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인간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경계이자 길로 삼았다. 파도를 넘어선 자는 새로운 세상을 얻었고, 그 바다 위에서 태어난 도시는 서로 다른 문명을 이어주는 관문이 되었다. 리마와 카사블랑카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개의 이름이다. 하나는 남미 문명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아랍과 유럽이 만나는 빛의 항구다.
이름의 기원을 따라가면, 두 도시는 모두 ‘말하는 자연’에서 출발한다. 리마는 케추아어 ‘리막(Rímac)’, 즉 ‘말하는 강’에서 유래했다. 안데스 산맥의 물줄기가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곳, 그 흐름 위에 스페인 식민지의 수도가 세워졌다. 반면 카사블랑카는 스페인어로 ‘하얀 집’을 뜻한다. 하얀 회벽의 집들이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던 옛 항구의 풍경이 도시의 이름이 된 것이다.
◇ 리마, 말하는 강의 도시
리마는 잉카 제국의 정복 이후, 식민지 페루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리막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말하듯 흐르고, 그 위에 세워진 궁전과 성당들은 유럽 문명의 언어로 새겨진 권력의 흔적이다. 하지만 도시의 뿌리는 여전히 안데스의 리듬에 있다. 시장의 소리, 벽화의 색, 음식의 향에는 여전히 ‘리막’의 말하는 힘이 남아 있다.
이 도시는 물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모래의 도시다.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독특한 지형 위에 세워졌기에, 리마의 하늘은 늘 안개로 덮여 있다. 현지인들이 ‘가루아(Garúa)’라 부르는 그 희뿌연 하늘은 리마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태양은 보이지 않지만, 도시의 삶은 바다와 강, 안개가 만든 고유의 리듬 속에서 빛난다.
오늘의 리마는 라틴아메리카의 미식 수도이자, 예술과 문명의 교차점이다. 세비체의 산미, 거리의 춤, 그리고 오래된 건물의 회색빛 벽이 함께 어우러져, 이곳의 이름을 다시 정의한다. 리마, 즉 ‘말하는 강’은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 강은 과거의 목소리와 미래의 언어를 함께 품고 있다.
◇ 카사블랑카, 하얀 빛의 항구
아프리카 북서부의 해안, 대서양의 바람이 부는 곳에 하얀 도시가 있다. 카사블랑카는 고대에는 안파(Anfa)라 불렸으나, 포르투갈 상인들이 정박하며 ‘카사 브랑카(하얀 집)’라 부른 것이 도시의 새 이름이 됐다. 흰 벽으로 덮인 건물들은 햇빛을 반사하며, 먼 바다에서도 도시의 존재를 알렸다. 이름 그대로, 빛의 도시였다.
20세기 들어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경제 수도로 성장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과 이슬람 전통이 섞인 거리에는 지중해와 사하라의 문화가 공존한다. 하산 2세 모스크의 거대한 첨탑은 바다 위로 솟아오르며 신과 인간의 경계를 잇는다. 이곳의 이름이 빛이라면, 그 빛은 신앙과 세속,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계에서 태어난 빛이다.
카사블랑카의 바다 앞에서는, 1942년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신을 위해 연주할게, 샘.” 그 대사는 이 도시의 낭만을 상징처럼 남겼다. 하지만 현실의 카사블랑카는 단지 영화적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항구다. 이민자, 상인, 예술가들이 오가는 이곳은 오늘도 ‘하얀 집’의 이름 아래, 또 다른 미래를 짓고 있다.
◇ 바다의 이름, 서로를 비추는 거울
리마와 카사블랑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비춘다. 하나는 사막의 강 위에서, 하나는 하얀 파도 끝에서, 각각 다른 언어로 세계를 노래한다. 물과 빛, 모래와 바람이 이 두 도시의 시간을 엮고, 대서양은 그들 사이의 길이자 경계로 흐른다. 서로 닮지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이름들. 그것이 바다의 도시들이 가진 운명이다.
도시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자연에게 남긴 시(詩)다. 리마의 강은 말없이 이야기를 전하고, 카사블랑카의 벽은 빛으로 대답한다. 물과 빛이 스치며 남긴 흔적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불씨를 지핀다. 바다의 양쪽 끝에서 태어난 두 이름은, 그렇게 오늘도 서로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