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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퐁 여행기③]새 삶의 시작, 하이퐁에서 마주한 여정의 끝

끝에서 비로소 보이는 시작의 얼굴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새벽 3시 50분. 어둠은 여전히 무겁게 깔려 있었지만, 눈은 이미 깨어 있었다. 네 시간 남짓한 짧은 잠이었건만, 피곤함보다 긴장감이 앞섰다. 여행의 마지막 날. 어쩌면 이 하루가 전체 여정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일지도 모른다.

 

◇ 깟바섬의 아침, 빛을 향한 발걸음

오토바이를 몰아 캐논 포트로 향했다. 어제 놓친 일출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고, 간신히 오른 정상에서는 젊은 병사의 단호한 손짓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보호구역이라 출입은 불가능하단다.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려 깟꼬 비치로 내려갔다.

 

 

이른 아침의 해변은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산책로 위로 번져오는 햇살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물결 위에서 반짝였다.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장엄한 순간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아쉬움조차도 아침의 바람과 뒤섞여 묘한 위안을 남겼다.

 

다시 오른 캐논 포트는 이번에는 문이 열려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탁 트였으나, 빛바랜 벙커와 흩어진 쓰레기들이 그 세월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화려함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황량함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시장에서 만난 소란의 풍경

아침은 국수 한 그릇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그 후 발길 닿는 대로 재래시장을 누볐다. 신선한 채소와 해산물, 알록달록한 옷가지들이 좁은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굳이 무엇을 사지 않아도, 시장의 소란스러움은 여행자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골목을 빠져나올 때, 그 자유로움이야말로 내가 찾던 여행의 묘미였다.

 

까오린 사원,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자리

깟바섬을 떠나 하이퐁으로 향했다. 첫 행선지는 까오린 사원. 담장도, 위압적인 문도 없는 입구를 지나니 붉은 기둥과 황금빛 불상이 눈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장식과 화사한 색채는 사원이라기보다 궁전을 닮아 있었다. 경건함보다는 밝고 경쾌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 화려함 한쪽에는 공동묘지가 자리했다. 삶을 기원하는 불상과 죽음을 품은 묘역이 나란히 놓여 있는 풍경. 인간의 유한함과 끝없는 바람이 동시에 숨 쉬는 듯했다.

 

 

도손 해변, 공허 속의 깨달음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손 해변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닿은 바다는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한때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휴양지라던 명성은 빛바랜 간판처럼 희미했다. 해변은 한산했고, 물빛은 탁했다. 잠시 백사장을 거닐었지만 마음이 오래 머물 이유는 찾지 못했다.

 

“굳이 베트남까지 와서 이 바다를 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곧, 여행이란 언제나 기대와 실망이 뒤섞이는 것임을 일깨웠다.

 

 

반까오 거리에서의 마무리

저녁 무렵, 발걸음은 반까오 거리로 이어졌다. 길가에서 반쎄오를 맛보고, 카페에서 망고 주스를 마셨다. 환전도 하고, 여정을 마무리하듯 마사지에 몸을 맡겼다. 얼굴과 머리, 귀까지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에 그간의 피로가 서서히 풀려갔다.

 

마지막 식사는 소박하게 마쳤다. 이어 코코넛 커피 한 잔을 들이키며 공항행 오토바이를 불렀다. 불과 10분 남짓한 거리. 그렇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예고했던 하이퐁의 여정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여행의 끝에서

마지막 하루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박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내 삶을 깊이 돌아볼 수 있었다. 빛나는 순간은 짧았고, 때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 모든 조각이 모여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삶과 죽음, 환희와 허무, 기대와 실망이 한 자리에 공존했던 여정. 여행은 언제나 남김과 비움 사이에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이 우리를 기다린다.

 

하이퐁의 하늘 아래서 나는 그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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