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안산 대부도에서 서남쪽으로 뱃길 24km를 더 들어가면 서해의 외딴섬 풍도(豊島)에 닿는다. 섬 면적 1.84㎢, 해안선 길이 5.5㎞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이곳은 대한민국 야생화 탐사의 '성지(聖地)'이자, 뼈아픈 역사가 새겨진 '시간의 박물관'이다. 오직 풍도에서만 자생하는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 이른 봄 대지를 뚫고 피어나 섬을 뒤덮는 경이로움은, 풍요롭지 못한 섬의 지리적 숙명을 역설하는 K-자연 미스터리다. 청일전쟁의 서막이 올랐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눈부신 꽃잎들, 풍도가 간직한 과거와 현재의 비화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 프롤로그: '단풍'에서 '풍요'로 바뀐 이름의 슬픈 비화
풍도의 지명은 그 자체로 역사의 굴곡을 담고 있는 첫 번째 비화다. 과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풍도는 단풍나무가 아름답다고 하여 단풍나무 풍(楓)자를 쓴 '풍도(楓島)'로 불렸다. 가을이면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을 보고 위치를 가늠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1894년, 풍도 앞바다에서 청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렸다. 일본이 이 해전에서 승리한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며 섬의 이름은 현재의 풍성할 풍(豊)자를 쓴 '풍도(豊島)'로 바뀌었다. 이는 '해산물이 풍족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승리한 일본에 의해 지명이 바뀌었다는 뼈아픈 비화가 전해진다. 다행히 2021년, 안산시는 '단풍나무 섬'이었던 풍도의 옛 이름을 고시 지명으로 바로잡으려 노력하며 역사적 정체성을 되찾는 K-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풍도(楓島)는 이름처럼 여전히 단풍과 야생화가 풍요로운 땅이다.
◇ 비화(秘話): 오직 풍도에서만 피는 'K-야생화'의 비밀
풍도가 '야생화의 섬'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이곳에서만 피는 고유종(신종) 야생화들 때문이다. 바로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다. 특히 풍도바람꽃은 과거 변산바람꽃과 같은 종으로 알려졌지만, 꽃잎과 꿀샘의 미세한 형태적 차이가 발견되면서 2011년 정식으로 풍도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공표됐다. 작고 하얀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토록 풍도에 야생화가 풍성한 이유 또한 K-미스터리다. 내륙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의 간섭이 적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며, 적당한 경사도가 존재하는 지형이 야생화의 천국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야생화 군락지 입구에는 수령 약 500년에 달하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조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가던 중 섬에 들러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어수거목(御手巨木)'이라 부르며 섬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풍도의 야생화 탐방은 단순히 꽃을 보는 것을 넘어, 조선왕조의 역사와 미지의 식물 세계가 교차하는 K-생태 고고학인 셈이다.
◇ 미래 비전: 서해의 '숨은 보석'을 위한 지속 가능한 관광
풍도는 서해의 다른 섬들과 달리 갯벌이 없어 어업 환경이 넉넉지 못했지만, 야생화 군락지와 청일전쟁 기념비 등 역사·생태 자원을 통해 새로운 관광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다. 풍도는 수심이 깊어 우럭, 놀래미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섬 서쪽 해안의 '북배(붉은 바위)' 일대는 푸른 바다와 붉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숨은 비경이다. 안산시는 풍도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보존하면서도, 야생화 개화 시기에 맞춘 생태 관광을 활성화해 섬 주민의 소득 증대와 환경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풍도는 안산의 가장 외곽에 위치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생태 비경과 역사적 스토리를 가진 보물섬"이라 강조하며, "풍도의 고유한 자연 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섬의 가치를 전국에 알려 지속 가능한 명품 생태 관광지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뱃길 운항 횟수가 늘어나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해지면서, 풍도는 수도권 사진작가와 트레커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K-아웃도어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 놓치면 안 될 에피소드 & 촌철살인 여행 팁
풍도는 섬에 들어가는 배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뱃멀미약과 편안한 신발을 준비해야 한다. 풍도바람꽃은 보통 3월 초순, 복수초와 노루귀 등은 3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므로, 야생화 탐방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3월 초중순을 노리는 것이 좋다.
마을에는 1933년에 문을 연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장이 남아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야생화 군락지 인근 해안로에는 마을의 사연을 담아 만든 경계석들이 늘어서 있어 섬 주민들의 삶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촌철살인 팁이다. "풍도의 야생화는 밟지 않고 눈으로만 찍어야 한다? 틀렸다.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을 만나는 순간, 당신은 꽃을 통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이 섬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찍어야 한다! 꽃은 곧 섬의 자부심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