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관광산업의 인공지능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러나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달리, 현장에서는 여전히 데이터가 부족하다. 기업 간 데이터의 단절, 공공데이터의 표준화 부재, 개인정보 규제의 불명확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기술이 아닌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가 흘러갈 생태계가 지금 관광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관광산업 분야 인공지능 도입 지원 방향 연구’는 관광기업들이 AI 도입 과정에서 직면한 핵심 애로사항으로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관리의 어려움”을 꼽았다. 연구에 참여한 국내 주요 관광기업들은 공통적으로 “AI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충분치 않거나, 데이터의 품질이 낮아 활용 효율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대기업은 자체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으나, 중소기업은 여전히 수기로 입력된 고객 정보, 불완전한 예약 통계, 포맷이 제각각인 이미지 자료를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AI는 학습의 기반을 잃는다. 머신러닝이나 생성형 AI 모델이 고도화되려면 대규모의 구조화된 데이터셋이 필요하지만, 관광 현장의 데이터는 파편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호텔 예약 정보와 지역 축제 방문 통계가 서로 연동되지 않고, 교통 데이터나 소비 패턴 데이터 역시 기관마다 관리 체계가 다르다. 결과적으로 AI가 관광객의 전체 여정을 분석하거나 수요를 예측하는 기능은 제한된다.
이 문제는 단순히 기술 도입의 속도 차이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비대칭성과 직결된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수억 건의 여행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 추천, 가격 예측, 일정 자동 구성 기능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 중소 관광기업은 외부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기술 종속과 수익 분배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데이터 격차’가 ‘산업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세 가지 대응 축을 제시한다. 첫째는 ‘관광 데이터 허브 구축’이다. 정부 주도의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마련해, 숙박·교통·이벤트·소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연계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만 개인정보를 배제한 형태로 가공된 공공데이터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둘째는 ‘공공데이터 표준화’다. 현재 각 기관이 제공하는 관광 데이터의 형식과 주기가 제각각이어서, 민간 기업이 이를 AI 학습용으로 재구성하기 어렵다. 관광데이터의 품질관리와 표준화 체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데이터 허브 역시 껍데기에 그칠 위험이 크다. 셋째는 ‘데이터 접근성 완화와 민관 협력 체계’다. 민간 기업이 축적한 여행 이력, 소비 기록, 이동 데이터 등을 공익적 목적에서 익명화해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성형 AI와 멀티모달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과거 관광 데이터는 텍스트 중심의 통계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이미지·영상·음성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가 결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여행객의 후기 영상과 음성 리뷰를 분석하면, 단순 만족도 이상의 ‘감정 기반 평가’가 가능하다. 관광지 CCTV 영상과 소셜미디어 사진을 결합하면 실시간 혼잡도 분석과 인구 흐름 예측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멀티모달 데이터는 관광의 질적 관리와 안전 운영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대규모 데이터 처리 인프라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관광 데이터의 활용은 곧 개인정보 보호와의 경계 문제로 이어진다. 관광객의 동선, 소비기록, 위치정보 등은 민감한 개인 데이터로 분류된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관광 데이터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실증 사업 단계에서 데이터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되 법적·윤리적 통제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술 실험과 개인정보 보호가 대립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 주도의 ‘문화한국 2035’ 계획에서 ‘AI 활용 콘텐츠 산업 혁신’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이 계획은 문화·관광 전반의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장기 로드맵으로, 관광 AI 바우처 제도, 데이터 인프라 확충, 산업별 AI 특화기술 개발을 포함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데이터 구축 속도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여전히 많다. 실제로 관광산업의 AI 활용률은 정보통신업(18%)이나 제조업(12%)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AI는 관광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는 데이터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다. 문제는 데이터를 연결할 체계, 데이터를 관리할 인력, 데이터를 공유할 제도다. 지금의 과제는 더 많은 AI가 아니라 더 나은 데이터다. 데이터의 부재는 기술의 공백보다 더 깊은 병목이다. 관광산업이 진정한 AI 혁신으로 나아가려면, 산업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 생태계부터 세워야 한다. 그때 비로소 ‘AI 관광국가’라는 목표는 현실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