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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손맛부터 MZ 퓨전까지…올가을, 완주가 미식 여행지로 뜨는 이유

삼례의 역사, 만경강 라이딩, 로컬 식재료가 만든 깊은 하루

[뉴스트래블=정연비 기자] 가을에는 전북의 조용한 소도시 완주로의 여행이 딱이다. 소박하지만 한적해 조용히 나만의 가을을 즐기기 좋다. 거기에 먹거리까지 넘쳐 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완주는 도시의 속도와 달리 시간이 천천히 흘러,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여행자가 자연스레 숨을 고르게 되는 곳이다. 농촌의 들판 풍경과 가까운 생활권이 만나는 이 작은 도시는, 화려한 볼거리가 많지 않아도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방문객을 붙잡는다.

 

 

완주는 전통과 자연, 그리고 최근 급부상한 로컬 미식의 흐름이 한데 모여 ‘먹고 걷고 쉬는’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다. 가을이면 완주 들녘은 노랗게 물들고, 마을을 따라 난 길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좋을 만큼 잔잔하다. 그래서 보통 완주 여행의 정석 코스로는 삼례문화예술촌 관람과 만경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라이딩 코스가 가장 먼저 언급된다.

 

 

완주군에서는 삼례 지역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쉬어가삼[례:]’ 등 일부 대여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전기자전거 무료 대여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전기자전거는 초행자나 장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장비 부담 없이 바로 탑승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만경강 자전거길은 경사가 완만해 초보자도 쉽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피로를 해소할 수 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갈대 군락과 넓게 트인 하천 풍경은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며,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촬영하거나 쉬어 가기에도 좋은 지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삼례는 호남선과 전라선 철도가 지나는 요충지이자, 만경강 수로를 통한 곡물 운송이 편리했기 때문에 일제의 쌀 수탈을 위한 주요 거점이 됐다. 삼례문화예술촌의 건물들은 1920년대 초중반,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지었던 ‘양곡 창고’였다.

 

 

당시의 건축물은 기능적 목적을 위해 단단한 구조와 단순한 외형을 갖췄고, 이 같은 형태가 지금까지 남아 시대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후 완주군이 2010년대에 들어 낡고 버려졌던 창고들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생하면서, 과거의 수탈과 착취의 공간을 치유와 창조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이번 재생 사업은 단순한 건물 복원에 그치지 않고, 공간이 지닌 역사성을 현대적으로 연결해 지역민과 방문객이 새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일제 수탈의 역사를 담은 창고 건축물들은 이제 전문작가들이나 완주의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장으로 현대 예술이 어떻게 과거를 딛고 피어났는지 집중해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 콘텐츠는 계절마다 꾸준히 바뀌어 지역의 창작 생태계를 보여주고, 건물 자체가 가진 중후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감상 경험을 만든다. 외부에서 볼 때는 투박한 벽돌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느낌이 강해 완주 여행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준다.

 

 

완주에 왔다면 완주에서 나고 거둬진 농산물과 먹거리 체험은 필수다. 완주를 대표하는 미식을 체험하고 싶다면 삼례문화예술촌 내의 ‘새참수레’로 시작해보자. 여행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한 끼가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은 완주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에 가깝다. 지역 농산물을 기본으로 구성된 메뉴는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건강한 맛을 강조하며, ‘완주다운 식사’라는 인상을 남긴다.

 

 

한식 뷔페 레스토랑으로 완주의 농산물을 사용한 메뉴들이 나오는데 노인일자리를 지원하는 완주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해 완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어르신들의 경험 있는 손맛과 어우러져 건강한 한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에 완주 여행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진다. 가을철에는 제철 채소와 곡물이 더해져 반찬의 맛이 한층 깊어지고, 조리 과정에서 묻어나는 손맛이 지역 농업의 가치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 여행자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완주 대표 관광지인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다 보니 관광객들에게는 여행 일정 시 편의성까지 제공하고 완주의 지역 경제 순환에도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난 3월부터는 기존 점심 영업 외에 저녁 8시까지 영업시간이 연장돼 이용해볼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 전시 관람 후 자연스럽게 식사가 이어지는 구조 덕분에 동선의 낭비가 없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에서도 무리가 없다.

 

 

삼례문화예술촌 관람 후나 식사 후 내부에 마련된 카페에서 편안한 티타임이 가능하다. 넓은 내부 공간과 함께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 가면 여행의 리듬이 다시 정돈되고, 삼례 일대의 특유의 차분함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완주 삼례읍의 ‘텐플러스(TENPLUS)’는 완주의 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간이다. 완주 특산물을 활용한 한식과 양식을 결합한 창의적 메뉴로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지역 농산물의 맛을 재해석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만경강 자전거길과도 가까워 라이딩 후 식사 장소로 찾는 이들이 많고, 당일치기 여행 루트에도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젊지만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주원 대표는 완주의 대표 식재료인 마늘과 고산면 한우, 신선한 채소 등을 서양식 조리법과 조화시켜 완주만의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낸다. 완주를 찾는 이들에게 “완주 식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맛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며, 변화하는 로컬 미식의 흐름 속에서 완주 식재료가 지닌 잠재력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식사의 문을 연 동상면 단감 샐러드는 풍성한 잎채소 위에 큼직하게 썬 노란 단감이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다. 붉은 치커리와 대비되는 노란 단감의 색감은 보는 순간 식욕을 자극했고, 아삭한 단감의 식감은 인공적인 단맛이 아닌 흙과 햇살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단맛을 전했다. 신선한 채소와 발사믹 풍의 드레싱이 더해져 완주 로컬푸드의 순수함을 가장 담백하게 표현한 애피타이저였다.

 

 

이어서 나온 완주 마늘 알리오 올리오는 냄새부터 남달랐다. 접시 위에는 바삭한 토핑과 윤기 있게 볶은 마늘 조각들이 듬뿍 올라가 있었고, 국산 마늘 특유의 깊고 묵직한 향이 식욕을 당겼다. 오일 파스타 특유의 느끼함은 전혀 없었으며, 대신 고소함과 감칠맛이 조화를 이루었다. 청경채, 당근, 버섯 등 채소가 함께 들어가 식감의 균형을 맞춰 주어 끝까지 물리지 않고 즐길 수 있었다.

 

 

고산면 한우 불고기 페스츄리는 텐플러스의 창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였다. 바삭한 페스츄리와 달콤 짭조름한 한우 불고기가 만나 예상치 못한 풍미를 만들어냈다. 페스츄리의 버터 향과 불고기의 부드러움이 서로를 보완하며 중심을 잡았고, 위에 얹힌 소스와 치즈가 맛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식의 넉넉함과 양식의 세련미를 동시에 담아낸 조합은 많은 이들이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로 꼽는 이유를 증명했다.

 

 

식사의 마무리는 국산 딸기로 만든 티백 티였다. 루비빛 색이 아름다운 차는 마시기 전부터 은은하게 딸기 향을 풍겼다. 기름기나 양념의 잔여감을 깔끔하게 씻어주며 식사의 끝을 부드럽게 정리해 준다. 과일향이 남기는 산뜻한 마무리는 완주 미식 경험 전반을 흐트러짐 없이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완주의 미식은 전통과 현대, 로컬과 창작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여행의 만족도를 끌어올린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역사적 이야기가 여행의 기반을 마련한다면, 완주의 농산물과 젊은 요리사들의 감각이 여행의 진짜 매력을 채워준다. 가을의 완주는 그 자체로 여유롭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예상보다 훨씬 풍부한 맛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여행자가 머무는 시간만큼 천천히, 그러나 깊게 스며드는 곳. 올해 가을, 완주가 미식 여행지로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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