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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심층] 미래여행 대전환 ⑧…관광의 정치학

도시 경쟁에서 국가 전략으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세계 관광은 더 이상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각국이 정책과 외교, 경제 전략을 총동원해 관광을 키우거나 조정하는 시대가 됐다. 도시 간 경쟁이 이어지던 전통적 구도는 국가 단위의 전략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관광은 경제 성장의 동력이자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수단이며, 때로는 외교 갈등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관광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는 흐름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의존을 벗어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인 비전2030의 핵심 축으로 관광을 정의하며, 홍해 연안을 개발해 초대형 리조트와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관광, 대형 행사 유치, 직항 노선 증설 등 관광을 미래 산업으로 전환하는 속도는 중동 전체의 변화를 이끄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비즈니스 관광을 넘어 대규모 이벤트와 의료·교육 관광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고소득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자연과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직항 노선과 디지털 비자 정책을 강화하며 관광객 유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국가별 전략 차이가 관광 수요의 흐름을 바꾸는 장면은 앞으로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관광의 정치학은 도시를 넘어 국가 체계 전체와 연결된다. 비자 제도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연합의 ETIAS 도입, 미국·캐나다·호주의 전자 비자 강화, 중동 국가들의 단기 무비자 확대 정책은 모두 관광 흐름의 선택지를 조정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목적지 선택은 단순히 매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국가가 더 쉽게 문을 열어주느냐의 문제로 바뀌었다.

 

외교 관계도 관광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변화가 양국 관광객 수에 즉각 반영되었던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관광은 외교 갈등의 피해자이자, 때로는 관계 회복을 위한 상징적 교류 수단으로 자리한다. 경제 제재나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될 때 특정 국가로 향하는 여행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관광 정책의 변화는 지역 사회의 운명에도 영향을 준다. 국가의 전략적 지원 여부에 따라 특정 관광지가 성장하거나 쇠퇴하고, 국가 간 협력이 이루어질 때 공동 관광 루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유럽의 다국가 크루즈 루트,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공동 관광 패스, 아프리카 동부의 사파리 연계 프로젝트 등은 관광을 외교적 협력 도구로 활용한 사례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 전략이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성장 전략이 지역의 수용 능력을 압박하는 경우, 환경 훼손과 과잉관광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관광의 정치학이 국가 간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과잉을 부추길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관광은 개인의 경험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산업이다. 한 여행객의 선택은 자유롭지만, 그 선택을 둘러싼 구조는 국가의 정책과 전략이 만든다. 예산 배분, 비자 제도, 항공 협정, 외교 관계 같은 국가 단위의 결정들이 세계 관광의 흐름을 형성하는 시대. 관광의 정치학은 앞으로 여행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프레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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