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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맛 기획] 한입의 세계 ㉝ 몽골 아이락…초원을 마시는 법, 말젖에 담긴 유목의 시간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몽골의 여름 초원에서 가장 먼저 건네지는 환대는 차도, 술도 아닌 흰빛 액체다. 나무 그릇에 담긴 아이락은 얼핏 보면 우유 같지만, 코끝에 닿는 향은 시고 입안에서는 가볍게 톡 쏜다. 처음 마시는 여행자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마시는 순간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아이락은 단순한 전통주가 아니라, 이동하며 살아온 유목의 시간이 액체가 된 결과물이다. 초원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 술 역시 멈추지 않는 삶 속에서 완성된다.

 

 

아이락은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몽골의 대표적인 유제품이자 발효주다. 냉장 시설이 없던 초원에서 말젖은 쉽게 상했고, 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한 선택이 발효였다. 젖을 짠 뒤 가죽 부대에 담아 하루에도 수십 차례 흔드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흔들림은 단순한 제조 공정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다. 가축을 돌보고 이동하는 사이사이, 아이락은 사람의 손길과 함께 익어간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유당은 분해되고 알코올이 생성된다. 도수는 낮지만, 여름철 갈증을 해소하고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몽골인들에게 아이락은 술이면서도 음식이고, 음료이면서도 약에 가깝다. 더운 계절에만 만들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겨울 초원에서는 말젖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아이락의 맛은 집집마다 다르다. 어떤 집은 신맛이 강하고, 어떤 집은 비교적 부드럽다. 이는 발효 시간, 흔드는 횟수, 말의 먹이까지 영향을 미친다.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는 점에서 아이락은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음식에 가깝다. 여행자가 마주하는 아이락 한 사발은 그 집의 여름, 그 집의 리듬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울란바토르 같은 도시에서는 병입된 아이락을 쉽게 볼 수 있다. 위생 기준에 맞춰 생산된 제품이지만, 유목민의 게르에서 마시는 아이락과는 결이 다르다. 게르 안에서는 손님에게 아이락을 권하는 것이 예의다. 거절은 무례가 될 수 있다. 이때 아이락은 맛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가 된다.

 

나담 축제에서도 아이락은 빠지지 않는다. 씨름과 말 경주, 활쏘기가 펼쳐지는 여름 축제의 현장에서 아이락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다. 유목 사회에서 음식은 개인의 취향보다 공동체의 유지에 더 가깝다. 아이락 역시 함께 나누는 음료다. 아이락을 마신다는 것은 몽골의 풍경을 ‘본다’기보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에 가깝다. 말의 체온, 풀의 계절, 이동의 시간이 입안에서 이어진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몇 모금 지나면 이 술이 왜 이 땅에서 살아남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아이락은 호불호가 분명하다.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이 술이 만들어진 조건이다. 초원에서는 식탁도, 저장고도 고정되지 않는다. 그 불안정함 속에서 아이락은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었다. 멈추지 않고 흔들어야 완성되는 술. 아이락은 몽골 유목민의 삶을 닮았다.

 

여행자가 아이락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은 곧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음식에 얼마나 많은 고정된 기준을 들이대고 있는가. 아이락은 그 기준을 조용히 흔든다. 초원을 닮은 이 술은 말한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마셔왔다고. 그 한 사발이 여행을 기억으로 바꾸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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