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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감성 로컬 기획④] 전주에서 만난 교토, 시간의 결을 걷다

한옥과 목조 건물이 이어주는 동양의 미학, 두 도시의 조용한 울림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전주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도시다. 한옥마을 골목에 들어서면 기와 지붕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오래된 돌담길을 따라 커피 향이 천천히 흐른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매번 새롭다. 여행자는 골목을 걷는 속도만큼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 풍경의 정서를 따라가면 교토의 장면이 겹쳐진다. 좁은 골목마다 붉은 단풍이 깔리고, 종소리와 함께 나무문이 살짝 열린다. 기요미즈데라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전경은 마치 전동성당 종탑에서 내려다본 전주 시내처럼 고요하다. 두 도시는 각자의 언어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법’을 가르친다.

 

 

오래된 골목이 품은 시간의 향
전주의 한옥마을은 700여 채의 한옥이 모여 형성된 국내 최대의 전통 주거지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해가 지면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담벼락 사이를 비추는 조명 아래로 한복 차림의 여행자들이 천천히 걷는다. 한옥의 선과 그림자가 맞닿는 장면은 어느 순간 예술이 된다.


교토의 거리도 비슷하다. 히가시야마 지구의 골목에는 수백 년 된 상점과 찻집이 늘어서 있다. 대나무로 엮은 울타리, 낮은 목조 건물, 그리고 거리마다 흐르는 전통 음악. 교토의 주민들은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개발 대신 보존을 택한 결과, 과거의 공기가 여전히 현재를 감싼다.


두 도시의 골목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보는 공간이다. 돌담의 거칠음, 나무의 결, 기와의 곡선은 모두 ‘사라지지 않은 과거’의 증거다.

 

음식이 전하는 온기와 정성
전주는 ‘맛의 도시’로 불린다.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한정식은 지역의 품격을 상징한다.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손맛과 정성이 모인 하나의 문화다. 한옥마을의 작은 식당에서는 여전히 나무 밥상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이 나온다. 그 속엔 손님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교토도 다르지 않다. 일본 전통의 가이세키 요리, 유바(두부피) 정식, 그리고 마차 디저트에는 사계절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눈꽃을 담는다. 조리법은 간결하지만 정성이 깊다. 교토의 요리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맛의 균형’보다 ‘시간의 온기’다.


전주의 음식이 ‘정성’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교토의 음식은 ‘절제’로 자연을 대한다. 다른 방식이지만, 두 도시 모두 음식을 통해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문화와 신앙이 남긴 도시의 결
전주는 전동성당과 경기전, 그리고 한벽당이 도시의 정체성을 이룬다. 유교와 천주교,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며 오랜 시간 전주의 이야기를 써왔다.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돼 있고, 전동성당은 한국 근대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종교와 역사가 나란히 흐르는 도시, 그것이 전주의 깊이다.


교토 역시 천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다. 17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고, 금각사와 은각사,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일본 정신의 중심에 있다. 불교 사원과 신사가 나란히 있는 풍경은 교토만의 공존의 상징이다.


전주와 교토는 종교와 문화가 도시의 중심에 놓여 있다. 신앙이 공간을 만들고, 문화가 일상을 완성한다. 여행자는 그 속에서 도시의 호흡을 느낀다.


전주와 교토는 빠름보다 ‘머묾’을 선택한 도시다. 옛것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왔다. 그 결과, 두 도시는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다리’가 됐다.


조용하지만 강한 인상, 절제 속의 깊은 울림. 전주와 교토는 서로 다른 나라에 있지만, 같은 미학을 품고 있다. 여행자는 두 도시를 걷는 동안, 결국 자신만의 속도를 찾게 된다. 그것이 전주와 교토가 전하는 진짜 여행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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