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0 (화)

  • 흐림동두천 -1.5℃
  • 흐림강릉 4.4℃
  • 흐림서울 0.3℃
  • 대전 0.0℃
  • 흐림대구 0.7℃
  • 흐림울산 3.9℃
  • 비 또는 눈광주 0.4℃
  • 흐림부산 4.3℃
  • 흐림고창 1.3℃
  • 제주 8.1℃
  • 흐림강화 -0.1℃
  • 흐림보은 -2.4℃
  • 흐림금산 -1.5℃
  • 흐림강진군 1.2℃
  • 흐림경주시 2.5℃
  • 흐림거제 5.1℃
기상청 제공

[NT 월드 스케치|시즌 2] 한 나라, 한 장면⑬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구시가지

총성이 멎자 음악이 들렸다
상처 위에 세운 카리브의 성벽 도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콜롬비아 북부 카리브해 연안에 자리한 카르타헤나는 강렬한 색채의 도시다. 노란 벽과 파란 창, 꽃이 쏟아지는 발코니가 골목마다 이어진다. 바람은 바다 냄새를 실어 나르고 광장에서는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평온한 풍경 뒤에는 오랜 침략과 전쟁, 마약 범죄의 기억이 겹쳐 있다.

 

카르타헤나 구시가지는 콜롬비아의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장소다. 식민지 시대에는 제국의 항구였고, 현대에는 관광 수도가 됐다. 폭력의 시대를 통과한 뒤 국가 이미지를 다시 세운 무대이기도 하다. 콜롬비아는 이 성벽 안에서 스스로를 새로 정의하고 있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관문이다. 스페인 제국은 남미에서 약탈한 금과 은을 이 항구로 모았다. 모든 부가 이곳을 통해 유럽으로 빠져나갔다. 제국 경제의 출구였다.

 

그만큼 공격도 잦았다. 해적과 적국 함대가 끊임없이 침입했다. 도시는 늘 전쟁 상태에 놓였다. 생존을 위해 성벽을 두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카르타헤나는 거대한 요새 도시로 변했다. 두꺼운 성벽과 포대, 요새가 도시를 감싼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군사 시설처럼 설계됐다. 두려움이 도시 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은 콜롬비아의 출발점을 설명한다. 식민 지배, 착취, 방어, 혼종 문화가 모두 여기서 시작됐다. 국가 형성의 원형이 남아 있다. 콜롬비아를 압축한 공간이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1533년 스페인은 카르타헤나를 식민 항구로 건설했다. 천혜의 만과 깊은 수심이 배를 끌어들였다. 자연스럽게 무역 중심지가 됐다.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남미 내륙에서 채굴된 금과 은, 에메랄드, 농산물이 이곳으로 집결했다. 동시에 아프리카 노예도 이 항구로 들어왔다. 부와 고통이 같은 길을 통과했다. 도시는 제국 경제의 교차로가 됐다.

 

끊임없는 약탈을 막기 위해 스페인은 대규모 방어 공사를 벌였다. 수백 년 동안 성벽과 요새를 증축했다. 산펠리페 성 같은 거대한 요새가 세워졌다. 카르타헤나는 ‘난공불락의 도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유럽, 아프리카, 원주민 문화가 뒤섞였다. 언어와 음식, 음악이 혼합됐다. 카리브 특유의 리듬이 만들어졌다. 도시는 단순한 군항을 넘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성장했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독립 이후 카르타헤나는 한동안 쇠퇴했다. 무역 중심이 다른 도시로 옮겨갔다. 성벽 안 도시는 낡은 구시가지로 남았다. 영광은 과거형이 됐다.

 

20세기 후반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과 내전으로 흔들렸다. 국가는 ‘위험한 나라’라는 낙인을 안았다. 관광객은 발길을 끊었다. 카르타헤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치안 회복과 함께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는 역사 지구 보존과 관광 산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건물을 복원하고 호텔과 문화 공간을 들였다. 도시는 다시 빛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 최대 관광 도시로 부활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방문객이 급증했다. 경제 구조도 관광과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됐다. 성벽은 방어가 아닌 자산이 됐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의 구시가지는 낮과 밤의 표정이 다르다. 낮에는 박물관과 성당, 광장을 따라 여행객이 걷는다. 밤이 되면 살사와 쿰비아 음악이 거리를 채운다. 도시는 축제처럼 움직인다.

 

골목마다 식민지 건축이 정교하게 보존돼 있다. 두꺼운 목재 문과 철제 발코니가 시간을 붙잡는다. 현대식 카페와 레스토랑이 그 사이를 채운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콜롬비아가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새로운 얼굴’이다. 위험 대신 문화와 색채를 내세운다. 국가 브랜드 전략의 중심지다.

 

그래서 카르타헤나는 현재진행형이다. 복원과 개발이 계속된다. 도시 이미지는 계속 갱신된다. 콜롬비아는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을 다시 설명한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의 복합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식민의 상처가 있지만 동시에 강한 생명력이 있다. 고통을 지웠기보다 끌어안았다. 기억 위에 현재를 쌓았다.

 

성벽은 더 이상 적을 막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끌어들인다. 닫힌 구조가 열린 관광 자원이 됐다. 방어의 건축이 환대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음악과 색채로 스스로를 치유해 왔다. 폭력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도시로 변신했다. 어둠을 부정하지 않고 통과했다. 그래서 더 단단해졌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콜롬비아가 보인다. 상처 입었지만 멈추지 않는 나라다. 과거를 자산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 카르타헤나는 그 변화가 새겨진 콜롬비아의 얼굴이다.

포토·영상

더보기