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세계 여행의 흐름은 단지 여행객의 취향 변화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든 빨리, 싸게, 편하게 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이동성의 변화가 관광 지형을 바꾸는 핵심 동력이다. 항공망의 확장, 디지털 비자의 확산, 새로운 경유 허브의 부상은 여행의 방향을 다시 그리게 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국제선 운항은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글로벌 항공망의 위상과 힘의 균형은 이전과 달라졌다. 유럽의 일부 항공사는 공급 여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반면, 중동과 아시아의 대형 항공사들은 장거리 노선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중동의 두바이와 카타르 도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거대한 환승 허브로 확고히 자리 잡았고, 이스탄불도 공격적인 노선 확대 전략으로 새로운 연결 중심지로 부상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 최다 국제 환승 공항 상위 5곳 가운데 3곳이 중동에 위치한다. 이는 단순한 환승 지점의 확대를 넘어, 여행의 경로가 중동을 중심으로 재조정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과거 서유럽 항공사가 지배하던 이동 노선은 다극화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관광 소비가 발생하고 있다.
비자의 디지털화도 관광 흐름을 바꾸는 핵심 변수다. 과거에는 비자 발급의 까다로움이 여행 수요의 장애물로 작용했지만, 최근 각국은 관광 유치를 위해 온라인 전자비자(e-visa)와 도착 비자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이다. 종교 중심 국가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2025년까지 관광객 연 1억 명 유치를 목표로 전자비자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카타르, UAE도 스포츠 이벤트와 허브 전략에 맞춰 비자 장벽을 낮추며 관광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의 비자 정책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곧 매력이다.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쉽게 갈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수요가 몰린다. 이동성을 확보한 국가들이 관광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항공 요금의 상승과 LCC(저비용항공사) 시장의 재편도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유가 변동과 공급망 타격으로 항공료는 팬데믹 이전보다 높아졌고, 여행객들은 경유를 감수하더라도 저렴한 옵션을 선택한다. 과거에는 목적지에 직항으로 빠르게 도착하는 것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경유 도시 체류를 즐기는 여행자가 늘며 경유 허브 도시의 경제적 파급도 커지고 있다.
이동성 경쟁은 국가의 전략적 산업 정책이 되었다. 항공사와 공항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접근성을 높이면, 내국인 이동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 유입의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장거리 이동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장거리 항공편 도입 경쟁에 나섰고, 일본도 지방공항을 활용한 국제선 확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결국 세계 관광 메커니즘은 다시 쓰이고 있다. 인기 여행지라고 해서 관광객이 저절로 몰리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어느 나라가 더 다양한 곳으로 빠르게 연결되느냐가 여행 선택의 첫 변수가 되고 있다. 이동이 편한 곳에 관광이 형성되고, 연결이 끊어지는 곳은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기후 변화가 목적지를 재편한다면, 이동성의 변화는 여행의 길 자체를 다시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길과 디지털 비자 정책은 관광 산업에서 국가 간 우열을 가르는 전략적 자원이 되었다. 다음 여행지 선택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관광지의 매력 이전에, 얼마나 쉽게 갈 수 있느냐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