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성은 기자] 태국 여행이 익숙해질수록 어떤 이들은 방콕을, 또 어떤 이들은 해변을 건너뛴다. 그리고 그다음 목적지로 태국 북부를 선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태국 북부에는 ‘관광지로 정리되지 않은 태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산악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도시와 마을, 수백 년 전 왕국의 흔적, 그리고 여전히 일상 속에서 숨 쉬는 사원 문화는 이 지역을 태국 여행의 또 다른 출발점으로 만든다. 북부로 들어서는 순간, 여행자는 태국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태국의 하루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
치앙마이 | 태국 북부의 문, 가장 균형 잡힌 도시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 여행의 시작점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풍경은 이미 달라진다. 고층 건물 대신 낮은 건물과 산의 윤곽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공기는 방콕보다 한결 가볍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해자와 성벽을 따라 도시의 형태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 안에는 사원, 학교, 주택, 시장이 특별한 구분 없이 섞여 있다.
와트 프라 싱과 와트 체디 루앙에서는 관광객의 카메라 셔터 소리보다 주민들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이곳의 사원은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들르는 곳’이다. 아침이면 승려들이 탁발을 나서고, 저녁이면 사원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이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치앙마이는 과거 라나 왕국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과거를 박제하지 않고 현재의 일상으로 이어가고 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도이 수텝 사원이 치앙마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해 질 무렵 이곳에 서면 도시 전체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많은 여행자가 이 풍경 앞에서 오래 머무는 이유는, 이 장면이 치앙마이라는 도시의 속도를 가장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치앙라이 | 사원이 예술이 되는 곳
치앙마이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치앙라이라는 조용한 도시가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이곳은 태국에서 가장 실험적인 사원을 품고 있다. 순백의 외관이 인상적인 왓 롱 쿤, 이른바 화이트 템플은 전통 사원의 형식을 빌려 현대 사회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해골, 불길, 현대적 상징이 뒤섞인 이 공간은 종교 시설이자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다.
치앙라이의 또 다른 얼굴은 국경에서 드러난다. 메콩강을 따라 형성된 골든 트라이앵글에서는 태국, 라오스, 미얀마가 맞닿아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나라의 풍경이 한 시야에 들어오는 경험은 이 지역이 지닌 역사적 복합성을 실감하게 한다. 한때는 아편의 경로로 알려졌던 장소는 이제 국경과 강,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여행지로 바뀌었다.
파이 | 일정이 필요 없는 여행지
치앙마이에서 산길을 따라 세 시간가량 달리면 파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여행 방식이 달라진다. 꼭 봐야 할 명소보다, 천천히 보내야 할 시간이 먼저 주어진다. 논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 산등성이에 걸린 안개, 낮은 건물 사이에 숨어 있는 카페들이 파이의 풍경을 만든다.
낮에는 온천이나 폭포로 향하고, 해 질 무렵에는 전망대에 오른다. 밤이 되면 소규모 야시장이 열리고, 여행자와 현지인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다. 파이는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떻게 쉬었는지’를 기억하게 만드는 곳이다. 북부 여행에서 가장 느린 호흡을 허락하는 마을이다.
매홍손과 산악 지역 | 태국의 가장 안쪽
더 깊이 들어가면 매홍손과 산악 지역이 펼쳐진다. 이곳은 여전히 자연과 공동체가 삶의 중심에 있는 지역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카렌족, 아카족 등 소수민족 마을이 나타난다. 관광을 위해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마을이다.
전통 가옥과 농사 풍경, 소박한 시장은 태국 북부가 ‘남아 있는 곳’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곳’임을 보여준다. 이 지역을 여행할 때는 빠른 이동보다 머무는 태도가 중요해진다. 북부 여행이 자주 ‘깊다’고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국 북부에는 화려한 리조트도, 자극적인 풍경도 많지 않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남는다. 새벽 사원의 종소리, 산길을 스치는 바람, 저녁 시장의 낮은 웃음소리. 태국을 여러 번 여행했다면, 북부는 선택이 아니라 다음 단계다. 이곳에서 비로소 태국이라는 나라의 속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