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 비스트로. 버터 향이 가득한 주방에서 요리사가 집게로 무언가를 꺼낸다. 빛나는 은빛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건, 다름 아닌 ‘달팽이’다. 우리에겐 정원이나 풀밭의 느린 생물로만 보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스카르고(Escargot)는 미식의 상징이다. 버터, 마늘, 파슬리가 만나 완성되는 그 한입은 의외로 부드럽고 고소하다. 처음엔 망설이다가도, 한 번 맛본 사람은 말한다. “이건 바다의 조개도, 육지의 고기도 아닌 제3의 풍미다.” 느림을 미식으로 승화시킨 프랑스의 지혜, 달팽이는 그 증거다.
에스카르고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이미 귀족들 사이에서는 달팽이를 ‘육상 조개’라 부르며 별미로 즐겼다. 로마의 식탁에서 시작된 이 습관은 중세 프랑스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진다. 특히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은 지금도 ‘에스카르고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이 지역의 프랑스인들은 달팽이를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문화로 여긴다.
조리 과정은 의외로 정교하다. 달팽이를 깨끗이 손질한 뒤, 버터에 다진 마늘과 파슬리, 소금, 그리고 약간의 화이트와인을 넣어 만든 ‘에스카르고 버터’를 채운다. 그 후 껍데기 안에 다시 넣어 오븐에 굽는다. 버터가 녹으며 마늘 향이 퍼지고, 달팽이 살은 쫄깃하면서도 촉촉해진다. 포크로 껍데기 속 달팽이를 꺼내 한입 넣는 순간, 고소함이 혀끝에서 번진다.
프랑스 미식가들은 에스카르고를 ‘소박한 사치’라고 부른다. 값비싼 고기보다 손이 더 가지만, 진짜 미식은 정성과 인내에서 나온다는 철학 때문이다.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시골 비스트로에서도, 달팽이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대접받는다. 차이점이 있다면 분위기뿐이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먹어도, 돌벽 부엌의 촛불 아래서 먹어도, 에스카르고는 여전히 ‘느림의 맛’을 상징한다.
여행객에게 이 음식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대부분의 반응은 의외로 비슷하다. “조개 같으면서, 버섯 같고, 버터 향이 놀랍다.” 그 부드러운 식감은 프랑스의 음식 문화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경험의 예술’임을 보여준다. 프랑스인들에게 요리는 시간의 예술이다. 빠른 결과보다 느린 과정, 손의 움직임, 향의 변화, 기다림의 미학이 모두 포함된 예술적 행위다. 에스카르고는 그 철학의 집약체다.
현지에서는 ‘느림의 미식’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쓰인다. “빠른 음식은 맥도날드, 느린 음식은 달팽이.” 그러나 그 속엔 자부심이 담겨 있다. 프랑스인들은 달팽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비 오는 날, 정원에 기어오르는 달팽이를 보고 “오늘 저녁 반찬이 많겠군”이라고 농담을 던지는 그들의 여유는, 삶을 즐기는 방식의 표현이다.
에스카르고는 단지 ‘달팽이를 먹는다’는 기괴한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과 여유, 그리고 자연의 리듬을 맛보는 시간이다. 버터 향이 녹아드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포크를 천천히 들어 한입에 넣는 그 순간이 프랑스의 삶 그 자체다. 우리는 종종 ‘미식’을 복잡한 기술로 생각하지만, 프랑스는 말한다. “좋은 재료, 좋은 시간, 그리고 느린 마음.” 달팽이는 그 느림의 철학을 상징한다. 그러니 프랑스 여행에서 에스카르고를 만나게 된다면, 잠시 속도를 늦춰보자. 그 한입 속에 프랑스의 미학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