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도시의 이름은 자연과의 지난한 관계를 기록한 고문서다. 어떤 이름은 자연을 다스리려 했던 인간의 의지를 담고, 또 어떤 이름은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는 찬사로 남는다. 도시가 발을 디딘 땅과 마주한 물길, 불어오는 바람은 이름 속에 가장 원초적인 정체성으로 새겨진다. 암스테르담과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도시는 이름의 어원부터 그들이 마주했던 자연 환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변했지만, 이름에 새겨진 그 태도는 여전히 도시의 문화와 운명을 규정한다. 물을 막아 땅을 얻은 곳과, 좋은 바람을 찾아 정박한 곳. 여행자가 두 도시의 운하와 항구를 바라볼 때, 그 풍경은 단순한 지리가 아니라 이름이 만든 서사로 다가온다. 오늘 우리는 ‘자연’이라는 이름을 따라, 바람과 물의 길 위에 선다.

◇ 암스테르담, 물을 다스려 얻은 개척의 이름
네덜란드의 심장 암스테르담은 이름 자체가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름의 어원은 명확하다. '암스텔(Amstel) 강'과 그 강을 막은 '댐(Dam)'의 결합이다. 13세기, 홍수로부터 땅을 보호하고 무역로를 확보하려 했던 개척자들은 댐을 쌓았고, 도시는 물과의 치열한 투쟁 위에 탄생했다.
암스테르담의 운하와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좁고 긴 건물들은 이름의 유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땅이 부족했던 환경, 그리고 간척으로 얻은 땅이라는 현실이 건물들의 형태와 도시의 구조를 결정했다. 그들은 자연에 순응하기보다 기술과 노력으로 환경을 통제하며 도시를 발전시켰다. 이 개척 정신은 암스테르담을 중세부터 유럽 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현대의 자유롭고 혁신적인 도시 정체성의 기반이 됐다.
암스테르담의 이름은 여전히 ‘노력과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낮은 지반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역사는 그들을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로 만들었다. 물길을 막아 도시를 얻은 이름은 이제 물길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는 문화의 통로로 확장되고 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 바람의 축복을 갈망한 이름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름에 ‘자연의 축복’을 담고 있다. 스페인어로 '좋은 바람(Buenos Aires)’이라는 뜻이다. 16세기 초, 라플라타 강(Rio de la Plata) 하구에 정박한 스페인 탐험가들은 이 땅에 순풍(順風)이 불어 항해에 유리하고 기후가 쾌적하기를 기원하며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이름은 곧 미래에 대한 염원이자 찬사였다.
오늘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라틴 문화와 유럽 건축이 혼합된 활기 넘치는 대도시다. 이름처럼 좋은 기후 덕분에 풍요로운 농산물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유럽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남미의 '파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쾌적한 환경을 기대했던 그 이름은 실제로 자유롭고 예술적인 문화를 꽃피우는 토대가 됐다. 탱고와 열정적인 분위기는 이름이 가진 '좋은 기운'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름은 이제 ‘순응과 축복’에서 ‘열정과 환영’으로 확장됐다. 바람의 축복을 바랐던 이름은 이제 전 세계의 이민자를 환영하며, 그들의 활력으로 도시를 채우고 있다. 이름이 품은 자연의 혜택이 도시의 운명을 규정하며 성장의 기반이 된 것이다.
◇ 이름은 자연의 기록, 도시는 환경과 관계를 맺는다
암스테르담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서로 다른 대륙에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언어를 가진다. 자연과의 관계가 이름을 만들고 운명을 만든다는 점이다. 한 곳은 물을 막아 댐을 쌓았고, 다른 한 곳은 좋은 바람을 환영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도시의 문화, 건축, 그리고 사람들의 기질에 깊이 새겨져 있다.
여행자가 두 도시의 운하와 강변, 그리고 항구를 걷는 순간, 그 길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서사로 다가온다. 이름은 더 이상 과거의 지명이 아니라, 환경에 맞서거나 순응하며 살아온 인류의 역사가 된다. 그렇게 도시를 읽는 눈은 낯선 지명 뒤에 숨겨진 이야기, 곧 인간과 환경의 영원한 관계를 깊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