 예약, 이동, 소비를 통합 관리하며,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결국, 한국의 관광정책은 전략적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기성과 중심의 유치 경쟁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지역 균형·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 일본·캐나다·스위스의 사례는 단순한 벤치마킹을 넘어, 관광을 국가 브랜드와 산업 혁신의 축으로 삼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관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교류이며, 지역의 성장이고, 국가의 미래다. 한국이 진정한 관광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숫자 너머의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관광은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품격을 드러내는 창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관광객이 아니라, 더 나은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