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연 기자] 프랑스 니스의 여름은, 어디로 가든 아름답다. 하지만 김가영(29) 씨가 그날 도착한 해변은, 가이드북에도, 구글맵에도 없었다. 사실, 그녀는 애초에 그곳에 갈 생각조차 없었다.
현대미술관을 찾아가던 중, 방향을 잘못 잡은 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고, 그 길의 끝에서 갑작스레 파도 소리를 들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자갈 해변이 펼쳐졌고, 작은 배 한 척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목적지를 잊고, 그 자리에 세 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계획은 잃었고, 풍경은 얻었다
비슷한 경험은 일본 오사카에서도 있었다. 이지호(26) 씨는 블로그에서 유명한 라멘 가게를 찾아가던 중, 지하철 출구를 착각해 전혀 다른 동네로 나왔다.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배는 고팠고, 스마트폰 배터리는 8%였다. 그냥 눈에 띈 라멘 가게에 들어갔는데, 간판도 없이 한자로 적힌 메뉴판뿐이었다. 그곳에서 마신 진한 돈코츠 육수와 수란(半熟卵)은, 지금껏 먹어본 라멘 중 가장 깊은 맛이었다.
“내가 뭘 시킨 건지도 모르고 먹었어요. 그런데 그게, 인생 라멘이었어요.”
우연히 길을 잃었을 뿐인데, 오래 남았다
관광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험을 ‘경로 탈선 효과(Path Deviation Effect)’라고 부른다. 계획된 이동 경로에서 벗어났을 때 오히려 더 강렬한 인상과 정서적 몰입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마주치는 감각은, 뇌리에 깊이 박힌다. 예상 밖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길은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고 자기화되기 쉬워요.” 한 관광심리학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아무 길로나 걸어도 되는 건 아니다
길을 잃는 경험이 항상 낭만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언어, 치안, 교통 문제 등 불확실성이 크다.
여행 전문 에디터 최현우 씨는 말한다. “우연한 여정을 원한다면, 기본적인 대비는 필수입니다. 오프라인 지도, 공공 와이파이 정보, 현지 응급 연락망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죠.”
계획 없는 여행도 좋지만, 돌아올 수 있는 ‘기준점’을 확보한 상태에서야 가능한 모험이라는 것이다.
딴길로 들어섰을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도착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어떤 여행은, 우연히 걷게 된 길에서 진짜 의미를 찾는다.
잘못 든 줄 알았던 골목에서 마주친 풍경, 지도엔 없던 가게에서 느낀 따뜻함, 목적지를 놓친 덕분에 얻게 된 예상 밖의 평온.
“그때 거기로 가지 않았다면, 그 풍경은 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모든 여정을 설명해주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 실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하되, 일부 인물 및 상황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