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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1] 한 나라, 한 장면⑨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국가 개념이 처음 형상화된 공간
정치가 사유가 되고, 사유가 국가가 된 자리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아테네 도심 어디에서든 시선을 들면 언덕 위 신전이 보인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 시선의 구조가 그리스라는 국가의 출발점을 설명한다. 국가는 아래에서 움직였고, 위에서는 사유됐다.

 

그리스는 현대 국가의 직접적인 모델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를 구성하는 개념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아크로폴리스는 그 개념들이 처음으로 공간에 고정된 장면이다. 그리스는 국가 이전에 국가를 상상한 나라였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아크로폴리스는 종교 공간이자 정치 공간이었다. 신에게 바쳐진 장소였지만, 시민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신전은 믿음의 대상이었고, 동시에 공동체의 기준이었다. 권력은 이곳에 상주하지 않았지만, 정당성은 이곳에서 나왔다.

 

이 언덕 위 공간은 특정 통치자의 궁전이 아니었다. 왕의 거처도, 군사 요새도 아니었다. 대신 도시 전체가 바라보는 기준점이었다. 국가는 중심에 권력을 두지 않았다.

 

파르테논 신전은 신을 기리는 건축물이지만, 인간의 비율로 설계됐다. 이는 신과 인간의 거리를 조정한 선택이었다. 절대 권력이 아닌 조화가 강조됐다. 국가의 사고방식이 공간에 반영됐다.

 

그래서 아크로폴리스는 정복의 상징이 아니다. 공동체가 스스로를 이해한 결과물이다. 그리스는 국가를 힘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사유로 설명했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아크로폴리스는 기원전부터 성지로 사용됐다. 초기에는 방어와 제사의 기능이 혼재돼 있었다. 그러나 도시국가 아테네가 성장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정치와 철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서 아크로폴리스는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전쟁의 승리를 과시하기보다, 아테네의 가치 체계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민주정의 실험이 공간으로 표현됐다. 시민의 자부심이 건축이 됐다.

 

이 과정에서 예술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다. 조각과 건축은 국가 이념의 일부였다. 아름다움은 사치가 아니라 질서의 표현이었다. 국가는 미학을 통해 자신을 설명했다.

 

아크로폴리스는 단기간에 완성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세대에 걸쳐 수정되고 보완됐다. 이는 국가 개념이 고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국가는 열려 있었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며 아크로폴리스는 여러 차례 훼손됐다.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됐다. 신전은 교회가 되고, 다시 모스크가 됐다. 공간의 기능은 계속 바뀌었다.

 

그러나 구조는 남았다. 지배자는 바뀌었지만, 언덕 위의 기준점은 유지됐다. 아크로폴리스는 권력이 아니라 개념에 의해 보존됐다. 파괴할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근대에 들어 그리스가 독립 국가가 되면서 이 공간은 다시 호출됐다. 새로운 국가는 고대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왔다. 아크로폴리스는 과거가 아니라 정체성의 자원이었다. 국가는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여기서 찾았다.

 

그 결과 아크로폴리스는 유적이면서 동시에 기준이 됐다. 관광 자원이 아니라 사유의 원점이다. 그리스 국가는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했다. 시작은 여전히 유효했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 아크로폴리스는 세계인의 유산이다. 그러나 그리스에게 이곳은 여전히 내부적 공간이다. 민주주의와 시민 개념은 여기서 출발했다. 국가는 그 기원을 잊지 않는다.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이 공간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스 사회는 반복해서 이 언덕을 참조한다.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질문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답보다 질문을 유지한다.

 

아크로폴리스는 현대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기준을 제시한다. 권력은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 시민은 무엇을 공유하는가.

 

그래서 이 장소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정치와 대화한다. 그리스는 여전히 이 언덕 위에서 생각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 국가의 얼굴이다. 힘이 아니라 사유로 자신을 설명한 선택이 남아 있다. 국가는 건축을 통해 질문을 남겼다. 그 질문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 공간을 이해하면 그리스가 보인다. 완벽한 국가가 아니라, 생각하는 국가다. 아크로폴리스는 그 얼굴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리스는 여기서 시작해,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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