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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여행지–해외편②] 사라진 불의 도시…미국 센트럴리아

꺼지지 않는 불길이 만든 금단의 지도

[뉴스트래블=편집국] 여름의 끝자락, 펜실베이니아 북부의 61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지도에는 표기돼 있지만 풍경에서는 사라진 도시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사이로 가늘게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 잡초가 파고든 아스팔트,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빈 길. 이곳 센트럴리아(Centralia) 는 한때 2,700명이 살던 탄광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5명의 주민만 남은 ‘실존하는 유령도시’다.

 

 

이 도시는 1962년 5월, 깊이 30~90m 지하에서 이어지는 광산 갱도가 불붙으면서 비극의 궤도에 들어섰다. 시는 쓰레기 소각장을 청소하기 위해 불을 붙였지만, 불씨가 버려진 갱구로 스며들며 탄층 전체가 타기 시작했다. 초기 진화 비용은 1만 달러, 이후 연방정부가 투입한 예산은 400만 달러가 넘었다. 그러나 불은 꺼지지 않았다. 탄광 화재는 한 번 시작되면 산소·갱도·미개척 탄층을 타고 수십 년 이상 이동한다. 센트럴리아의 지하 화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연기는 고요하게 피어오르고, 땅은 보이지 않게 무너진다

센트럴리아를 걷다 보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소리 없음’ 이다. 자동차 소리가 없고, 인적도 없다. 마을 중앙의 벤트로드에 서면, 잡초가 파고든 균열 사이로 열기가 서서히 배어 나온다. 연기는 뜨겁지 않다. 하지만, 달궈진 땅에 손을 가까이 대면 금세 뜨거운 공기가 손등을 스친다. 한때 왕복 4차로였던 Route 61(루트 61) 은 1983년 대규모 지반 침하 이후 폐쇄됐다. 아스팔트가 갈라진 틈 사이로는 황색 유황가스가 스며 들었고, 지표 온도는 최고 150℃까지 치솟았다.

 

마을 전체엔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 원형 흔적’이 있다. 화재가 집중된 갱도 위를 표시하기 위해 주정부가 설치한 지반 통기구다. 겨울이면 이 통풍구에서 김이 피어오르며 마치 대지가 숨을 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거대한 호흡을 남긴 채 비워진 땅” 이다.

 

■ 팩트: 1962–2024, 폐광재난의 타임라인

센트럴리아의 붕괴 과정은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라 미국 환경사에서 가장 잘 기록된 장기 재난 중 하나다.

  • 1962년 : 쓰레기 소각 → 갱도 확산 → 탄층 화재 발생

  • 1979년 : 주유소 인근 지하 온도 77℃ 측정

  • 1981년 : 12세 소년이 45m 싱크홀에 추락했다가 구조됨

  • 1983년 : 연방정부, 4,200만 달러 들여 ‘전면 이주’ 발표

  • 1992년 :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강제 매입’ 및 ‘철거 명령’ 발동

  • 2012년 : 도시 우편번호(17927) 공식 제거

  • 2024년 현재 : 5가구 거주, 공공 기반시설 대부분 철거

남은 5채의 집은 “강제퇴거 면제 합의”에 따라 주민이 생전까지 거주를 허용받은 구역이다. 그 외의 모든 토지와 건물은 주정부 소유다.

 

 

■ 지하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전쟁’

센트럴리아의 땅 아래는 지금도 복잡한 방식으로 연소가 이어진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탄층 화재는 100m 이상 깊이에서 산소를 공급받으면 수 세기 동안 지속될 수 있다. 화재는 단순히 ‘불’이 아니라, 고온·저산소 환경에서 탄소가 천천히 산화되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센트럴리아의 문제는 단순한 ‘지열’이 아니라 구조적 붕괴 위험 으로 이어진다. 지반은 연약해지고, 빈 갱도 위에는 언제든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마을 북부에서 크고 작은 침하가 반복됐고, 가스 농도는 인체에 치명적일 정도로 치솟기도 했다. 주민들의 이주는 안전 때문이었고, 주정부가 전면 철거를 결정한 이유도 결국 “불이 아니라 땅이 무너졌기 때문” 이었다.

 

■ 잊힌 도시의 현재: 폐쇄된 ‘그래피티 하이웨이’

한때 여행객들이 SNS에서 가장 많이 올리던 곳은 폐쇄된 Route 61 구간, 일명 “그래피티 하이웨이(Graffiti Highway)” 였다. 폐쇄된 아스팔트 위에 전 세계 여행자가 남긴 색색의 낙서로 덮여, 묘하게 생기와 폐허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곳에서도 안전 문제가 발생했다. 지반이 약해지고 불법 촬영·차량 진입 사고가 늘어나자 토지 소유주가 아스팔트 위에 수천 톤의 흙을 덮어 완전히 매립했다. 지금 그 자리는 잡초만 자라는 ‘평평한 녹지’ 로 변했다. 유령도시는 시간을 거치며 더욱 ‘비어 있는 풍경’이 되고 있다. 남은 것은 역사적 흔적과 연기뿐이다.

 

■ 고요한 폐허가 남긴 질문

센트럴리아를 걷다 보면, 도시가 사라진 상황조차 특별한 사건 없이 진행된 듯한 인상을 준다. 학교가 철거되고, 교회 터만 남고, 가로등이 뽑히고, 인도 위로 풀만 올라온다. 이 변화는 폭발이 아니라 조용한 침식에 가깝다. 이 도시가 남긴 질문은 결국 하나다. “인간은 자연의 시간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센트럴리아는 도시가 어떻게 ‘비어 가는지’를 눈으로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다. 산업이 만든 불은 60년 넘게 꺼지지 않았고, 도시의 시간은 그 불을 중심으로 멈춰 버렸다. 사람들은 떠났고, 땅은 여전히 뜨겁고, 연기는 계속 피어오른다. 여행자는 이 멈춘 시간 속에서 묘한 침묵을 느끼게 된다. 바람도, 엔진 소리도, 아이들의 웃음도 사라진 도시.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지하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로 흐르는 불뿐이다.

 

■ ‘금단의 여행지’가 된 이유

센트럴리아는 관광지로 공식 등록되지 않았다. 안내판도, 매표소도 없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거기엔 한 도시가 사라진 이유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 이다. 센트럴리아는 과거가 폐허의 형태로 현재에 남아 있는 드문 공간이다.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도시의 시간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여행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 선다. 뜨겁지만 고요한 땅 위에서, 사라진 도시의 마지막 흔적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묻게 된다. “인간의 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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