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한류의 중심이 이제 식탁 위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최근 보고서 '이색 미식관광 콘텐츠 현황 및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외래 방한 희망자 가운데 57.9%가 ‘한국 음식을 직접 맛보기 위해 방문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는 쇼핑(32.6%), K-콘텐츠 체험(24.1%)을 압도하는 수치다. 과거 외국인 관광이 ‘명동 쇼핑’과 ‘드라마 촬영지 탐방’에 머물렀다면, 이제 한국을 찾는 이유가 ‘한식의 맛과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변화의 징후 – 여행의 동기가 바뀌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관광의 키워드는 ‘감각적 경험’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2024년 보고서에서 “여행자의 62%가 음식 체험을 여행 선택의 주요 요인으로 본다”고 밝혔다. 실제 일본의 ‘가스트로노미 투어’, 태국의 ‘로컬 푸드 마켓 투어’, 프랑스의 ‘셰프 동행 와인여행’ 등 미식은 각국 관광산업의 중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과 부산의 미슐랭 레스토랑뿐 아니라, 광주의 한정식 거리, 전주의 비빔밥 골목, 수원의 갈비 타운 등 로컬 음식이 여행의 목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거리 음식은 빠르게 세계화되고, 유튜브·넷플릭스를 통해 ‘일상 속 한식’이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있다.
한류의 확장 – 콘텐츠가 미식을 밀어올리다
한국 미식의 인기는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다. K-드라마·영화·예능 속 ‘음식의 서사’가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생충>의 짜파구리, <오징어게임>의 달고나, <윤식당>의 한식 정식은 한국 음식을 문화적 맥락과 함께 세계에 각인시켰다. ‘보는 한류’에서 ‘먹는 한류’로, 즉 감상 중심에서 체험 중심으로 흐름이 이동한 것이다.
보고서는 이 현상을 “콘텐츠-미식 상호작용 효과”로 규정한다. 드라마나 유튜브 콘텐츠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음식이 다시 한국 방문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다. 이는 한류 확산의 2단계, 즉 ‘체험형 한류(Experiential Hallyu)’ 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구조적 분석 – 한국 미식이 가진 경쟁력
한국 미식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다층적 맛의 구조다. 매운맛·단맛·감칠맛이 교차하는 조리법과 발효문화는 서구권에서 이국적 감각으로 인식된다. 둘째, 공동체적 식사 문화다. 반찬 공유, 한 상 차림은 ‘함께 먹는 경험’을 중시하는 글로벌 트렌드와 맞물린다. 셋째, 접근성과 확장성이다. 한식은 스트리트푸드부터 미슐랭 레스토랑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현지화가 빠르며, 가격대가 다양해 여행자의 체류 만족도를 높인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정형화된 고급 가스트로노미 관광보다 민간 자발성이 높고 확산 속도가 빠른 ‘생활형 미식관광’ 모델로 평가된다. 한국관광공사 분석에서도 관광객 1인당 미식활동 참여율은 82.4%, 미식관광 다양성 지수는 아시아 평균 대비 1.8배로 나타났다.
대응전략 – ‘K-테이스트케이션’이라는 모델
이러한 변화를 체계화한 것이 바로 K-테이스트케이션(K-TASTECATION) 이다. ‘Taste(미식)’과 ‘Vacation(휴가)’을 결합한 이 개념은
‘맛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감각적으로 몰입하는 여행’을 뜻한다.
이 모델은 다섯 축으로 구성된다.
TASTE 프레임워크 - Taste(미식)·Attraction(관광자원)·Story(스토리텔링)·Total Immersion(오감 몰입)·Extraordinary(이색 경험 확장). 즉, 음식이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라 스토리와 감각이 결합된 문화 콘텐츠로 작동한다.
보고서의 실증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10개국 외국인 25명을 대상으로 한 시범 투어에서 ‘미식콘텐츠 중요도’는 4.58점(5점 만점), ‘이색 경험 확장도’는 4.17~4.85점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한국 음식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과 문화를 함께 체험하는 과정”이라고 응답했다.
관광의 중심이 식탁으로 이동한다
세계 각국이 미식관광으로 자국 문화를 브랜드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맛’이라는 일상적 감각으로 한류를 확장하고 있다. ‘보는 콘텐츠’에서 ‘맛보는 콘텐츠’로, ‘스타 중심’에서 ‘로컬 중심’으로 한류의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순간이다.
결국 관광의 경쟁력은 방문객 수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경험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K-테이스트케이션은 그 해답을 ‘식탁 위’에서 찾고 있다. 한류의 다음 무대는, 이제 한국의 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