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인공지능이 문화의 언어를 다시 쓰고 있다. 정부는 ‘문화한국 2035’를 통해 AI를 콘텐츠 산업의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관광·공연·전시 등 문화 전 분야에서 AI 활용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기술 확산의 속도는 빠르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인프라와 인력, 데이터의 세 축이 여전히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금의 과제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문화한국 2035’의 핵심 목표는 AI를 문화산업의 생산과 유통 구조 속에 내재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K-컬처 AI 산소공급 프로젝트’를 통해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데이터와 인프라를 공급하고, 공연·영상·관광 등 산업별 AI 활용을 촉진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단기적 기술 지원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문화산업의 디지털 생태계를 자립적으로 구축하려는 구조적 실험으로 평가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관광산업 분야 인공지능 도입 지원 방향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관광·문화 기업의 AI 도입은 대형 플랫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챗봇, 번역, 맞춤형 추천, 수요 예측 등 고객 접점의 서비스가 주를 이루며, 일부 호텔과 여행사는 생성형 AI를 이용한 상품 자동 구성, 가격 책정, 리뷰 분석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연구는 동시에 세 가지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관광과 문화 데이터의 질적 부족. 둘째, 중소기업의 기술 접근성 미비. 셋째, AI 활용 전문 인력의 절대적 부족이다.
이러한 격차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의 문제다. AI가 관광객의 행동을 분석하고, 공연의 조명을 제어하며,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는 시대에도 ‘학습할 데이터’와 ‘운용할 인재’가 없다면 산업은 표면적 디지털화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별 지원체계를 제시했다. 관광 AI 데이터 허브 구축, AI 바우처 제도 확대, 산업 특화형 R&D와 직무 중심의 교육 체계가 그것이다. 특히 생성형 AI 도구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광기업과 중소 IT 스타트업의 공동 참여를 의무화하는 ‘관광AI 바우처’ 사업은 실질적인 산업 내재화를 위한 모델로 주목받는다.
AI 기술이 문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선다. 데이터 기반 수요 예측과 감성 인식 기술은 공연·전시의 기획 구조를 바꾸고, 지역 축제의 운영 효율을 높인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개인화’다. AI는 소비자의 취향과 이동 동선을 학습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안함으로써, 관광과 공연의 경험 자체를 세분화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감성과 창의에 의존하던 문화산업을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재편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K-컬처 산업의 다음 단계는 ‘창작과 기술의 융합’이 아니라 ‘구조의 통합’이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산업 인프라로 받아들이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데이터 허브, 표준화, 인력 양성, 규제 개선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문화산업의 AI 전환은 지속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문화의 감각을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감각을 확장시키는 새로운 문법을 제공할 뿐이다. 문화와 기술이 균형을 이룰 때, ‘AI 시대의 K-컬처’는 세계와 다시 연결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