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트래블=김응대 칼럼니스트] AI가 여행을 설계하는 시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숙소가 좋을지, 심지어 어느 순간에 감동을 느낄지도 이제 알고리즘이 제안한다. 수백만 명의 데이터가 쌓이고, 감정 패턴이 분석되며, 우리의 ‘취향’은 수치로 정리된다. 그 덕분에 여행은 점점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 완벽할수록 감정이 사라진다.
WTTC(세계여행관광협회)의 2025년 보고서 「The Future of Work in Travel & Tourism」는 AI가 관광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결정적 도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동시에 보고서는 조용히 한 문장을 남겼다. “기술은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대체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행의 본질이 흔들린다.
호텔 프런트의 미소가 AI의 알고리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따뜻함은 여전히 ‘인간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크루즈사우디의 고객응대 시스템은 승객의 얼굴 표정을 읽어 감정을 분류하고, 구글의 추천 엔진은 사용자의 심리 상태에 맞는 여행지와 음악을 동시에 제안한다. 모든 것이 개인화되지만, 이상하게 모든 경험이 비슷해진다. 예상된 감동은 감동이 아니다.
AI는 공감을 계산한다. 그러나 계산된 공감은 진심이 될 수 없다. 호텔의 인공지능은 고객의 불만에 ‘적절한 위로 문장’을 제시하지만,
그 문장은 누구의 마음에서도 비롯되지 않았다. 기술이 친절해질수록, 사람은 말이 줄어든다. 감정이 효율로 대체되는 순간, 여행은 인간의 언어를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예상치 못한 골목의 풍경, 낯선 사람의 도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웃게 되는 순간 - 그 모든 불완전함이야말로 AI가 닿지 못하는 진짜 감정이다. WTTC는 미래 관광의 경쟁력을 ‘감정의 진정성(Authenticity of Emotion)’이라 표현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여행의 기억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AI가 완벽한 여정을 설계할 때, 인간은 불완전한 감정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선다. AI는 목적지를 알려줄 수 있지만, 감동의 방향은 여전히 우리가 정한다. 그래서 여행은 끝내 인간의 이야기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